-
-
생활 속 행복한 수채화 캘리그라피
박나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단순해진다는 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여러 생각 중 단 하나의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건 그야말로 능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원한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위 '몰입'도 이와 같은 능력이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도통 딴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를 '몰입'이라고 한다면 결국 '몰입'이나 '집중' 혹은 '단순한 상태'는 능동적으로 선택하기는 어렵지만 재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동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데서 우리는 일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젊은 시절에야 재미있는 게 너무나 많아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오히려 그게 더 어려운 문제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웬만한 일은 이미 다 한 번 이상의 경험이 있는 터라 젊은 시절처럼 쉽게 재미를 발견할 수가 없다. 시도도 해보기 전에 '저거 내가 해봤는데 별 재미도 없었어.'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시도는커녕 관심조차 갖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니 안 하던 어떤 일을 시도한다는 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돈벌이와 직결되지 않는 취미나 봉사 등 단순히 재미나 삶의 보람과 같은 심리적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일들은 일단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게 당연할 터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내가 취미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던 건 직장으로 인해 주말부부로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일을 하지 않는 여유 시간에도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했던 나는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그도 아니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을 함께 보내줄 사람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시큰둥한 상태가 된 후로는 도무지 삶의 재미라곤 발견하기 힘든 무미건조한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그때 찾은 취미가 그림 그리기였다. 학창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에는 젬병이었던 나로서는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조금의 성취에도 기뻐할 수 있었고, 기쁨은 곧 잘하지도 못하는 그림 그리기를 지속 가능한 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그림 그리기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그와 함께 스트레스는 나날이 쌓여가던 와중에 새로운 책에 시선이 꽂혔다. 그것은 바로 박나미의 <생활 속 행복한 수채화 캘리그라피>. 손글씨도, 그림 그리기도 재능이 없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시도할 수 있게 하는 책.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리고 쓰면서 느끼는 행복을 담아 보세요. 글과 그림은 서로 도와가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빛내 주며,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해 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렵지 않고 재밌게 수채화 캘리그라피 소품을 완성하여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보세요. 바쁜 생활에 지쳐 잠시 잊고 있었던 따뜻한 감성이 살아남은 물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Prologue' 중에서)
저자인 박나미 역시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공기업과 증권회사에서 10년을 근무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단다. 캘리그라피와의 인연이라곤 어렸을 때 서예학원에 다녀본 것이 전부란다. 취미로 시작한 수채화와 캘리그라피에 큰 매력을 느껴 2016년부터 재피공방을 열었고 최근에는 울산으로 이사하여 공방을 계속 운영하며 수강생에게 저자가 느낀 즐거움과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단다.
책의 내용이나 구성은 마음에 쏙 들었다. '수채화 입문하기', '캘리그라피 입문하기', '수채화 캘리그라피 디지털화하기', '수채화 캘리그라피 생활 속에서 활용하기'의 총 네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진작부터 내 맘을 사로잡았지만 정작 나는 실행에 옮기지도 못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족 행사도 많았고 챙겨야 할 기념일도 많았던 5월, 나는 먼지 쌓인 그림 도구를 꺼내 놓고 필요한 붓펜과 샤프, 피그먼트펜 등 필요한 도구를 겨우 구입했을 뿐이다.
나날이 열기를 더해가는 날씨.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서 나는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어쩌면 날씨를 잊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해진다는 건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