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인생에 단 한 번 또래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게 자랑이 되는 시기를 지나치게 된다. 그저 스치듯 보았던 것도, 한참이나 나이 든 후에는 고도의 집중력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아주 상세히 기억하던 그 시기에 우리는 필요가 아닌 경쟁을 목적으로 지식을 쓸어 담는다. 마치 노름판에서 숨겨놓았던 자신의 패를 뒤집는 것처럼 비록 언제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있을지도 모르는 대결에서 남들이 모를 만한 비장의 지식을 선보이겠다는 야심. 그런 허황된 꿈이 그 나이대에 있음 직한 여러 유혹들을 뿌리치게 하던...

 

그러나 많이 안다는 게 또는 남들보다 많이 기억한다는 게 부담스럽거나 죄스러워지는 시기가 오고야 만다. 견딜 수 없는 죄스러움으로 인해 자신의 기억을 조금씩 덜어내는 어느 치매 환자의 서글픈 노력에서 우리는 망각의 미덕을 떠올리게 된다. 기억하는 것도, 기억을 털어내는 것도 어느 시기에는 꼭 필요한 일이구나, 깨닫는 건 꽤나 쓸쓸한 일이다. 자신의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기억하는 일도, 기억을 지우는 일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진행된다는 걸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은 오늘,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이 있는 날.

 

기억은 때로 사람의 육체마저 무겁게 하는 까닭에 삶의 무게는 기억의 무게에 비례하여 증가하지만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세상에 없는 누군가와의 추억을 가슴에 품는다는 건 '그리움'으로 포장된 또 다른 업(karma). 누구나 인생에 단 한 번 기억이 자랑이던 시기를 지나쳐가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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