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잦은 탓인지 숲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이 짙어지고 있다. 덕분에 아침 공기는 더없이 맑고,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등산로는 한결 부드러워졌으며, 구수한 낙엽 냄새와 짙은 솔향은 새벽 등산객의 기분을 좋게 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에서 계절의 변화만큼 우리들 시선을 끄는 것도 없을 듯싶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제비꽃의 청초한 자태가 눈에 들어오고, 철쭉의 화려함에 없던 기운이 샘솟기도 한다. 우리는 기대하던 사람에게 번번이 실망하고, 기대하지 않던 자연으로부터 더없는 기쁨을 만끽하곤 한다.

 

패스트트랙 국면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보고 싶지 않았던 정치인들의 막말과 추태를 억지로 보느라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했지만 한편으론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을 우리에게 주었던 건 아닌 듯하다.  내 주변에서 보더라도 수구꼴통 소리를 듣던 선배 한 명도 이번 일로 자유당의 적나라한 실체를 보게 되었다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까지 마쳤다고 했다. 오죽하면 그와 같은 국민청원이 있었다는 걸 나조차도 몰랐었지 뭔가. 국민청원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자유당을 해산시켜 달라는 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120만 명을 넘었다.

 

사람이 변해도 사상이나 이념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선배가 자유당 해산 청원에 동참했던 건 상식의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보수를 대표하는 상식적인 인물이 등장하거나 합리적인 보수정당이 나타나면 그도 열성적으로 보수정당을 지지할 것으로 안다. 나도 물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재의 자유당은 보수정당도 아니고 오직 자신들의 이권만 생각하는 그야말로 양아치 정당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준법정신을 기대하거나 국민을 위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해산된 통합진보당보다 더 악의적인 정당이다. 통합진보당보다 의석수가 몇 배는 더 많아서 그 폐해도 몇 배나 크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청산되어야 하는 정당이다.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나쁜 것만 기억할 뿐 긍정적인 면은 무시하거나 들여다보지도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화도 나고 치미는 화를 엄한 데 풀었을지도 모르지만 국민들로 하여금 이념이나 사상이 아닌 상식의 기준에서 판단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니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 흐렸던 하늘이 갠 오늘의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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