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는 청명한 하늘이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풍경을 마주하는 오늘과 같은 날이면 나도 꽤 괜찮은 나라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4계절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산과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자원은 없지만 자연재해로부터 조금쯤 안전하다는 것도 그렇다. 물론 내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곳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 전체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국회의원들의 거친 몸싸움과 욕설, 고성과 야유 등 일반인들이 길거리에서 그랬더라면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되고도 남을 만한 짓을 서슴없이 하는 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더구나 불법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들이 무슨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양 포장한다는 게 텔레비전 화면으로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는 정경유착뿐만 아니라 정언유착 등 그들끼리의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해 왔던 까닭에 공수처법으로 인해 그러한 동맹이나 카르텔이 깨지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대 양당의 독점 구조로 인해 설령 그들이 내세우는 공약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당선 가능성 때문에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불합리한 선거가 유지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더구나 검찰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됨으로써 검찰만 장악하면 아주 손쉽게 반대 진영을 제압할 수 있지 않았던가. 말하자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을 강력 저지하는 이면에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목적만 존재할 뿐 그 어떤 다른 명분도 없는 것이다.

 

자유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이 독점적 권력을 쥔 채 국정을 운영한다는 건 국민 전체를 두 세력으로 양분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권력 구조하에서 국민의 단합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사적인 싸움을 벌이면서도 기괴한 논리를 동원하여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의석 배치로는 어떠한 법도 통과되기 어렵다. 어차피 그리 되었으니 차기 총선이 치러지기 전까지 국회도 개원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내는 게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을 듯하다. 되지도 않을 일을 괜히 시도만 하여 미친개처럼 날뛰는 자유당 의원들의 기만 살려주는 꼴을 만드느니 세비로 나가는 세금이 아깝기는 하지만 국민들 정신건강을 위해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싸움만 보지 않았어도 짙어가는 녹음과 맑은 하늘을 보며 순순한 감동에 젖어들 수 있었을 터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