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을씨년스럽고 옹색한 겨울 햇살이 답답한 미세먼지를 뚫고 거실 바닥에 닿는다. 물때 묻은 베란다 통창을 가까스로 비집고 스며든 여린 햇살 속에서 한참을 뒹굴었다. 마치 광합성 작용을 하는 식물처럼. 건조하고 메마른 요즘의 겨울 날씨처럼 살아간다는 게 점점 팍팍하고 힘겹게만 느껴진다면 요가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뜬금없이 웬 요가? 하고 되물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월의 풍상에 몸도 마음도 경직되지 않도록 애쓴다는 것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에 해당한다. 몸이 경직되면 그 사람의 정신마저 딱딱하게 굳어지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성을 잃는다는 건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가. 그것은 곧 삶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며칠 전 공익 제보자라 주장하던 신 모 사무관의 자살 소동이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이 삶에 대한 미숙함, 경직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조직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 구성원들 간의 치열한 논쟁이 선행되어야 하고, 자신은 단지 조직 내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을 뿐인데 조직이 불법적으로 자신을 배척했다면 법적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언론이나 외부인은 단지 제삼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이치도 모르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면 그는 정말 미숙한 사람이다. 자신의 미숙한 행동이 정치권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있음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채 언론 인터뷰를 가졌다면 그는 더더욱 어리석은 사람이다. 언론에 나서는 순간 그는 이미 정치적인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좋든 싫든 그리 되는 게 순리다. 진흙탕 싸움의 어느 한쪽에 설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신 전 사무관 본인은 어느 쪽에도 연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 순진한 발상은 도대체 뭔지... 현 정권의 약점을 잡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자유당이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리가 있을까. 없는 일도 만들어 낼 판인데 말이다. 게다가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는 대학 선후배들의 호소문은 어떤가. 과연 효과가 있을까. 자신들의 정치적 속셈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한 자유당이 선후배의 호소문 따위가 안중에나 있을까.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정치적이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벌인 일이라면 신 전 사무관은 정말 순진한 사람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세상이 개벽을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른한 오후 햇살이 졸음을 부른다. 이민정이 쓴 <미래를 읽는 부모는 아이를 창업가로 키운다>를 읽고 있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평범한 부모의 입장에서 신 전 사무관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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