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배웠던 국어 교과서의 내용 중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민태원의 '청춘예찬'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단 하나의 문장을 뽑으라면 나는 단연코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라고 썼던 그 구절을 꼽는다. 나 역시 청춘을 지나던 그 시절에는 그 문장만 다시 들어도 가슴이 절로 뛰곤 했었다. 그러나 청춘을 지나쳐 제법 멀리까지 온 지금은 감동은커녕 그저 시큰둥할 따름이다. 건방진 이야기지만 이따금 그 문장이 이렇게 바뀌어 씌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도 더러 있다. "정의는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용기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라고.
김태우 수사관과 신재민 사무관의 무분별한 폭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청와대의 독단과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 국가 권력을 동원한 청와대의 개입 등 온갖 불법적인 일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졌었다는 게 법적으로나 객관적인 증거로나 이미 다 증명이 된 셈인데 그 시절에는 그런 불법을 보면서도 일언반구도 없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에서는 왜 공익 제보 입네 하면서 대대적으로 떠들고 나선 것일까. 공포정치가 횡행하고 청와대의 감시가 엄혹한 시기에는 누구든 용기를 낼 수 없는 법이다. 권력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뚜렷해진다. 오히려 권력자에게 잘 보임으로써 자신의 영달을 꾀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욕심만 키울 뿐 권력자에 맞서 정의를 지키겠다는 용기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소시민적 경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물론 나라고 특별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김태우, 신재민과 같은 자들이 언론에 등장한다는 건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이용하여 소시민을 옥죄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즉 문재인 정권이 민주주의 원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법이니까 말이다. 자신이 저질러왔던 비겁함이나 부정부패에 대한 눈 감음을 이번 기회에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누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절대로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들은 비겁했던 대다수 국민들을 향해 자신들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들을 비난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의는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용기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일 뿐이라는 소시민적 견해가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누가 죄짓지 않은 자 있으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하셨던 예수님 말씀처럼 나 역시 그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탓하며 반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