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 황경신의 글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난다. 시작은 대체로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되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끝이었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때가 가장 슬프다.' 정말 그렇다. 잠시의 휴지도 없이 시간의 연속선상에 있는 우리는 그 끝도 알지 못한 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가 많다. 독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된다.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되기도 하고, 끝은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완전히 끝난 경우도 가끔 있다. 이석원 작가의 글도 그렇다. 황경신 작가와도 인연이 깊은 이석원 작가이기에 그의 책 <보통의 존재>를 읽은 후 신간이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읽게 되었는데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고 나서는 '아, 이제는 이석원 작가와도 끝이구나' 생각했었다. 그랬던 게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나는 또 그의 신간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을 읽고 말았다.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오래된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그만.

 

"첫 책을 낸 지 6년. 어느새 난 세 번째 책을 내게 되었다. 첫 책과 달리 두 번째 책이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에 긴장과 걱정 속에 출간된 새책은 다행히 독자들이 반겨주었고, 그 덕에 이제야말로 몸을 쭉 펴고 누울 수 있을 만한 거실이 있는 곳으로 부모님의 거처를 옮겨드릴 수 있었다. 비록 집을 사드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 그때 어머니가 새집의 베란다에 틈틈이 모은 화분들을 들여놓으시며 기뻐하시던 모습과 처음으로 좁은 방을 벗어나 거실로 '산책'을 나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p.112)

 

사실 나는 이석원 작가의 글을 그닥 선호하지는 않는다. 감성 충만한 말랑말랑한 글을 읽을라치면 손발이 오글거리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장르가 불분명한 그의 글이 영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져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은 후에는 '아, 이석원 작가와의 인연도 이걸로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그의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겠지만 어쩌면 <보통의 존재>를 읽었을 때도, <실내인간>을 읽었을 때도,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들었을 때도 모두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이 존재했던 게 아닐까. 오늘날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우연적 에피소드의 연속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가 지적하듯 우연이 항상 무의미나 권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석원의 글을 읽게 된 동기야 어떻든 많은 부분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니까.

 

1부 '그해 여름', 2부'내가 사는 작은 동네엔', 3부 '엄마의 믿음', 4부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5부 '배려', 6부 '스며들기 좋은 곳', 7부 '마음이란', 8부 '마지막 순간'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짧은 분량의 여러 꼭지의 글들이 실려 있다. 그런 까닭인지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기에는 딱 좋은 책'이라고 썼던 어느 블로거의 평에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 어, 이건 누구누구의 글이야 하고 대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그 작가만의 벗어버릴 수 없는 인장 같은 것. 단순히 독자의 입장에서, 내겐 그게 어떻게 보면 내용이나 본질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책 속에 담겨 있는 생각의 결이 아무리 매력적이거나 유용하다 해도, 그 사람만의 글의 톤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 책을 반복해서 읽기는 어렵다." (p.247)

 

작가는 삶의 거대한 주제들보다는 보다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자로서 내가 받았던 인상은 가벼운 듯 보이는 그의 글은 이전에 나왔던 다른 책들보다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 듯했다. 어떤 글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가볍게 읽히는가 하면 또 어떤 글은 가벼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깊은 의미가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걸 연륜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삶의 성숙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기 마련인 인생에서, 어느 날엔간 혼자서도 잘 살아갈 거야 하다가, 또 어느 날엔간 그래도 내가 아닌 누군가가 아니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가 내 안에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될 때, 아무리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때,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람이란 게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버겁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 늘 말하지만 진짜 부자는 관계의 부자가 아닌가 한다." (p.276~p.277)

 

중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은 졸업 발표회를 위한 춤 연습에 열심이다. 이것이 어쩌면 중학교 친구들과 할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이 될지도 모르지만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아, 그게 끝이었구나'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나이가 되면 왠지 모를 슬픔과 먹먹함이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 끝을 확인한다는 건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오늘 하루도 무참히 저물고 있다. 하루의 끝을 담담히 맞이할 수 있는 까닭은 변함없이 내일이 온다는 걸 믿기 때문이요, 또 다른 하루가 내가 아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끝내지 않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우연처럼 이석원의 산문집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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