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문제가 하커 부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꽤 사소하다는 것뿐입니다.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에요. 대단한 사건도 달려 있지 않죠." (p.234)
마거릿 밀러의 소설 <내 무덤에 묻힌 사람>에 등장하는 탐정 피나타가 한 말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말은 전적으로 틀렸다. 작가의 묘사를 빌리자면 '그는 그걸 알아챌 상상력도 욕구도 없었'던 것이다. 소설은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평범해 보이던 이야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킨다. 그와 같은 반전은 비단 스토리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한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다중적인 인격을 이야기와 함께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추리소설을 정신분석학과 결합함으로써 국면 국면마다 바뀌는 개인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도드라지게 표현함은 물론 자칫 평범해질
수 있는 각각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에이다 필딩은 여자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았지만, 천진한 척 가장하고 화를 돋울 수 없는
척하는 편이 더 바람직했다. 불안해하는 징조, 가빠지는 숨, 갑작스러운 홍조, 움켜쥔 주먹보다 더한 가십거리는 없었다. 필딩 부인의 손과 호흡은
그대로엿고 홍조는 파우더에 덮여 가려졌다. 오로지 본인만이 그 존재를 알았다. 뺨과 목에 떠오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화가
났다." (p.319)
소설은 이월 첫째 주의 환하고 소란스러운 아침으로 시작한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던 그 날, 젊고 아름다운 여인 데이지는 꿈에서 본
자신의 무덤을 떠올린다. 묘비에 적힌 사망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다. '데이지 필딩 하커, 1930년 11월 13일 출생. 1955년
12월 2일 사망.' 묘비에서 보았던 그 특별한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데이지는 꿈속의 그 장소를 찾아가고 정말 무덤을 본다. 하지만 묘의 주인은
그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사망일만 일치했다. 꿈이 아니었더라면 평범하게 흘려보냈을 1955년 12월 2일은 이제 데이지에게 특별한
날로 기억된다. 무덤 속 주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 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던 데이지는 남편과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립탐정을 고용하고, 단서를 찾아 나선다. 4년 전 그날, 자신의
주변에 분명 어떤 일이 있었는데 가족들은 그것을 은폐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족들의 민낯. 마냥 순종적이고
가정적이었던 데이지가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돌변하자 이에 반응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던 것이다. 한없이 다정다감한 줄로만
알았던 남편 짐이 의심 많고 다소 까칠한 성격의 남자라는 사실을, 교양이 있고 침착했던 어머니 에이다는 욕심 많고 다소 이기적인 사람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데이지로 인해 들춰지게 되는 가족들의 불편한 진실은 이 소설 전체를 꿰뚫고 있다.
"짐은 앞유리 위에 지그재그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다. 그리고 데이지가 잃어버린 날을 찾기 위해,
오래된 그 집에 여전히 뭐가 있을 것처럼 비 내리는 로럴 스트리트를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사랑, 연민, 무력감의
눈물이었다. 이제 그는 더이상 그녀를 안전히 지킬 수 없었고, 그녀의 남은 인생 동안 고통을 안겨줄 아버지에 관한 사실을 알아내지 못하도록
보호해줄 수 없었다." (p.415)
어쩌면 우리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가면을 쓴 채 평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합당한 변명을 만드는 일에 평생을
허비하는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이 헛되고 헛되다는 걸 알게 되지만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후회는 원죄처럼 남는다. 원죄는 이미 예정된 후회를 일컫는 또 다른 말이 아닐까. 마거릿 밀러가 쓴 꽤나 오래된 추리소설 한 편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