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죽음 뒤에는 항상 안타까운 사연이 뒤따른다.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고 했다. 몸 하나 겨우 들어갈 1.7평의 작은 방 하나에 월세 27만 원, 입주자 대부분이 40~70대의 일용직 근로자라고 한다. 비가 와서 공치는 날이라 사망자가 늘었다고 하니 운명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가난의 굴레는 그 사람의 생명까지도 옥죄게 마련이다. 그렇게 내몰린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를 견디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제공한다.
몇 년 전 나도 서울 신림동에 있는 고시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잠시였지만 안정적인 숙소가 마련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고시원에 머물러야 했던 조카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방문자가 앉을 공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나는 금세라도 폐쇄공포를 느낄 것만 같은 아찔한 예감에 저녁을 먹자는 핑계로 그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야만 했다. 두어 달을 그곳에서 살았던 조카도 그 후 마땅한 방을 얻어 감옥과 다름없었던 고시원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혹여라도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곤 했었다. 물론 더 이상 한 발짝도 물러날 곳이 없는 고시원 상주자들이 듣는다면 이렇게 말하는 나의 모습은 순전히 엄살로 비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지난 9월 만취 운전자가 몰던 BMW에 치여 뇌사상태에 빠졌던 윤창호 씨도 오늘 끝내 숨졌다고 한다. 미국 LA 교외 술집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 역시 안타깝기만 하다. 내 가족이나 가까운 일가 친척이 아닌 한 우리는 또 쉽게 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언제쯤이면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사라지게 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죽이는 세상, 그런 까닭에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