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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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느낌은 이러했다. 이름도 모르는 저자가 내 곁으로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는 남들이 들을세라 한껏 낮춘 목소리로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듯한 느낌, 또는 친한 친구가 어렵사리 꺼낸 속내를 듣는 듯한 느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실은 말이야..." 하면서 꺼낸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가 의심 없이 믿어왔던 상식에 반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논리적으로, 때로는 도발적으로 풀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추억이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말처럼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아름다움, 특히 외적인 아름다움은 무언가를 향한 복수와도 같다. 물론 얼굴이 예쁜 사람이 좋다. 하지만 그런 잔꾀에 속는 사람은 결국 겉모습만 본다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나 혼자만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 없이." (p.184)

 

그러나 저자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 'F'라는 익명에 더하여 책의 내용에 언뜻언뜻 등장하는 몇몇 소소한 정보가 다이다. 도쿄 신주쿠 지역에 살고 있다거나, 11월에 태어났다거나,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남들은 일주일에 다섯 번 학교에 갈 때 저자는 겨우 두 번만 나갔다거나, 퇴학 처분이 내려진 것도 여러 번이었으나 어찌어찌 대학까지 졸업했다는 둥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만 갸웃거리게 된다. 책을 다 읽은 독자나 하나도 읽지 않은 독자나 저자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F'로만 남는다.

 

"미움 받을 용기 따위 필요 없다. 굳이 온 세상을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누군가 나의 적이 될 때는 그가 자기 마음대로 내 적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움 받을 용기, 그런 위험천만한 마음을 갖고 살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다. 그런 무시무시한 마음을 지니고 다니기에는 인간의 수가 너무도 많다." (p.135)

 

저자는 연애나 사랑에 대하여, 친구에 대하여, 외로움이나 질투 또는 향기에 대하여, 인간관계에 대하여, 이별에 대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조언한다. 조언이라기보다는 그가 살아온 경험과 지식, 또는 예리한 관찰에 기반을 둔 현실적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들어오던 식상한 조언이 결코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저자만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난다.

 

"나는 항상 나의 연인이 바람을 피울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여도 함께 있는 시간 이외에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걸 아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정해놓은 것이 딱 하나 있다. 의심하지 않기다. 무얼 의심하지 않느냐고? 나의 연인은 절대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얘기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도 아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여기에 의심이 생기면 그땐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p.280)

 

저자의 시각이나 관점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기꺼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지만 재미있는 소설이나 시집을 읽을 때처럼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청춘기에 했던 잘못된 선택지로 인해 저자 역시 후회하고 있다는 몇 가지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독서는 확실히 체계적으로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기억의 용량이 낭비된다. 예를 들어 나쓰메 소세키의『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으면 그에 대한 주석과, 해설을 해주는 책 또는 논문을 다섯 권 정도 더 읽는 게 좋다. 책은 아무리 많이 빨리 읽어도 '지식'밖에 안 쌓인다. 이건 의미가 없다. 하나의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식견'이 생긴다. 어디에 살면서 무엇을 보든, 체계적인 독서는 자신만의 견해로 세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p.199~p.200)

 

후회하는 몇 가지에 대한 저자의 당부는 이러했다.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투정을 부리라'는 것이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추억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때 더 부끄러운 짓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덜 후회하고 살고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우리가 사랑하던 사람과, 공간과, 시간과도 결국 이별을 해야 하는 한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영원한 듯 살고는 있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끄러운 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은 더 풍요로워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에서 맘껏 부끄러워해도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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