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런 모습이 딱했는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몸을 돌보셔야죠. 힘드시겠지만..."라고 말했다. 이성적으로는 그 말이 옳다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라는 게 이성보다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던가. 하고 싶은 일도, 먹고 싶은 음식도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도 '도대체 이건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만 들고 이어지는 행동 역시 적극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마냥 수동적으로만 변해 갔다. 그럼에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수시로 오갔다. 매일 아침 오르던 산도 그저 시큰둥하기만 했다.

 

오늘 아침 천근만근 무겁기만 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산에 올랐다. 아침 산행에 나섰던 건 근 한 달만이다. 뚝 떨어진 기온에 몸도 마음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헛헛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니던 길인데 짙은 어둠이 깔린 산길은 왠지 낯설고 으스스했다. 매일 아침 마주치던 등산객들이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내 사정을 모르는 그들은 "오랜만이네요.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셨나봐요." 했다. 나는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일주일이 마냥 느리게만 흘러간다. 카톡으로나마 나를 위로하려드는 속 깊은 아들은 며칠 전 끝난 중간고사 성적이 평균 97점이라고 했다. 뭔가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더니 아들이 좋아하는 작가 Stuart Gibbs의 신작이 나왔다며 그 책을 사달라고 했다. 제목인 즉 "Spy School Goes South". 아비된 자가 아들을 위로하고 감싸줘야 마땅한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된 느낌이다. 사는 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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