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값싼 위로 한마디가 자네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혹여라도 마음 섭섭했다면 미안하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고 한들 대신할 수 없는 일들이 하도 많아서, 누군가 홀로 지고 일어서야 하는 짐을 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두 눈 질끈 감고 돌아서 맥없이 가슴만 치는 경우가 많았다네. 위로라도 한마디 던져주지 그랬어,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타박 아닌 타박도 여러 번 들었다네. 그러나 위로도 중독이 된다는 사실이 내가 그리 하지 못하는 까닭이라네. 물 한 모금 삼키는 것도 힘에 부칠 때에는, 그렇게나 힘이 들 때에는 값싼 위로일지언정 아주 쉽게 중독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네. 위로가 주는 안온함이 다시 일어설 힘마저 앗아가 버리곤 하지.

 

해가 많이 짧아졌다네. 오늘도 나는 새벽 어둑한 산길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네. 잔뜩 흐린 하늘과 도통 밝아지지 않는 내 마음이 합쳐져 매일 다니던 길도 낯설기만 했지 뭔가. 급기야 후둑후둑 빗소리가 들렸다네. 나는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걷다가 산을 다 내려올 즈음에서야 알았다네. 지금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마음은 슬픔처럼 어둡기만 하다네. 이화인 시인의 시집 <묵언 한 수저>를 읽다 보니 이런 시가 눈에 띄어 적어보았네.

 

슬픔의 안

             이화인

 

그대 슬플 때에는

견디기 힘든 슬픔에 잠길 때에는

슬픔의 안을 들여다보라

슬픔에도 기쁨이 있나니

기차가 어둔 길 터널을 지나면

눈부신 햇살이 내리듯이

젖은 낙엽 위로

소슬한 갈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그대 슬픔의 늪에 빠질 때에도

그 슬픔 저편에는

맑은 샘이 흐르나니

희망의 꽃들이 피어 있나니

그대 하회탈의 웃음을 보라

고달픔으로 얼룩진 삶을 이어 온

눈물 젖은 웃음

슬픔이 바랜 뒤에야 우러나오는

하회탈 웃음을 보라

헤어나기 힘든 슬픔 저편에도

희망의 샘물이 흐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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