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드라마틱한 변화의 연속이지요. 우리가 매 순간 체감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중형급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상륙도 하기 전부터 얼마나 가슴 졸이며 불안에 떨었던지요. 자연의 힘이라는 게 인간의 능력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게 다반사, 속절없는 기다림 외에는 달리 준비할 게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농사를 짓거나, 배를 타는 사람은 아니지만 막연한 걱정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이따금 바람이 몰아치던 목요일 밤, 새벽 무렵에 태풍이 내륙을 관통한다는 뉴스 예보를 들었던지라 베란다 창문을 꼭꼭 닫아걸었습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잠이 들었나 봅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겠거니 생각했는데 일어나 보니 아침이었습니다. 회색 유화물감을 아무렇게나 칠해놓은 듯한 하늘에서는 가는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요란했던 태풍은 비상해제,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일부 지역의 피해는 있었지만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주 오래전에 뭔 일만 터지면 그게 모두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도 대통령 탓, 비가 적게 와도 대통령 탓, 심지어 날씨가 추워도 대통령 탓 등 하나부터 열까지 대통령 잘못이 아닌 게 없었지요. 정치인들이 저희들끼리 모여 연극을 하면서도 대통령 욕을 하는 게 전부였던 시절입니다. 그분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지요. 21세기의 우리 국민은 여전히 19세기에나 있었을 법한 이런 야만의 시절을 통과했던 것입니다. 최근 뉴스 메인을 장식하는 건 지난 정권의 대법원장이었던 양승태와 그의 졸개들에 의해 자행된 사법농단과 기무사의 쿠데타 계획이 아닌가 싶은데, 며칠 전 저는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무죄 판결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한 자가 무죄라면 평범한 개인을 악의적으로 비난한 자 모두가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하겠지요. 그런 논리라면 대한민국에서는 아마도 명예훼손으로 처벌 받을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 듯합니다.
지난해였던가요. 홍일표 국회의원의 아들인 홍성균 판사가 지하철 몰카범으로 입건되었던 게. 그는 당시 성범죄 전담 판사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사법 정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이런 잡범들이 판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할 테지요. 고영주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김경진 판사 또한 홍성균 잡범과 하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법 농단은 괜히 생겨난 게 아닌 듯합니다. 인간적으로 미성숙한 인간이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가린다는 게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던 2018년의 대한민국 여름, 대한민국의 사법 농단은 지금도 게속되는 듯합니다. 2018년 여름처럼 끈질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