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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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말복이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의 날씨는 어찌나 다르던지요.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하고 누군가에게 묻고 싶을 정도로 날씨는 천양지차 달라져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마주치는 등산객들의 표정도 한결 가벼워진 듯 보였고, 더위에 지쳐 인사말만 겨우 건네던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좋지요?"라거나 "금년 더위도 이제 다 끝난 것 같아요."라면서 설레는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요란하던 매미 소리마저 잠잠해졌고 숲은 그저 평온했습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간간이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낮의 기온은 크게 올랐으나 청명한 하늘은 가을을 닮아 있었고, 그늘에 서면 불어오는 바람이 마냥 반가웠습니다. 며칠 전에 읽고 미뤄두었던 리뷰를 작심하고 써보려 했지만 날씨 탓인지 집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시선은 연신 창밖 하늘을 향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마음도 싱숭생숭 흔들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장편소설을 쓰는 소설가의 인내와 끈기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와카미 미에코의 대담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었던 바 그에 대한 간단한 느낌을 적어보려 합니다.

 

소설을 쓴다는 건 작가가 또 하나의 다른 인생을 압축해서 살아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작가가 살아내는 세상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인 까닭에 꿈을 꾸는 것처럼 자유로운 인생이 될 테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꾸는 꿈을 현실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다시 듣는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작가가 쓰는 문장은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하며 그 스토리의 전개는 현실에서 상당히 비껴가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인 문장으로 현실적인 세상을 말한다면 소설은 그야말로 다큐멘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밋밋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구로서의 문장을 작가의 의식 저편으로 끌고 가는 작업이 소설 쓰기의 전제가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소설은 자주 읽지만 단 한 번도 직접 써본 적 없는 순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드는 생각이지만 말이죠.

 

"다시 한번 확인해두자면 제 문장은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비非리얼리즘이죠. 그런 분리가 처음부터 떡하니 전제되어 있어요. 리얼리즘 문체를 철저하게 구사하며 비리얼리즘 이야기를 펼치는 게 제 목적이니까요." (p.117)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와카미 미에코의 대담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는 인터뷰이로 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솔직 담백한 대답이 눈길을 끄는 책입니다. 평소 언론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이기에 네 차례나 이어진 인터뷰도 그렇고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가수 출신의 특별한 이력을 지닌, 게다가 배우와 방송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엔터테이너이자 시인으로도 인정받은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인터뷰어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건 쓰지 않는 사람이건,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소설은 평생 대여섯 권 정도 만나지 않을까요. 많아야 열 권 남짓일까. 그리고 결국 그 몇 안 되는 책이 우리 정신의 대들보가 되어줍니다. 소설가의 경우는 그 스트럭처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바꿔 말하고 풀어 말하면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소설에 편입해갑니다. 우리 소설가들이 하는 일이란 결국 그런 게 아닐까요." (p.197)

 

총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는 하루키 문학의 전반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키 소설의 애독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건 아닌 까닭에 인기 있는 소설가의 소설 작법이나 작가론을 중심으로 읽는다면 하루키의 팬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듯싶습니다. 자신이 마치 고대 원시시대의 영매와 같은 이야기꾼으로 인식되기도 한다는 대목이나 소설가로서 자신은 무엇보다 문장을 중시한다는 대목 등은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가 살아 있으면 문체도 그에 맞춰 살아 숨쉬죠. 그러니 매일 변화를 수행할 테고요. 세포가 교체되는 것처럼. 그 변화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지 않으면 자기 손에서 떠나갑니다." (p.127)

 

1장 '뛰어난 퍼커션 연주자는 가장 중요한 음을 치지 않는다', 2장 '지하 2층에서 일어나는 일', 3장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 4장 '설령 종이가 없어져도 인간은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의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존경과 애정을 담은 인터뷰어의 질문에 소설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일상 속 에피소드를 곁들인 하루키의 신선한 대답이 잘 어우러진 대담집으로서 이야기는 최근에 발간된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부터 하루키의 초창기 작품을 넘나들며 끝없이 이어집니다.

 

"나 자신은 실제로 이 현실세계에 살지만 지하에는 나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고, 소설을 쓸 때 스멀스멀 위로 올라와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리얼리티를 밀어제치고 나가버린다. 나는 그런 작업 속에서 나 자신의 그림자를 보려 하는 것이 아닐까. 다만 나는 소설가이기에 이야기를 쓰는 작업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지만 보통 사람은 좀처럼 불가능할 수도 있다. 즉 나는 이야기를 씀으로써 많은 사람을 위해 그 작업을 대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입니다. 왠지 주제넘은 소리 같지만." (p.271)

 

우리가 누군가의 팬이 되고(그 대상이 가수든 , 배우든, 연주자든, 혹은 작가든 상관없이) 팬으로서 더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까닭은 내게는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을 그 대상이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허점을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통해 확인하고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죠. 그리고 나에게는 불가능한 어떤 것이 그 대상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흥미롭게 읽었던 것도 하루키의 팬으로서, 나에게는 없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을 그를 통해 대리 만족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고 하더니만 말복이 지나자 없던 기운도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지난 리뷰를 이렇게 쓰고 있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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