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감쪽같이 달라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아픈 아내가 예전처럼 따뜻한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 나를 깨운다거나 요즘처럼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인 폭염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지고 문틈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간절함은 매번 상상 속에서만 그치고 팍팍한 현실은 한동안 길게 이어지곤 하지만 이따금 그렇게 상상의 세계로 피난을 떠났다가 돌아올라치면 그것만으로도 사라졌던 삶의 의지가 불현듯 되살아나는 듯 느껴집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상상의 능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요.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을 피해 잠시 다른 세상에서 거닐다 오는 것. 그렇게 걷다 보면 힘겨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띄고, 그런 모습이 안쓰럽고,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싶고, 소설 속의 어느 구절,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 한 문장에서 위안을 얻고 다시 용기를 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위로가 필요한 시기에도 자신을 독려하고 채찍질하려 듭니다.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이유도 아마 그런 까닭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가 말하는 자기계발서는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을 요약하여 기록한 것에 불과합니다. 벼락치기를 하는 수험생이 시험에서 기본 점수라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요약문인 것처럼 인생에서 큰 깨달음이나 번듯한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결코 자기계발서와 같은 요약문을 읽지는 않겠지요. 비록 시간은 많이 걸릴지라도 직접적인 체험이나 고전문학을 독파함으로써 하나씩 하나씩 체계적으로 터득하여 가는 길을 선택할 듯합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짧은 시간을 들여 고득점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조급함만 키우게 되고 고득점은커녕 평균 점수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어떤 일이든 속성으로 성취할 수 있는 방법, 말하자면 편법에 익숙했던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에서도 속성으로 이룰 수 있는 편법을 찾는 듯합니다. 인생은 속성과 편법이 통하지 않는 실질적인 장(場)인 셈이죠.  그러므로 더디더라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배울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을 배우는 것이 최선일 듯합니다. 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인내와 기다림인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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