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아랫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달라는 은근한 압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벌어지기도 하고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심심찮게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존댓말을 쓰는 이면에는 '내가 너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아도 괜찮지만 특별히 너를 배려해서 하는 것이니 너도 나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나를 함부로 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존댓말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기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일 수도 있고 말이다. 게다가 그런 심리는 주로 열등의식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학벌이든, 지역이든, 가난이든 아무튼 복합적인 어떤 이유로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랫사람에게조차 차별을 받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그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미리 상대방에게 존댓말을 사용함으로써 상대방도 자신에게 예사말을 쓰지 않도록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존댓말을 쓴다는 건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의 기저에는 열등의식과 함께 강한 권위의식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보수적인 자신의 철학을 상대방에게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이 비단 윗사람에게는 반드시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존댓말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어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이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하면 예사말을 주로 사용하는 외국의 언어에도 존댓말이 존재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자녀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쓰는 부모의 심리에는 자신의 자녀가 존댓말을 잘 사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여 성인이 된 후에도 남들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기대심리, 또는 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르다는 선민의식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나 직장에서 아랫사람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는 사람의 심리 기저에도 '너는 나의 권위에 절대 도전하지 말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주장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일반적 사실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경우가 다반사라는 말이다. 존댓말을 강요하는 보수적인 철학을 가진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게까지 자신의 신념을 강요할 권한은 없다. 존댓말을 쓸 것이냐 예사말을 쓸 것이냐의 판단은 실수와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배우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나이가 아주 어린 아이들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게 존댓말인지 예사말인지 금세 판단하곤 한다. 상황에 따라 어떤 게 자신에게 유리한지 아이들은 쉽게 학습할 수 있으며 그것은 그들만의 당연한 권리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자녀가 자신의 소유물인 듯 행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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