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어낸 고슬고슬한 쌀밥처럼 조팝나무의 흰 꽃들이 어찌나 탐스럽던지요. 어제는 새벽부터 비가 내렸지요. 바람도 불고 기온도 떨어져 사뭇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습니다. 나는 그것을 핑계로 아침 산행을 하루 거른 채 주말 아침의 느긋한 게으름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심하게 닦달할 것도 아닌데 산행을 하루만 걸러도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 올라오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에는 일찍부터 잠에서 깨었고 시간이 되기만 마냥 기다릴 것도 없이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의 새벽 등산로는 무척이나 조용했습니다. 비 온 뒤끝의 먹장구름 몇 장이 새벽 어스름을 한층 더 어둡게 하는 듯했고,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그런 나를 반겨주었던 게 조팝나무 꽃이었습니다. 한 무더기의 환한 그 꽃이 주변의 어둠을 조금쯤 밀어내는 듯했었지요. '어찌나 희고 눈부신지 잠깐만 바라보고 있어도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고 했던 이외수 작가의 표현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멀찍이서 그저 바라보며 몽롱한 향기에 취해 있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손이 다가갔습니다. 이리저리 매만지면서도 여린 꽃잎이 떨어질세라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습니다. 손이 긁힌 줄도 몰랐습니다. 산을 내려와 손을 씻을 때 엄지손가락의 손톱 밑 살이 쓰라렸습니다. '너는 살성이 좋아 덧나지 않고 잘 낫는다.'고 했던 어릴 적 어머니의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중간고사가 열흘쯤 남았다는 아들을 따라 동네 도서관에 나왔습니다. 와카마쓰 에이스케가 쓴 '슬픔의 비의', 김별아 작가의 '도시를 걷는 시간', 정수복의 '파리를 생각한다'를 빌렸습니다. 지금 나는 도서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