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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 지식이 아닌 공감을 전하는 아홉 명의 정신과 의사 이야기
김은영 외 지음 / 플로어웍스 / 2023년 1월
평점 :
내가 그대를 돕고 그대가 나를 돕는다. 내가 그대를 치유하고 그대가 나를 치유한다.
내가 그대를 살리고 그대가 나를 살린다.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위에는 의사도 환자도 없다.
이 고통의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돕는, 사람과 사람의 동행이 있을 뿐이다. 아홉 명의 정신과 의사가 모여서
우리가 우리를 구하는 이야기를 펴낸다.
나에게 병원은 어렵고 무섭고 겁이 나는 곳이다. 이렇게 쓰고 병원이 좋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생각해본다.
평생 몸으로 노동을 하고 살아온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때부터 아픈 곳이 많으셨다. 섬에서 육지에 있는 병원에
진료를 보고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는 과정은 녹록지않았다. 의사의 소견을 듣기위해 쉼없는 기다림과 짧은 만남.
허무했다가 답답했다가 그래도 수술결과가 괜찮으면 만족해야했던 시간이었다.
큰 병원 의사선생님은 다정하지 않은 사무적인 사람들이었는데 책 속에서 만난 아홉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모두가
따듯한 느낌이었다. 정신과 의사라는 굳이 세분화하자면 사람의 마음과 말을 듣고 치유해주는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싶기도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의사선생님이라면, 내 마음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진실된 마음이 닿아 치유라는
처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놀랐다.
작년연말즈음 갑자기 우리집에도 아픈사람이 생겼다.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워진 아버님이 동네 내과를 찾으셨는데
폐소리를 들어본 의사가 당장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보시라고 했단다. 대학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하면서 또 느꼈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걸.
가족 중에 어느 하나가 아프면 다른 가족들도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병은 시간이 약이라고 말할테지만
가족 구성원 중에서 아픈 사람이 있다는건 모두에게 슬프고 인내하는 시간을 갖게한다.
책에서 아들을 잃은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들과 조금 다른 아들, 가족이 힘을 합쳐 살았고 길러낸 아들의 죽음은
황망했고 남은 가족들을 병들게했을테다. 남겨진 가족들의 곁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하고 있을 의사선생님의 글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늘 마지막처럼
나는 재난 경험자와 유가족들을 통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지 배우고 나의 상실을 위로받았다. 유가족들을 만나다 보면
평범한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바로 오늘이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마지막 하루일지 모른다.
지금 그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가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의 표정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이 문장을 몇번이나 다시 보았다. 그리고 꽤 많은 울음을 쏟아내었다.
학창시절 열심히 풀던 문제집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라는 글을 수도 없이 마주했었다. 주어진 시간. 개당 1분 내외로
생각하고 풀면 어느 정도 시간이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주어진 시간이 삶에도 적용해야만 하는 날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두렵다. 언젠가 끝이 있을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끝이 너무 빨리 내 앞에 당도했다.
사람은 누군가의 불행으로 내 하루를 위로 받고 안도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사실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 같다.
정신의학과 의사도 재난 경험자와 유가족들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지 배우고 나의 상실을 위로받았다고 하니,
우리의 오늘을 조금 더 단단하고 즐겁게 보내야함은 나의 의무다.
사실 나는 정신의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어느정도의 우울함은 누구에게나 있고, 나의 우울은 평범한 것일거라 스스로 판단했다.
갑작스런 가족의 부재는 예고가 없어서 남겨진 사람을 아프게 한다. 실제로 얼마 전에도 축제를 보러 갔다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 젊은 청춘들이 있었고, 수학여행길에서 사고로 떠난 내 큰아이 또래의 아이들도 있고, 자살로 영영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으니.
여러가지 이유로 슬픈 날들이 이어진다. 책을 읽는 것도 사치인가 싶어서 한참만에야 꺼내든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러분야에서
다루는 의사선생님들의 눈과 귀의 경험치로 우울의 깊이와 위로를 담아내었다.
평범한 것도 같았고 따듯하기도 했고, 어렵고 딱딱한 의사선생님의 말이 아니라서 좋았다. 마음이 힘들고 마음이 힘들었던 사람들과
함께 읽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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