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창비청소년문학 123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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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가 겪는 일들이 꿈같을 때가 있다.

다시는 꾸고싶지 않은 꿈 이기도 하고, 오래 두고 기억하고 싶은 꿈일 때도 있고.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꿈같은 순간'들은 전자였다.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고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고 결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득하고 서럽고 눈물이 나던 순간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 기억에서 멀어져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가 겪는 이런 경험이 '시공간을 넘나든다'는 표현과 맞닿는다면 이해하기가 괜찮을 것 같은데, 신의 영역같기도 하고

과학의 영역같기도 하고 상상의 영역같기도 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마주했다.



책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속의 인물들은 복잡하고 안타까운 삶의 경험을 마음에 담고 산다.

부부의 처음은 서로 같은 곳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면서 가족이 해체된다.

부부가 흔들리는 순간들을 마주할때마다 더 많이 흔들렸던건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다. 아빠의 부재, 엄마의 피로는 아이들의 마음에 슬픔을 남긴다.



남들과 똑같이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에 살아야하고 남들이 가는 곳으로 여행을 가고, 남들이 좋다는 음식을 먹으러 가고, 비슷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면 그뿐이라 여기던 때가 있었다.

결론은 남들처럼 살기는 어렵다로 끝났지만 말이다.

남들과 똑같이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결혼하고 나이먹고 꽤 늦게 깨달았다. 깨닫고나니 마음에서 놓게 되는 부분도 있고 받아들인 점도 있다. 홀가분해지기도 했고 무겁기도 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안정이 찾아왔다.

책 속 가족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남들과 비슷해보이는 가정이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니 상처를 입은 부부가 있었고,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던 아이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엄마는 가장이 되어 직장을 찾았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상한 집, 이상한 소리, 이상한 것이 가득한 곳에서 숨어살던 1층 가족들을 만나게 되고 서로의 상황에 대해 애써 궁금해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감정들과 마주한다.



책을 읽으면서 1층 가족들의 행복을 빌고 또 빌었다.

2층 가족들은 일상의 평온함을 찾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살짝 놓였고.

눈을 감고 소리를 떠올려 본다.

미세한 입자들이 마주치는 소리.

이른 아침 알싸한 공기 속에서 안개와 꽃향기가 서로 부딪는 소리.

멀리서 오는 종소리 같은, 가까이서 오는 쇳소리 같은.

소리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준다.

처음 그 집에 발을 들이던 날, 그 순간으로.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꽃향기가 가득한 어떤 공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코로 느껴지던 싱그러움이 그랬고, 활자 속에 머금은 물기가 그랬고, 새의 소리인지 종소리인지 내 귀로 전해져 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마주하는 매 순간 삶의 장면들이 어쩌면 하나로 이어져 어느 것이 경계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시공간이기도 한 것 같아서 새로웠다.

오래전 기억에서 어린 내가 찾아오기도 하는 밤이면 어쩔 줄 몰라 울기만 했던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애틋한 마음에 대해 오래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다.

#박영란
#시공간을어루만지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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