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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글쓰기
신나리 지음 / 느린서재 / 2025년 7월
평점 :
글을 막 알게 됐을 무렵부터 '글쓰기'가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 일기쓰기는 더 잘하고 싶어했다. 매일 일기를 써서 선생님 책상 앞에 페이지를 엎어놓으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줬던 시절이었다. 종종 빨간펜으로 짧은 코멘트도 달아줬는데 괜스레 볼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된지 오래 지났다. 여전히 글을 잘 쓰고 싶다. 글쓰기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괜히 설렌다. 글쓰기 강좌가 있는지 살피는게 일상이 되었고 몇번 수업에 참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내 안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쓰고 싶다'에서 멈춰 있다. '쓴다'로 고쳐야만 진짜 글이 될텐데 쉽지않다.
이번에 받아 본 책은 [무정한 글쓰기]는 나의 내밀한 곳에 있는 쓰고싶은 마음과 욕구를 제대로 바라보게 했다.
'쓰고 싶다'에서 '쓴다'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글쓰기 실기 수업 이라는 짧은 문구처럼 글쓰기를 위한 책이다.
📚 이 책에서 다루는 글쓰기란 자기 홍보를 위한 글과는 다르다. 업무용 보고서나 마케팅에 필요한 카피라이팅이나, '소득세 환급받는 법'과 같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글도 해당되지 않는다. 내 안에 고인 문제를 바라보고, 그것을 나의 언어로 해석하는 글이다.
이렇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류의 책은 멀리하는 편인데 이 책은 이렇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식의 책이 아니라서 마음이 갔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부터 찬찬히 살펴보란다.
가령, 행복을 말하려면 세밀하게 쓰라는 식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행복하지 않다면 쉽게 결론 내려고 하지 말고 모호함을 살피라고. 뻔한 이야기, 두루뭉술하게 말하지말고 구체적으로 행복의 순간을 찾는 일은 내 일상 속에서 내가 마주하는 순간을 찾는 일일 것이다.
일단 쓰고 분량을 채워야만 될 것 같아서 늘 내 앞의 종이는 백지였는데 조금씩 정리한 후 다시 써봐야겠다.
📚 글쓰기를 당장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는, 결핍과 허기이다. 단순히 충족되지 않는 욕구와는 구별된다.
📚 어떤 장소를 묘사하듯이 써 내려면 나를 잊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묘사할 때 핵심은 나의 시선을 따라가되, 설명 충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힘들었다, 불쾌했다, 가기 싫었다'와 같은 감정에 글쓴이가 푹 빠져 있으면, 독자는 글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불쾌했다고 쉽게 느껴버리는 나를 써야지, '나는 불쾌해'라고 말하면, 독자는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놓친다. 경험을 쓰는 에세이에서 감정적인 토로나 자책하는 태도는 경계 해야 한다.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하루의 일과를 쭈욱 나열하면서 자기 객관화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쓰는 글이었다. 항상 글의 말미에는 자기 반성으로 마무리되는 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글보다 감정만 토로하며 쓰는 글. 때로는 일기 였다가, 읽었던 몇 권의 책의 독후감 이었던 글이었다.
📚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쓰는 연습을 한다. '무엇을 해야 한다, 무얼 하겠다'라는 글이 아니라 '하고 있는 것'부터 관찰하며 써본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가게 될 것이다. 기혼여성들에겐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도록 오래 훈련받았으니까.
자유로워지기 위해 글을 썼다는 작가의 말은 아이를 양육하며 글을 쓰는 몇몇 여성 작가들에게서도 들은 말이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로 살면서 글을 쓰며 내 안의 감정을 풀어냈다는 말을. 좋은 엄마가 되기위해 스스로를 내몰면서 버틴 날들 속에서 쓰는 행위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아직도 육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아이와 조금씩 분리되는 일이 생긴다. 함께 자던 큼직한 침대는 각자의 공간에서 잠들고 일어나게 되었고, 모든 결정을 엄마에게 맡기던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순간마다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아 머쓱하다.
각설하고, 책 [무정한 글쓰기]는 다정하고 친절함을 바라는 사회적 시선을 벗어나 씀씀하게 그려가는 나의 결인 것 같아서 안도하게 한다.
쓰고 싶고, 실제로 쓰고 있는, 여전히 쓰는 일에 목마른 사람들이 무정한 글쓰기를 읽다보면 나처럼 작가의 이전 책도 찾아 읽고 있을 것이다. 엄마로 살면서 늘 동시대의 여성들에게 연대하는 기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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