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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개봉된 지구 종말을 다룬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만약 내가 사는 세계가 몇 년 후에 사라진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부터 만들겠다고 했고, 우스갯소리로 사과나무부터 심겠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 늘 꿈꿔왔던 ‘세계여행’을 떠나겠다 말한 이도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낯선 곳을 여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막상 쉽게 떠날 수 없는 것이 여행이다. 비용과 시간을 생각해야 하고 계획을 잡아야 하고 무엇보다 이야기 속 상황처럼 절박함이 전제하지 않는 한 여행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 것 같다.
책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지은이는 여행을 떠났다. 아무런 전제 없이 훌쩍 모든 것을 놓고서 2년 6개월 동안 북유럽 스웨덴으로.
어딘가에 정착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멋있다고 바라볼 수는 있어도 쉬이 따라 하기는 어려운 삶을 지은이는 행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이 여행에 대한 내 호기를 채워 줄 단순한 여행기로 생각했다. 스웨덴의 어떤 곳이 아름다우며 꼭 맛봐야 할 음식은 무엇이 있는지 등의 여행정보가 책 속에 가득할 것이라 추측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채로운 스웨덴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곳의 문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과 고민, 하루가 책 속 곳곳에 담겨있다. 무엇보다 이 책 속에서 스웨덴이란 나라에 관심이 생겼던 이유는 지은이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에서 온 데스피나, 터키에서 온 셀다, 베트남 출신 미국인 호앙,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자란 디나, 스웨덴 출신 오스카 등.
그들은 낯선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친구가 되었다. 물론 나이차이도 많고 문화적으로도 분명한 차이는 존재했지만 그들은 함께 공부하며 친구가 되어갔다.
스웨덴의 천국은 유월에 시작된다.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사라지고 크고 둥근 태양이 지상으로 나온다.
섭씨 25도의 자애로운 온기가 지상 곳곳에 뿌려진다.
마치 긴 겨울을 보낸 스웨덴 사람들에게 그동안 삶에 대한 낙천성과 품위를 잃지 않은 것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나는 유럽의 도시들을 동경하지만 스웨덴이란 곳은 왠지 낯설게 다가왔다. 들어보지 못했고 바라보지 못했고 읽어보지 못했던 스웨덴이 이 책을 통해 가까이에 와 있는 느낌이다.
스웨덴의 어둠과 빛은 내가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곳과는 사뭇 다르다.
오후 두 시에 어둠이 스며들고 새벽 두 시 빛이 깨어나는 스웨덴.
그 곳의 빛과 어둠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거리, 사람, 빛, 어둠, 호수 등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조금은 외로워진다.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은 도시, 낯설다는 느낌조차 낯선 곳, 글쓴이는 어떻게 그 곳에서의 시간을 견딘 것일까?
해가 지는 것도 밝아오는 것도 빠르게 느껴지는 그 곳에서 글쓴이 역시 이방인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은 두렵고 외로운 이방인.
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이방인이라 느껴질 때 엄습해오는 외로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지은이는 그것이야 말로 꿈을 꾸고 이상을 좇는 삶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전한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용기, 어디론가 발 길이 닿는다는 설렘, 낯설지만 두근거림, 모든 것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며 또 과정이라고.
기회가 되면 스웨덴 웁살라에서 발보르데이를 즐겨보고 싶다. 매년 4월 30일 어둡고 긴 스웨덴의 겨울과 작별을 고하고 마음껏 축배를 들고 싶다.
책 속에서 느껴지는 이국의 향기가 평범한 내 삶에 진하게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