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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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옛정취를 느낄수 있는 곳이 고궁보다 더 좋은 장소도 없으리라. 계절 따라 달라지는 멋드러진 풍경들을 접할 수 있는 그 곳을 시간나면 아이들과 들르곤 한다. 봄에 화사한 색으로 물든 고궁은 꽃 천지이고, 여름 신록이 푸르를 때면 큰 가지가 드리운 시원한 그늘아래 서면 그곳이 서울 한복판 임을 잊게 한다. 낙옆 쌓인 길이나 소복히 쌓인 눈길을 걸을 때면 비단 치마 자락 스치는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고궁의 여러 곳들 중에서 유독 단아하고 멋스러운 곳이 왕비나 빈들의 처소였던 낙선재이다.  

 

하지만 낙선재에 마지막 조선의 황녀 덕혜옹주의 한맺친 슬픈 사연이 서려 있음을 미처 몰랐다. 덕혜옹주의 삶을 담은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고궁을 십수년간이나 다녔어도 그녀에 관해선 한 마디도 들을수 없던 이유는 도대체 무얼까?

 

" 나는 낙선재에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총기가 들 때마다 삐뚤한 글씨로 쓴 덕혜옹주의 마지막 메세지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고종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시대적 비극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감당할수 밖에 없었던 잊혀진 비운의 황녀, 덕혜. 일제의 황족 말살 정책으로 인하여 황족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유학이라는 명목아래 일본땅에 볼모가 되어야만 했고 일본인과 강제로 혼인해야만 했으니 나라 잃은 아픔이며 또다른 비극의 서막이였다.   

 

일본 백작과 결혼했어도 자신이 조선의 황녀임을 한시도 잊은적 없는 덕혜는 그녀의 유일한 한점 혈육 정혜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 갈 날만을 기다리며 딸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조선왕실의 예법을 가르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정혜가 학교에 들어가 조센징이란 놀림을 받고 엄마를 멀리하게 된다. 덕혜 자신이 일본땅에서 그토록 몸서리 치도록 겪었던 일인지라 딸에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체념으로 인해 그녀의 정신상태는 피폐해져만 가고, 급기야는 정신병원에 감금된체 여러 해를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지내게 된다. 덕혜옹주를 조국으로 모셔오기 위해 이승만 정부에 귀환을 요청했지만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이승만은 왕실 재산을 국유화하고 왕족들을 천대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그녀의 마지막 말에 참았던 눈물이 주루륵 흘러 내린다.

 

"내가 조선의 옹주로서 부족함이 있었더냐, 옹주의 위험을 잃은적이 있었더냐. 나의 마지막 소망은 오로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

 

황녀로 태어난 귀한 존재임에도 한번도 황녀답게 살지 못하였지만 그녀 나름의 황녀임을 잊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짓이 더 슬프고 처연하다. 그녀의 잊혀진 삶속에서 아직도 아물지 않은 역사의 아픈 상처를 본다. 그녀의 이름이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그녀의 삶을 다시금 되새기며 그녀를 기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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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피의 천사 - 바나나 하우스 이야기 1 독깨비 (책콩 어린이) 5
힐러리 매케이 지음, 전경화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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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호호, 하하하~ 이책을 읽기 시직한지 체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길이 없다. 바나나 하우스에 사는  카슨 가족처럼 자유롭고 별난 가족이 또 있을까?  '새피의 천사'는 시종일관 웃지 않고는 도저히 읽을수 없는 작품이다. 아니 입양이란 무거운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야기임에도 무겁기는 커녕 재미있고 유쾌하기만 하니 이 가족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런던에 자그마한 작업실을 갖고 있는 화가인 아빠, 같은 화가지만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집 한구석에 작업실을 차린 아이들은 자유롭게 커야 한다는 교육 철학과 결코 야단치거나 화내는 법이 없는 낙천적인 엄마, 4남매의 맏이며 운전교습 중 멋진 강사에 푹 빠진 캐디, 극지 탐험가가 꿈이기에 고소공포증 치료를 위해 훈련하는 집안의 요리사를 도맡아하는 인디고, 성격이 좀 사납긴 하지만 혼자 있는걸 좋아하는 새피, 그림 그리는걸 좋아하는 막내 로즈.

 

화가인 엄마에 의해 지어진 캐디, 세피, 인디고. 로즈는 각가 카슨씨의 아이들 이름이며 특이 하게도 모두 색상표에 나와 있는 색깔 이름과도 같다.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새피가 자신의 이름을 색상표에서 발견하지 못한 어느날까지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새피. 여덟 살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충격적인 사실임에 틀림 없다. 새피도 큰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가족들의 좌충우돌, 정신없는 행동들 탓에 누구 한 사람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모두 자신의 동생이 언니가 입양아란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그게 뭐 큰일인가? 라고 되려 우리게 묻는듯 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새피와 가족들. 그들의 사랑과 가족이라는 깊은 유대감이 없으면 불가능 하라라. 새피도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으며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늘 자신만 이방인이란 생각을 떨칠순 없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난 뒤 열세살이된 세피 앞에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새피의 천사상'을 받게 되고 천사상을 찿으러 친구 사라의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시에나로 여행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천사상을 찾게 되지만 새피에게 '천사상'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가족의 품을 잠시 떠나면서 그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기에.'새피의 천사'상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소재이긴하나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세피와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변화하는 가족 개념과 입양문제를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 볼수 있도록 해준 작가의 대담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미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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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 푸앵카레상을 향한 100년의 도전과 기이한 천재 수학자 이야기
조지 G. 슈피로 지음, 전대호 옮김, 김인강 감수 / 도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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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렐만의 이름 조차 들어 본적이 없었다. 그가 100년간 풀리지 않는 수학의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었다고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는.

 

1904년 앙리 푸앵카레가 처음 제기한 이후 100여 년 동안 수많은 수학자가 도전했지만 풀지 못한 ‘푸앵카레의 추측’은  고차원 공간을 이해하고 우주의 모양을 추론하여 우주의 신비를 푸는 데 열쇠가 되리라 여겨지는  증명되지 않은 정리이다.이는 전 세계 수학자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10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2002년에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스티브 스메일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수학문제로 꼽았으며, 클레이연구소가 세계 7대 수학난제로 선정하였다. 수많은 탁월한 수학자들이 그 문제에 달려들어 학자로서의 일생을 걸고 해결을 추구했으며,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증명을 풀었다고 여겨 발표하고 대가를 치뤄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페렐만이 아무도 하지 못했던 것을 해낸다.

 

그는 100만 달러짜리 밀레니엄 수학상을 받을 권리를 최초로 획득한 주인공이 되었으며, 그가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었다는 자체 만으로도 수학사에 큰 획을 긋는 위대한 일임에 아무도 반대하는 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수학자에겐 최고 명예인 필즈상 수여를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수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많은 관심과 이목이 그에게 집중 되었다. 그가 누구인지? 하지만 여전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에 관해 알려진 것은 극히 일부분 일 뿐.

 

내가 그를 알게 된것은 우연히 본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와의 인터뷰를 하고자한 기자에게 인터뷰와 사진 찍기를 거부하며 낡은 아파트 입구로 걸어가던 모습이었다. 덩치가 큰 그는 발목 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입고 수염이 온 얼굴을 덮고 있어 흡사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 책을 쓴 이는 그런 그의 모습을 도스키예프스키의 소설에서 걸어나온 듯한 러시이인이라 표현했다.

 

그런 그에게 은둔자적 모습과 더불어 명예나 대중의 환호와 정치적 지원이나 금전과는 바꿀수 없는 순수한 학자의 모습과 맑은 영혼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후론 수학 역사상 최대의 수수께끼라 불리우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영국의 수학자 앤두르 와일즈의 이름 앞에 제일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을 거론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수학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건 사실이지만 푸앵카레의 추측이나 위상수학에 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단연코 수학사의 길이 빛날 여러 수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연구 실적을 담았음에도 단 한걔의 수학 공식도 나열 되지 않았다. 다소 어려운점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으리라. 푸앵카레의 이야기를 시작점으로 하여 풍부한 수학사의 역사적 사실들과  증명과정에 따른 여러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였으며 역사적인 수학사의 한 장을 장식한 순간을 접할 기회를 얻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 

 

20세기에 수백명의 수학자들이 제각기 자신의 방식대로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하려고 노력 하였으며, 실제로 많은 부분 기여 하였고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 냈다.

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어 수학자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그러므로 그들의 열정과 모험, 도전은 계속 될것이며 위대한 수학자의 탄생과 그의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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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이야기 - 투자가를 꿈꾸는 세계 청소년의 롤모델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4
앤 재닛 존슨 지음, 권오열 옮김 / 명진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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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도 다다익선이라 했나요. 그 중 돈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많으면 많을 수록 좋기에 더욱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러한 연유로 세상에서 최고로 부자인 사람은 누구인지 그에 관한 새간의 관심과 부러움은 상상을 초월 하지요. 부는 곧 권력과 명예를 의미 하기도 하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 갖는 달콤한 유혹과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여겨 집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돈을 사랑하였음에도 결코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은 현명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세계최고의 부자이며 '오마하의 현자'라 불리우는 워런 버핏이지요. 그가 단순히 세계 최고의 갑부였다면 부러움과 관심의 대상일 망정 사랑과 존경을 받는 매력적인 인물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가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청소년들이 닮고 싶은 최고의 인물로 꼽히는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어린시절부터 그가 자라온 이야기, 그가 가진 돈에 관한 가치관을 이 책을 통해 배울수 있다면 그 이유를 알수 있으리라 여겨 집니다.

 

워런은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했던가. 어릴 적부터 숫자에 관심이 많던 그는 숫자놀이를 좋아했으며 돈을 모으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중학교 때부터‘서른다섯 살에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부자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갖기 시작한다. 그는 장사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린시절 부터 껌을 팔았고 모두가 인정하는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새벽부터 신문배달을 하는가 하면, 핀볼 게임기 사업 등의 돈벌이와 학업을 병행하며 자신이 모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가도 하며 남들과는 다른 학교 생활과 특별한 성장과정을 보냈다.

 

성적이 떨어져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성적관리 또한 열심히 하여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그가 존경하는 가치투자의 대가인 '벤저민 그레이엄' 에게 배울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열심히 공부해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투자가로소의 기질을 갖추게 된다.

 

스승에게 가치 투자에 관한 가르침을 받은 그는 기업의 겉모습과 수치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남다른 통찰력을 갖추게 되었다. 고향 오마하로 돌아온 그는 '버핏 투자조합’을 설립한 후 전문 투자가의 길을 걷게 된다. 원래 섬유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매입하여 거대한 투자기업으로 변모시켜 세계 최고의 지주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으로, 미국 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에 투자하는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탁월한 투자가’이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큰손’이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워런 버핏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고 있다. 가장 현명한 투자활동으로 성공적인 수익을 거둔 최고의 투자가의 살아온 길을 되짚어 보며, 그가 지닌 돈에 관한 철학과 왜 많은 액수의 돈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는지, 돈이 지닌 참된 가치와, 진정한 부자의 의미는 무엇인지 가늠케 한다.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글로벌 경제 리더가 되기 위해선 지력, 창의력 그리고 인내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야한다고 이야기하며 열정과 노력으로 누군든 꿈을 이룰수 있음를 보여준다.

 

2006년, 워런 버핏은 자신의 재산을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여 역사상 최고의 기부자가 되었다. 그는 진정한 부자는 돈을 많이 버는것 보다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며 돈을 세상에 되돌려 줄수 있는 나눔을 실천을 몸소 보여 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워런은 청소년들의 모범이며 그들이 진정 닮고자 하는 사람 일수 밖에 없으리라.

나누는 기쁨을 아는 진정한 부자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며 우리니라의 재벌들도 그의 부에 관한 철학과 기부에 동참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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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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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단언하던 그녀, 최영미 시인이 동, 서양을 막론하고 평소 아끼는 세계적인 명시들과 그들에 각각 짧막한 해설을 덧붙여 색다른 시집을 냈다. 최영미 시인을 좋아하는 내게 그녀는 어떤 시들을 즐겨 읊조릴지, 그녀를 감상에 젖게 만드는 시어들이 무얼지 궁금했다. 잠 못드는 밤 나를 달뜨게 하던 몇편의 반가운 시들도 담겨 있어 오랜만에 옛추억에 빠져 본다.
바쁜 일상속에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류나 자기개발서들을 들척이며 지내다 보니 시를 좋아했는지 조차도 어렴픗해진다.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읊어대던 여학생은 이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즐겨 읽던 시집을 놓아 버린지 오래.
 
가을날 
                           -라리너 마리아 릴케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주시어,
무르익는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진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여러번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대로 외우고 다니며 중얼 거리던 시어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변화를 담은 멋들어진 표현들에 매료되었는데, 같은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왠지 깐깐하게만 느껴지던 최영미 시인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녀는 땡볕에 익어가는 하루가 다르게 포도다워지는 둥근 열매를 '무거워가는 포도'란 멋지게 표현할 시인은 릴케 밖에 없으리라 말한다. 꿈보다 해몽이라 했던가. 시인의 마음으로 읽는 시들은 다른 느낌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작자 미상의 '주문'부터 현대의 음유시인이라 불리워지는 레오너드 코엔까지,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그녀가 뽑은 시들은 처음 부터 내마음을 사로 잡고 묻어둔 감수성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한편 한편에 정성된 해설은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섬세함을 품고 있으며 함축된 시어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시인의 머리속으로만 가능한 재치있고 풍자적인 언어, 때론 아름답고 슬프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고 자유로운 언어의 향연들이 잔잔하게 다가오다 어느새 폭풍처럼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입안에서 톡톡 씹히는 보리 알갱이처럼 씹을 수록 단맛이 나고 입안 가득 번지는 보리향 처럼 한편 한편의 시들을 곱씹어 보며 그 의미와 아름다움에 행복해 진다.
 
루바이 27
 
              오마르 카이얌
 
젊었을 적에 내 스스로 박사와 성인들을 부지런히
찾아자니며 이런저런 위대한 논쟁을 들었지만
들어갈 때와 같은 문으로 나왔을 뿐.
언제까지나. 
 
루바이 49
 
반짝이는 금속조각처럼 호황한 일생인데
삶의 비결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할 건가 - 벗이여!
거짓과 진실은 머리카락 한 올 차이인데-
그대는 무엇에 의지해 인생을 살려는가?
 
처음 듣는 루바이란 사행시란 뜻이며 제목 없이 번호를 붙여 구분한다고 한다. 먼 옛날 페르시아의 시인은 인생무상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거짓과 진실은 단지 머리 한 올의 차이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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