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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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단언하던 그녀, 최영미 시인이 동, 서양을 막론하고 평소 아끼는 세계적인 명시들과 그들에 각각 짧막한 해설을 덧붙여 색다른 시집을 냈다. 최영미 시인을 좋아하는 내게 그녀는 어떤 시들을 즐겨 읊조릴지, 그녀를 감상에 젖게 만드는 시어들이 무얼지 궁금했다. 잠 못드는 밤 나를 달뜨게 하던 몇편의 반가운 시들도 담겨 있어 오랜만에 옛추억에 빠져 본다.
바쁜 일상속에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류나 자기개발서들을 들척이며 지내다 보니 시를 좋아했는지 조차도 어렴픗해진다.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읊어대던 여학생은 이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즐겨 읽던 시집을 놓아 버린지 오래.
 
가을날 
                           -라리너 마리아 릴케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주시어,
무르익는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진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여러번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대로 외우고 다니며 중얼 거리던 시어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변화를 담은 멋들어진 표현들에 매료되었는데, 같은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왠지 깐깐하게만 느껴지던 최영미 시인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녀는 땡볕에 익어가는 하루가 다르게 포도다워지는 둥근 열매를 '무거워가는 포도'란 멋지게 표현할 시인은 릴케 밖에 없으리라 말한다. 꿈보다 해몽이라 했던가. 시인의 마음으로 읽는 시들은 다른 느낌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작자 미상의 '주문'부터 현대의 음유시인이라 불리워지는 레오너드 코엔까지,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그녀가 뽑은 시들은 처음 부터 내마음을 사로 잡고 묻어둔 감수성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한편 한편에 정성된 해설은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섬세함을 품고 있으며 함축된 시어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시인의 머리속으로만 가능한 재치있고 풍자적인 언어, 때론 아름답고 슬프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고 자유로운 언어의 향연들이 잔잔하게 다가오다 어느새 폭풍처럼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입안에서 톡톡 씹히는 보리 알갱이처럼 씹을 수록 단맛이 나고 입안 가득 번지는 보리향 처럼 한편 한편의 시들을 곱씹어 보며 그 의미와 아름다움에 행복해 진다.
 
루바이 27
 
              오마르 카이얌
 
젊었을 적에 내 스스로 박사와 성인들을 부지런히
찾아자니며 이런저런 위대한 논쟁을 들었지만
들어갈 때와 같은 문으로 나왔을 뿐.
언제까지나. 
 
루바이 49
 
반짝이는 금속조각처럼 호황한 일생인데
삶의 비결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할 건가 - 벗이여!
거짓과 진실은 머리카락 한 올 차이인데-
그대는 무엇에 의지해 인생을 살려는가?
 
처음 듣는 루바이란 사행시란 뜻이며 제목 없이 번호를 붙여 구분한다고 한다. 먼 옛날 페르시아의 시인은 인생무상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거짓과 진실은 단지 머리 한 올의 차이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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