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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식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평점 :
실컷 울고 나면 눈물의 무게만큼 가벼워진 마음울 느끼게 된다. 철들무렵, 어느날 갑자기 늘 제자리 우뚝 서 있는 큰 고목처럼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 주시던 아버지께서 응급실에 실려 가셨고, 곧바로 중화자실로 옮겨가시던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평소 운동을 좋아 하셨지만 운동만큼이나 약주를 즐기셨던 아버지의 간이 많이 나빠졌단 병원측의 말에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맏딸이기에 동생들 앞에서 가슴으로 통곡하며 울음을 삼켰다. "나는 처음으로 눈물이 얼마나 무거운지, 때로는 몸보다 눈물이 무겁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이책의 글귀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온다. 이 말의 의미를 알기에. 아버지께서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구나, 난생 처음 싦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했더랬다. 그렇게 나도 어른이 되어갔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가슴에 슬픔 한 덩이를 품으면 어른이 되는 걸까. 성장 소설 '성인식'을 읽으며 한 소년이 예전의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시우 대신 내 모습이 거기 있다. 고등학생인 주인공 '시우' 는 어버이날을 맞아 오랜만에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에 온다. 맹장수술을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몸보신을 이유로, 집에서 기르던 개를 어머니는 아들 스스로 잡으라 하신다. 어머니의 그 마음을 알기에 거역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한 생명을 제 손으로 죽이게 된다. 한편, 시우의 절친한 친구인 진만은 여자친구의 임신을 알고 사실을 가족에게 당당하게 밝히며 아이를 기르겠다고 한다. 아무 주저없이 미래를 계획하고 끗끗하게 살아가는 어른스러운 진만을 부러워하며 마침내 칼을 들고 자신이 직접 함께 자라 온 정든 개 칠손을 잡는다. 제 손으로 한 생명을 끊음으로써 오랫동안 애착을 가져왔던 대상과 스스로 이별하는 아픈 의식을 치루며 마침내 어른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되다. 나름의 성인식을 치른 것이다. 시우의 갈등과 개 잡는 과정이 가슴 저미도록 섬세하게 그려진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 버린 듯 허탈한 기분과 이젠 어린시절로 절대 되돌아 갈수 없음을 느끼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중학생 슬기는 함께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의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슬기는 같은식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왕따를 시켰던 친구 정미를 떠올린다. 친구의 기분이 어땠을까 생각하며 후회와 죄책감에 정미의 집에 전화를 해보지만 정미는 그때의 상처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마음에 남았다는 말을 듣는다. 심각한 왕따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그린 '문자 메시지 발신인'이다. 가족들과 함께 함께 암탉과 오리들을 키우면서 지난번에 다니던 학교에서의 왕따로인한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자 전원생활을 선택했지만 그 또한 만만치 않다. 친구와의 관계는 여전히 서먹서먹하고 친구 대신 마음을 주던 동물들을 조용하고 안락한 전원생활을 방해한다며 위생과 소음 문제를 들어 법을 들고 나선 동네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 온다. 더이상 시골도 닭과 오리를 키우며 살고자했던 가족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과 이기주의을 담은 암탉.
욕짱 할머니와 얼짱 손녀에서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가금류의 살처분 명령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운데 할머니가 가족처험 여기며 애지중지 키우던 '때까우'(거위)들 지키려는 할머니와 학교 선생님, 이장, 교회 목사, 경찰 등 동네 사람들과 맞서며 그들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어른들의 이해관계 사이에 끼인 손녀딸 필분의 갈등과 고민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산목숨을 생매장시킬 수 없다"는 할머니의 마음을 손녀 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홀자 끝까지 버티던 할머니는 거위들을 데리고 산으로 나가버린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와 함께 최근 정부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개방 선언 후 농민들은 삶의 기둥이며 희망인 소 값 하락을 겪게 된다. 전국은 연일 촛불시위로 떠들썩한 가운데, 인근 축산농민의 자살 소식을 접한 오연이는 광우병이란 단어가 농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몸소 체감하게 된다. "촛불시위마저 사치로 보인다"는 오연이에게 도시의 시위나 떠들썩한 신문,방송의 보도내용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청각장애자인 어머니와 늘 문자메시지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어느날 연락이 되지 않고, 아버지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 속 농약병을 보게 되고 아버진 그제야 아들이 무엇을걱정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는 먼 나라 이야기 등 이 책에는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와 베트남 신부, 촛불시위, 조류독감, 광우병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이야기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단편속 주인공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고민과 갈등을 온몸으로 겪는다. 아픈 상처가 곪아 터지고 새살이 돋듯 그렇게 눈물과 괴로움의 터널를 지나 성인으로 거듭 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선 지난 날의 내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아픔을 딪고 선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듯 누구나 겪는 성장통도 지나고 나면 그뿐, 다 괜잖아 질 것이기에 힘내라고 어른으로 그저 지켜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