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출신 작가가 그의 고교시절 경험담을 그린 '오렌지 리퍼블릭'을 펴냈다. 90년대 압구정의 일명 '오렌지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지 슬쩍 의심이 간다. 강남에는 세 개의 종자가 있단다. 재래종인 ‘감귤’. 개발 전부터 살던 원주민이거나 개발 초기에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들어온 사람들로, 운이 좋은 편이기는 했으나 부자라고는 할 수 없고, 신흥 귀족을 형성한 80년대에 유입된 외래종으로 그들 중 일부가 이후 ‘오렌지’로 불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강을 건너온 ‘탱자’가 있었으니 강남에 살지만 온몸으로 강북인 애들이란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회계사인 고등학생 노준우다. 키도 작고 소심한 성격에 빽도 없는 우리의 주인공은 8학군 친구들 사이에선 왕따다. 회계사 아들쯤은 오렌지 공화국에선 그저 일반 시민에 속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의 왕따 극복기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남다른 재능인 잔머리와 놀거리가 없던 왕따시절 읽어둔 풍부한 독서를 무기삼아 그는 잘나가는 또래 그룹에 접근한다. 국회의원, 강남 부자의 아들딸들이 속한 그들 패거리의 엽기적인 행각은 실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는 강북 부자의 외동딸 신아를 만나게 되고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녀의 온갖 악취미를 알면서도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평범한 신세대임을 거부하며 신인류라 칭하는 그들의 유일한 생산방식인 소비문화 행태와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좋은 교육을 받는다는 건 별게 아니며 남들은 죽도록 노력해야 얻는 것을, 어떤 이들은 놀면서 터득하게 된다는 뜻이며 그게 노는 물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였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대로 부와 권력의 배경이 또다른 선천적인 재능이다. 90년대 초반에 한국 최초의 힙합 그룹을 결성한 가수와 이십대에 한국의 음반 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된 엔터테인먼트계의 큰손이 모두 강남 8학군에서 나온 건 우연이 아니란다. '민주주의 사회는 공평했다. 종과 유를 막론하고 동일한 게임을 해야만 했다. 일테면 포유류거나 어류거나 똑같이 수영 실력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포유류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어류는 하던 대로 하면 그만이다. 자유경쟁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냐? 해박한 인문학적 교양은 뭐고 뛰어난 예술적 소양은 무슨 소용이냐. 세계 명작보다 일본 만화가 위대하고, 미국의 팝이 러시아 클래식보다 예술적이며, 영혼의 깊이보다 메이커의 가격이 더 가치 있다는 게 어류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기준이었다. 억울하면 고래가 되는 수밖에. 생태적으로 우성과 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 씁쓸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다. 오렌지 리퍼블릭의 일원이 된 준우는 친구들의 우월한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선생님의 약점을 이용하여 협박과 타협을 하기도 하며, 강남출신을 내세워 향락을 일삼는 이들에게 복수 하기도한다. 그들에게 있어 청춘이라는 시간은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은 주체하기 힘든 그래서 결코 멈출 수도 뒤돌아 볼 수도 없는 연소가 끝날 때까지 타야만 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무슨일이든 하지않을 수 없기에 그들은 복수와 일탈의 행위를 일삼는다.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복수임을, 승자도 패자도 없는 한판 게임임을 깨닫게 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된 그들은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만의 여행을 떠난다. 길을 달리고 있는 게 아니라 차원의 경계를 통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속의 최면은 부산대교에 올라서자 우리를 비현실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다. 중력은 검은 바다 속으로 추락하고 길이 사라진 허공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물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중략)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인생의 어느 한때에, 우리는 온통 하얗게 빛나고 있는 어둠 속에서 그렇게 영원했었다. 세상의 모든 안개가 우리를 향해 침묵하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작가는 90년대 강남에 대해 이야기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은 우리가 강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평범한 서민의 눈에 비친 그들의 문화가 낯설고 부정적일 수 밖에 없음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무성한 소문으로만 듣던 오렌지문화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와 세태의 일부를 글로써 만나 볼 수 있게 되었음에 무게를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