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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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이지요~

얼마전 이외수님이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감성마을로 돌아온 이외수님이 한 말중에 책 제목인 쓰러질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암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말이 아닌가 싶다.
누구보다 어려움에 처해있고 고난이 닥친 인생의 한 자락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힘을 내서 당당히 문제와 맞서고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존경스럽다.




이외수님의 책은 거의 안 읽어본 것이 없다.
그만큼 그의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함이 참 좋다.
어떤이들은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을 맘에 들어하지 않으며 그의 글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친구중에서도 이외수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이유는 여러가지라 딱 하나로 요약하기도 어렵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었기에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일까?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인가는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그냥 그의 글이 좋다.
어찌 내 삶도 제대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것을 남의 삶을 들여다 보며 잘살았네 못살았네 평가 할 수 있으랴
혼외 아들 문제로 더욱 불거진 그에 대한 안 좋은 시선들이 더욱 그를 힘들게 하였을 것이다.
그를 질타하고 욕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얼마나 잘난 인생 살고 있으시는지요?




이외수님의 《아불류시불류 》에도 정태련님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 그의 그림들을 접했을때 너무 마음에 들어 이외수님의 책을 소장하게 되었다.
물로 글이 더 좋은게 사실이지만 이번에 《쓰러질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은 글보다는 그림이 더 마음에 든다.
이름모를 풀과 나무, 꽃들이 살아있는 듯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흔들릴것 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더욱 친숙한 식물들이 많아 어릴적 추억까지도 되살아나게 만들어 주었다.
거의 모든 그림들에 식물들을 알것 같아 혼자 웃기도 하였는데 과연 이 식물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상상도 하게 되니 더욱 재미있고 웃음이 났다.




이번에는 카멜레온같이 아름다운 색을 지닌 물고기들이 물속이 아닌 하늘은 날아 다니는 것 처럼 헤엄치고 있는 모습들이
신비감을 자아내며 고운 빛깔을 한껏 뽐내고 있다.
이외수님의 글보다 그림에 더욱 빠져버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 지고 구수한 시골향기가 나는 듯한 그림들이다.
정말로 책에서 향긋한 향이 나서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든다.

이외수님이 이 책을 집필할 때 많이 아프셨던게 아니였을까 생각이 들어
책을 읽는데 더 집중하게 되고 이렇게 그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된것에 감사함이 더해졌다.
글을 쓰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 여러 책에서 묘사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작가들은 어느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몸이 아프셔서 그런지 집필활동에 힘이 떨어지셨는지 모르겠으나
그동안에 읽었던 그의 글과는 약간 다른것 같다.




시원시원하고 날카로운 꾸지람과 비판들
직설적이고 호된 호통의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
글 중간에도 악플러들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악플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어찌 사람이 그리 쉬운가
이제는 그들에게 무엇이라 할 기운이 다 빠질정도로 시달린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대부분 그의 책들을 읽으면 게으르고 태만한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 충고와 격려의 말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이 책의 한 부분에 나온 부분을 예로 들어 본다.


P62. 누운 나무에는 열매가 안 열린다는 속담이 있다.
죽은 듯이 방 안에 드러누워 허송세월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생기는 게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움직이라.
움직여야 행운도 따라온다.

나 또한 취업 준비로 힘들어 하던 나날의 연속일때 그의 글을 읽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힘들때 옆에서 따끔하게 정신차리라고 말해주고 힘내라고 말해준 그 사람이 바로 이외수다.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도 그를 생각하면 고통을 함께하고 모진 시간들을 함께 해준 고마운 인연이라 생각된다.





또한 그가 들려주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도 참 좋다.
사랑에 행복하고, 상처받고, 아파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의 사랑에 대한 예찬은 성현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

P82.

헌 사랑이 가면 반드시 새 사랑이 온다

연애는 봄처럼 화사하게 꽃피우고
욕정은 여름처럼 뜨겁게 불태우며
사랑은 가을처럼 풍성하게 수확하고
이별은 겨울처럼 쓰라리게 인내하는 것. 



P135. 
흔들리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외수님의 글을 통해 많은 깨달음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고, 그로인해 힘들었던 지난 날들을 잘 지내올 수 있었다. 앞으로도 살아갈 힘이 잦아들고 용기가 없어 질 때쯤 그의 글을 읽으며 다시 힘들내고 싶다.
언제나 그랬던것 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누구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할소리 하는 감성마을 이외수가 되길 바란다. 이 책은 나에게,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놓은 듯도 하다. 가장 힘이 되어야할 사람, 가장 힘을 내어야할 사람, 바로 이외수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것이다. 그대로 주저앉지 마시고 흙먼지 툴툴 털어버리시고 다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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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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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라서 슬프다"
그녀의 슬픔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조선을 발칵 뒤집은 충격적 스캔들
왕실의 여인에서 음녀와 탕녀의 대명사로 전락한 어우동,
김별아 작가가 재해석한 매혹적이고 우아한 파격!

어우동이 매혹적이고 우아한지는 모르겠고 파격적이긴 하였다.
어우동이라고 하면 TV에서 드라마에 나왔던 모습이 먼저 그려진다.
이 책에서는 어우동이 절세미녀를 총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여인으로 비춰진다.
살결은 뽀얗고 입술은 불그스름하고 몸매는 볼륨감이 넘치고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어느 고관대작과도 시를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문예를 갖춘 여인이다.
어떤 남자라도 그녀가 맘만 먹으면 단번에 유혹하여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실상 남편 태강수에게만은 예외였을까?
모든 남성들이 정복하길 원하고 취하고 싶었던 그녀를 한 남자만은 그녀를 버렸다.

생각건데 어우동은 처음부터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여인이 아니였을 것 같다.
그저 자신의 삶이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 자신을 드러내기 보단 감추고 숨기기 바빴던 인생이였나보다.
처음부터 남편과 살면서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남자의 마르지 않는 갈증을 풀어 줄 수 있었다면 과연 쫒겨났었을까?

어우동은 남편으로 버림받았기에 제2의 삶을 산 것이고,
생에 미쳐 알지 못했던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에서도 어떠한 계기가 있음으로서 변화를 느끼고 깨달음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구한 운명이라 말하고 어우동의 삶이 슬프게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나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고 싶다.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여인이 아니라
한 남자와 이별로
다른 사랑을 찾아가는 한 송이 꽃으로 화려하게 피어 그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그윽하게 남기고 떠난 여인이라.
꽃은 언젠가 시들기 마련이다.
그녀 또한 그렇다.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더 아름답게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살다 갔다.
그녀에게는 끝까지 자신의 모든것을 내 걸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랑이 비록 하나가 되지 못하였지만 그토록 애절하고 뜨거운 사랑이 또 있을까.
그녀도 죽는 그 순간까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쾌락을 즐긴것이 아니라
단지 사랑받고자 하였고 사랑을 받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던것 뿐이다.
남녀의 정교로 사랑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그녀이지만
이미 가슴에 난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이 커져버려
그 허전함과 고통을 메울수도 아물게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찌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사랑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남편 태강수와의 인연이 처음부터 잘 못된 것이 아니였을까?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고 서로 아껴주며 살아갈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녀가 어우동에서 현비로의 삶을 꿈꾸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부부란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그 관계를 오래 유지해 나가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믿음이 생기며 오래 유지 될 수 있다.
믿음이 깨지면 그 관계는 유지 될 수 없는것은 당연하다.
부부와 결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처음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이게 무슨 내용인지 도대체 파악하기 힘들었다.
야설에 가까운 글들은 나에게는 재미도 흥미도 일으키지 못하였다.
중간정도 읽다 그만할까 싶을 정도로 힘겹게 읽었지만
그래도 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에 마지막까지 힘들내어 읽었다.
그러나 처음에 생각했던 어우동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마지막에 성종이 풍속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극형에 처하였을 거라는 내용과 함께
그녀와 함께 뒹굴던 남자들은 어느하나 처벌 받지 않고 잘 먹고 잘 산다는 내용이다.
결국 여자라서 슬프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의 삶이 그렇게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어디에서나 고통박고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들이 많고
사회적인 통념상 여자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남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
어우동이 조선의 비극적인 여주인공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어우동에 관한 글을 찾아 보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과 거의 같아서 크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사회 기강을 바로 잡고 성리학의 이념 전파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성종의 정치적 이념에 어우동은 희생양이 되었다.
성종이 그녀에게 무리하게 죄를 물어 죽음에 까지 이른것은 확실한 사실인 것 같다.
<용재총화>에 등장하는 " 여자가 행실이 더러워 풍속을 더렵혔으나 양가의 딸로서 극형을 받게 되니
길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는 기록이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삶이 불쌍하게 보이지만 그녀는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신분과 나이 모든 벽을 허물고 사람을 사랑하며 그녀 자신이 그들을 모두 가슴으로 몸으로
품어 냈으며 아직까지 후세에도 그 이름을 떨쳤으니 말이다.

어우동 사건의 또 다른 짝, 폐비 윤씨의 죽음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내용을 알게 되었다.
왕실에서 왕의 권위에 도전했던 폐비 윤씨와
민간에서 남성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죽음을 맞이한 어우동의 모습에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윤씨 또한 한 남자를 사랑한 죄 밖에 없는것을 시기와 질투로
부덕하다는 이유로 폐위되고 결국 사약까지 받게 된다.
성종이 연상벌인 윤씨를 두고 어린 궁녀들을 탐하였으니 마땅한 것이 아닌가.
남자의 부도덕함은 당연한 것이고 여자는 그저 쥐죽은듯 살아야만 했던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많이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도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그러나 지금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더 안타까운 사실이 아닌가.

겉으로는 남녀평등이라 주장하고 정치적 슬로건을 내 걸며
여성을 위한 법을 책정하는듯 보이나
속을 들여다 보면 그저 보여주기식에 불과하지 않은가.
여자라서 행복해요가 아니라 여자라서 슬픈 세상인 것이다.

우리는 어우동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 연약한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언제 사회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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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어쩌면 가까이 - 슬픈 날에도 기쁜 날에도, 제주
허지숙 & 허지영 글.사진 / 허밍버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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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꽃중에 꽃!

벚꽃

나도 꽃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벚꽃은 가장 화려하고 구경할만한 것 같다.

매년 벚꽃 놀이를 찾아다니며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오곤 한다.

거의 사진찍기에 바빠서 제대로 벚꽃을 즐긴다긴 보단

인증샷만 남기고 오는게 비일비재하다.

자매는 매년 벚꽃과 노는 번을 제대로 알고 있다.

떨어진 벚꽃을 모아 입으로 후~하고 부는 것이다.

사진에도 예쁘게 표현이 되어있다.

나는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내년에는 나도 그녀들처럼 벚꽃으로 제대로 놀아봐야 겠다.




 제주의 유채꽃은

알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알것이다.

넓게 펼쳐진 노란 유채밭은

해년마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고 한다.

나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아직 기회는 오지 않았지만

꼭 한번 보고 싶은 풍경 중 하나다.

사진에서도 도로 양쪽으로 샛노랗게 피어있는 유채꽃들이

마치 동화속에나 나올 법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밝아지는 것 같다.



 

두 자매는 어려서 부터 꽃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옷이건 물건이건 상관없이

꽃이 그려진 것이라면 사양하지 않고

그것들을 모으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꽃과 관련된 사진이 많은것 같다.

나도 꽃을 너무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더욱 신이나서 두 자매의 꽃놀이에 물들고 말았다.

어릴때 풀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놀곤 했는데

그러한 모습도 이렇게 사진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어릴 적 추억을 되살아나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다.



 

홍가시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 잎 색깔이 참으로 곱다.

나무로 만든 머리띠는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자아낸다.

꽃도 아닌 나뭇잎이 이토록 고운 자태를 뽑내고 있다니.

제주도의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라서 그럴까?

돌이켜 보면 나도 어릴때 비슷하게 머리에 꽃으로 만들거나

나뭇가지를 엮어 꽃으로 장식한 머리띠를 해봤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여자들이란

늘 아름다움에 목말라 있나보다.

작은 나무와 꽃으로도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하는 열정을 보면 말이다.

 

 

제주도의 맛집이 빠질 수 없다.

서귀포 일호 광장에서 걸매 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식당 '베지그랑' 이라는 곳이 소개되어 있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건강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베지그랑"이라는 말은 제주 방언으로

아주 만족스러울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곳곳에 제주 사투리가 있긴 한데

설명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처음 듣는 외국어인냥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아주 오래전에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 되었던 식당도 이름이 거론되는데

'거닐다'라는 피자&커피숍인데 젊은 부부가

하루하루 정성껏 요리를 해서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제주도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였으나 가지 못했던 곳이다.

다음 기회에는 가서 맛있는 피자와 디저트를 맛 보고 싶다.



 

올해 고창 해바라기밭을 갈까 생각했었는데

아쉽게도 때를 놓쳐 가지 못하고 내년에는 꼭 가보리라 생각하고

블로그에 올려진 후기들을 살펴 보곤 했다.

해바라기 자체 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부셨다.

사람들이 꽃 사이에서 찍은 사진을 보아도 너무 예쁘고 부러워

한참을 그렇게 쳐다 보기도 했다.

그런데 두 자매의 일상에서도 해바라기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란것이 어떤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꽃보다 아름다운것이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만

난 꽃이더 아름다운것 같다.




 그녀들의 여름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숲으로 이어진다.

숲의 푸르름이 주는 에너지는 강한 생명력을 띄고 있다.

마치 책 속에서 맑은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곳에 가면

숲속에 요정이 될 것만 같다.

삶의 근심과 걱정 모두 잊은채

그렇게 자연의 일부로 나를 동화시키고 싶다.

 

 

시골 앞마당 꽃밭에

오래된 수국 나무가 있었다.

어릴때는 사또밥나무라고 불렀다.

큰 꽃송이를 한움킁 뜯어 내며 그 모양새가 사또밥 같았다.

어른이 되고 한 참 후에야 그 꽃이 수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수국을 여성스럽고 우아한 꽃이라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사진에서 보기에도 수국꽃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저 길을 걸으면

나의 인생도 꽃길이 될까?  




 드넓게 펼쳐진 녹차밭

천국이 따로 없다.

사실 제주도에가서 오설록 구경을 했었지만 그렇게

아름답다라고 생각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다른 세상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두 남녀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디든 사람이 있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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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 연필이 사각거리는 순간
정희재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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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삭, 서걱서걱, 슥슥 ……


책을 읽는 내내 귓가에 맴도는 연필이 종이위에서 춤추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잊어버리고 있던 옛 추억의 감성들을 불러 일으키는 숨소리가 느껴진다.
자그마하지만 큰 울림을 가져다 주는 소리!
그 소리에 나는 행복을 느꼈다.

흑심을 품게 만드는 요물이 따로 없는 그녀의 이야기가 글쓰는 소리와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필 수집광이, 오타쿠, 중독자등등 정희재! 그녀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들이다.
연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연필과 사랑에 빠져 평생 함께 할 것 같은 여자, 정 희 재.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부터이다.
편안하고 따뜻한 그녀의 글에서 나는 그녀의 다른책을 찾아 보았고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란 책을 또
발견하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도서관에는 비치되어 있지 않은 책이라 다이어리의 위시 리스트에만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그러던중 인연이 이렇게 닿아서 그녀의 글을 다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힘들고 지친 하루의 일상들의 연속이였던 나날들중 정말 행운이고 행복한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일상과 인생을 통틀어 연필은 뗄래야 뗄수 없는 존재이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녀의 삶에서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 연필.
그 매력에 흠뻑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연필을 손에 쥐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간절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마치 TV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꼭 먹어보고 싶고, 다이얼을 누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듯
이렇듯 강한 식욕보다 더 강렬하게 연필에 대한 끓어오르는 탐욕을 느끼게 만든다.
그녀의 글은 일이 힘들고 사는게 힘들때
한없이 위로가 되어줄 수 있고 마음의 여유와 기쁨을 준다.

연필은 종이와 마찰을 일으키는 영혼에 불을 지피는 도구가 된다고 그녀는 연필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극칭하고 있다.
또한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기도 한다.


'가난'의 진정한 의미를 연필 한 자루의 기준으로 잡으면 제가 누리고 있는 것에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늘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모자란것을 체워나가길 원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것에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해 한다면 아무리 미천한 존재나 하찮은 물건에서 조차도 나는
기뻐할 것이고 행복할 것이다.
우린 늘 알고 있지만 잊어버리기 쉬운 마음의 행복을 그녀는 이렇게 충족시켜주고 있다.  

불교 경전 《법화경 》에 나오는 '보물을 간직하고도 알지 못하는 거지' 이야기를 통해
이미 지니고 있는데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을 수 있다.
늘 기운없고 힘들고 피곤하고 짜증날때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면서 작은 연필 한자루
속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필의 가장 극적인 쓰임새에 대한 이야기 중에 성룡의 영화 <폴리스 스토리>에서 젓가락이 없어
연필 두 자루로 라면을 먹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로빈슨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펜으로
그 당시의 상황과 심정을 적어 내려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상황에 빠진다고 해도,
반대로 감사해야 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확실한 증거로 삼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망망대해에 사나운 맹수와 한 배에 남겨진 상황속에서
주인공에게 주어진것은 먹을거리 몇개와 연필과 종이뿐.
그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 내려간다.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을 뿐더러 할 수 있는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오직 일기를 써서 기록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연필이 닳고 닳아 몽당 연필이 되는 순간에도 그는 연필을 놓지 않고
쓰는 행위를 계속 하였지만 결국 거친 파도에 그가 가진 전부를 내어주고 만다.
손으로 직접 쓰는 행위가 좌절한 인간에서 행동하는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운을 얻게 만드는 하나의 예가 아닌가 싶다.
쓰고 나서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적어도 무언가를 했다는 최소한의 후련함과 안도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종류의 연필들이 많이 나온다.
연필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흥미롭고 신기할 따름이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 인냥 들뜨고 기분이 좋다.

'별 것' 아닐지라도 마음을 담으면 '별의 것'이 된다. 

남들에게는 연필 깎는일이 별겻도 아닐지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연필을 깎는일은 어색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하나의 방법으로도 좋다.
확실히 연필을 깎을때는 칼의 위험성을 알기에 온몸의 신경을 칼끝에 집중해 조심조심 깎아 내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잡생각을 할 수가 없고 머릿속에는 온통 하나의 생각만이 자리잡게 된다.
마치 명상을 할때 집중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에게는 연필깎기보다는 칼로 연필을 깎는 일 자체가 힐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을 피부로 감각으로 접촉하며 자란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이제 우리에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세월이 더 길게 남아 있을거라는 우울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늘 유쾌했다.





타인의 관심과 호의를 있는 그대로 행운과 감사의 영약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섬에서 3년 남짓 살았을때 가정형편이 변변치 못한것을 안 담임 선생님이 반 친구와 그녀를 교무실로 따로 불러
옷이든 종이가방을 주었다. 그리고 운동장으로 걸어나오며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친구에게 내밀며
현실을 부정하려 한다. 그녀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또한 누군가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밀어내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늘 받는것보다 주는것이 마음이 편하고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일 자체가 부담스럽고 어색하고
꼭 보답해야되겠다는 생각이 앞서 상대방의 호의를 그대로 행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상에 그렇게 할일 없이 선물을 챙겨주고 호의를 베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부터는 좀더 편안하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호응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



'안다'는 사실에 사로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돌아보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지고 자존심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자존심이 자만심이 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배움에 있어서 늘 겸손의 자세를 취해야하고,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사람 또한 늘 배움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위할 줄 아는 마음을 항상 지녀야 할 것이다.
내가 남들에 비해 조금 더 배웠다고 조금 더 알고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늘 유지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연필에 힘을 주듯
인생이라는 종이를 너무 꾹꾹 누르지 않도록
내게도 절제와 인내의 책받침이 필요했다.
미래의 페이지가 과거의 흔적에 고통 받지 않도록
현재의 페이지에 집중하기 위해서.
다음 페이지가 없는 것처럼
한 번의 페이지에 굉장한 것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
곧 재앙임을 알기에.






 그녀처럼 연필에 꼿힌 사람이 굉장히 많다.
존 스타인백과 헤밍웨이가 그중 한 사람이다.
헤밍웨이는 연필이 두 자루 정도는 닮아 없어져야 하루 일을 충분히 한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연필과 뗄레야 뗄수 없는 존재였다.
또한 존 스타인벡은 하루 여섯 시간씩 연필로 글을 썼다고 하니 연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따로 없을 듯 싶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많이 썼기 때문에
사용량이 월등히 많을 수 있다.
타자기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글 수정도 편하고 쓰기에도 편한
연필이 집필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였을 것이다.
엄청난 집중력과 창조력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 연필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그때 그때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연필의 느낌을 좌우함을
그녀의 일상을 통해 잘 엿볼 수 있다.


그녀가 따라 적은 우나무노의 소설 《안개 》 중 한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아 나도 따라 적어본다.

사랑은 존재의 안개를 부수고 구체화시켜주는 고마운 비와 같은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나는 내 몸의 영혼을 느끼고 어루만질 수 있다.
사랑으로 인해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사랑은 남는다.
사물의 내무 그 깊은 곳에서 이 세상의 흐름은 다른 세계의 반대되는 흐름과 부딪치고 얽힌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과 마찰에서 고통 중 가장 달콤하고도 슬픈 고통이 비롯되는데,
바로 산다는 고통이다.



사느라 흔들리고, 쓰라려하고, 좋은 순간이 와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연필을 쥐어 주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살며시 연필을 손에 쥐어 본다.
연필을 손에 쥔 것이 단순히 쓰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 보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주는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여유로움을 찾고 행복과 감사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것이 아닌가 싶다.
무언가 쓰지 않더라도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는 존재가 연필!
즉,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 소소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될 것이다.
너무나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요즘 세상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가지고 살아나가야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간들이 꼭 필요하다.



제4장 미치지 않은 사람은 깊은 정이 없다

'벽癖'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박제가, 장대의 말을 빌어 자신이 연필에 대한 집착을 합리화 시키고 있는 듯 하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이 많아서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러한 행동을 할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고운시선 보다는 안 좋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삶이 힘들어질 정도로 소유욕이 지나치는 경우는 지탄을 받을만 하지만
이색적인 취미생활로 마음의 여유를 갖는 목적으로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 진다면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 경쟁의 시대 속에서 누구와도 다를바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남이 꿈꾸는 꿈이 바로 내 꿈이요
남이 하는 행동이 바로 내가 해야할 행동이요 처럼
점점 우리의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게 된다.
누구처럼 공부하고, 누구처럼 돈을 벌어야 하고, 누구처럼 예뻐져야 하고,누구처럼 누구처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물음을 던진다.

나 또한 수집가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되면서 그들의 생각과 뜻을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의 삶을, 타인의 삶을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이들이 무심하게 대하는 일상의 소품을 비상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사랑하게 될지 모르겠다.
남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소소한 것들에 매료된 이들은 삶의 단단한 기반을 찾는 몽상가라 그녀는 그렇게 부른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내면의 확고한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의 탐험가들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면서 비교적 저렴한 수집품목인 연필을 사랑하게 된것에 감사함또한 잊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물건일지 모르지만
어떤이는 그 사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과 사랑에 빠지에 되기도 한다.
인간의 사랑 또한 그렇지 않은가.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고, 내가 너를 알아주는것.
그 사람의 숨은 가치를 알아봐 줄 때 사랑은 싹트게 되는것이다.

이미 누군가의 사랑이 된 존재이지만 
나에게도 그 사랑이 찾아 올 것만 같다.


오늘 흑심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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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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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면서 자극적인 표지에서부터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저자 소개에 초베스트셀러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의 저자 마광수라는 타이틀이 더욱 궁금증을 자극한다.

작가의 화려한 이력이 독보이는 것이 그가 성적 아이콘이라는 점에서 더욱 부각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생각들을 확실히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안다.
조금은 남들보다 개방적인 생각으로 다르게 생각했기에 문학계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것 같다.
『즐거운 사라 』로 인해 과거의 억압된 성의 자유를 표출한 결과로 쓰디쓴 인생의 참맛을 봐야 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를 인문학의 반항아로 재조명 하기도 한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흔히 말하는 포르노와 누드에 관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이 그는 과거에 야한 글을 썼다고 그렇게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는데
지금은 안방에서 조차도 쉽게 노골적인 정사장면과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가 앞서나간 것일까, 우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 한 것일까?

어쩌면 너무 노골적이고 직선적인 표현 방식이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수 있지만
주위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 하여
글 속에서도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흔히 야설이라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풀어내고 있는 면에서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를 접하는것과 함께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요즘 현대사회에서 성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과 문제성은 심각하다.
그 문제의 핵심이 어디서 부터 오는 것인지, 또한 왜 우리나라의 성 범죄율이 가까운 일본에 비해서 보더라도 높은 것인지에 대해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해진 틀에 따른 해석과 정답을 요구하는 인문학의 높은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어 재치 있고 재미있는 접근 방식으로
동서양의 사상가와 문학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글의 구성은 총 4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Part1. 거꾸로 보면 어때?
동양 사상가들 공자,장자,주자,양주,순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위자연을 주장하였던 장자의 사상에 대해 재해석한 부분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가 들었던 예를 보면, 치아가 썩어서 당장 치료를 해야되는 상황에서 그냥 내버려 둘것인지 아니면 뽑아 내 버릴것인지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모든일을 자신의 생각대로만 대입해서 이해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인 삶의 큰 틀을 이야기 했다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지나치게 현대의학의 한 부분에서 '무위자연'이 꼭 최선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졌다.
작가는 장자라는 책을 그가 쓴 소설로 인해 필화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가고 직장에서 해직 되었을때, '마음의 위안'을 주는 서적으로 손꼽고 있다. 그리고 장자의 사상을 우수한 심리치료사 역할을 해준다고 보고 있다.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평형상태를 유지하길 바라고 있는 점에는 같은 생각이다.

서양에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쾌락주의자 양주가 있다.
양주의 실존주의와 쾌락주의에 대해 작가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한다.

나는 솔직한 이기주의자로 사는 것이 진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본다.
육체적 쾌락에 죄의식을 느낀다면 응당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결혼은 섹스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Part2. 너도 빠져봐!
서양사상가 에피쿠로스,데카르트, 톨스토이,프로이트,D.H 로렌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이성의 시대'를 열어간 사상가이다.
감성이나 감각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오직 '생각하는 이성'만이 인간의 속성을 대변해줄 수 있는 진리라 생각한다.
정신과 육체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그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작가는 정신과 육체는 서로 상보작용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 예로 든것이 정신이 우울해지면 위장 기능이 저하되어 소화가 잘 안되는데 그걸 바꿔 생각하면 소화가 잘 되면 쓸데없는 근심이나 걱정이 사라진다. 이러한 것들을 한방의학에서는 비위가 맡은 기능을 '생각의 조절'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겨간의 사랑에 반드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스킨쉽을 통한 쾌락 감각을 교환해야 한다고 한다.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교감이 이루어 질때만이 진정한 사랑이 싹뜨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성만을 중요시 했던 데카르트의 사상이 지나치게 편중된 생각이 아니였나 생각한다.
작가의 생각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더욱 재미를 더한다.

Part3. 나만 잘났어!
플라톤,니체,루소,예수,석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니체와 빈센트 반 고흐가 매독 환자였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충격이였다.
작가는 니체가 쓴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난삽하고 무질서한 문체로 씌여 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고전문헌학 교수가 됐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렇게 밖에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매독때문이였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정신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충동적으로 자살을 한것이 같은 이유라는 것이다. 그 외에 루소에 대한 사상과 그의 삶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 또한 새로웠다.

루소의 사상이 그의 실제적인 삶과 괴리되어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책은 『에밀 』이다.
이 책에서 그는 소년들의 성적 자위행위가 병이요 죄악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그가 소년시절부터 귀족 부인들의 '펫'노릇을 하여 학비를 벌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주장은 위선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p169. 나는 꽤 파란 많은 인생을 살아본 결과, 믿을 것은 오직 나밖에 없고,
우정이든 애정이든 아무것도 믿을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한문장에 그의 삶과 애환이 모두 녹아 있는 듯 하다.


Part4, 망치를 들자!
보카치오,포송령,사드,빅토르 위고,손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판 『아라비안나이트 』를 탄생시킨 포송령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깊다.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운명과, 내세관, 자연관, 종교관 등에 대해 알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445편의 길고 짧은 단편들로 이야기도 모두 흥미진진하여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서구문학처럼 작가의 교훈적인 잔소리나 지루한 묘사 같은 같은 것들이 전혀 없어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듯 설명또한 자세하고 흥미롭게 열거하고 있다.
간략한 줄거리만 들어봐도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치솟았다.

외설적인 소설로 유명한 사드의 소설에는 '가학적인 놀이'에 대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채찍질, 물고문, 똥 오줌 먹고 먹이기, 거꾸로 매달기, 똥통에 빠뜨리기, 굶어죽게 내버려두기 등이다.
최고의 성적 오르가슴은 가학적인 섹스에서 온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그의 삶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분변 페티시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였다.
똥과 오줌을 먹으면서 성적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중에 작곡가 모차르트가 있다는 사실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 생각하였지만 그러한 행동이 죽음과의 연계된 하나의 불안한 심리를 가장 평온한 상태로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가장 원시적인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천진무구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p218. 문학의 흐름은 언제나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교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낮과 밤, 생시와 꿈의 교차라고나 할까.

책의 첫 부분은 아주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상가들을 꼬집어 그들의 사상을 비틀어 보기 하고 있고, 중간 부분에서는 유쾌하고 재미있고 약간은 지루할 수 있는 틈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열거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갈수록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와 우리 삶의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 글을 읽어가면 읽어 갈수록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 이러한 글의 구성력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장 마지막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였다.
작가 또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알짜배기 이야기를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풀어 논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p228.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두고 보자" 정신이다.
"두고 보자" 정신은 복수를 맹세하는 의미로 쓰이곤 하는데, 내 생각엔 그 말이 "길게 보자"
천천히 노력해 가면서 느긋한 자세로 성과를 기대하자"의 뜻으로 쓰이는 게 더 옳다고 본다.



그의 글은 신선했다.
문화적인 충격과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유교적 가치관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퇴폐적이고  음란성이 강한 성에 대해
억눌린 우리의 성의식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이 정통이냐 이단이냐 틀에 박힌 생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들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규범과 인식을 벗어나 조금더 창조적인고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고심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그가 말하는 참다운 글쓰기라 생각이 들며
단순히 야한 이야기를 즐기는 작가가 아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어둠속에 가려진 이야기들을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 생각이 든다.
처음에 생각했던 마광수에 대한 나의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나 또한  여전히 성에 대해 금기시 되고 혐오스럽고 위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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