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 연필이 사각거리는 순간
정희재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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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삭, 서걱서걱, 슥슥 ……


책을 읽는 내내 귓가에 맴도는 연필이 종이위에서 춤추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잊어버리고 있던 옛 추억의 감성들을 불러 일으키는 숨소리가 느껴진다.
자그마하지만 큰 울림을 가져다 주는 소리!
그 소리에 나는 행복을 느꼈다.

흑심을 품게 만드는 요물이 따로 없는 그녀의 이야기가 글쓰는 소리와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필 수집광이, 오타쿠, 중독자등등 정희재! 그녀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들이다.
연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연필과 사랑에 빠져 평생 함께 할 것 같은 여자, 정 희 재.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부터이다.
편안하고 따뜻한 그녀의 글에서 나는 그녀의 다른책을 찾아 보았고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란 책을 또
발견하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도서관에는 비치되어 있지 않은 책이라 다이어리의 위시 리스트에만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그러던중 인연이 이렇게 닿아서 그녀의 글을 다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힘들고 지친 하루의 일상들의 연속이였던 나날들중 정말 행운이고 행복한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일상과 인생을 통틀어 연필은 뗄래야 뗄수 없는 존재이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녀의 삶에서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 연필.
그 매력에 흠뻑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연필을 손에 쥐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간절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마치 TV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꼭 먹어보고 싶고, 다이얼을 누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듯
이렇듯 강한 식욕보다 더 강렬하게 연필에 대한 끓어오르는 탐욕을 느끼게 만든다.
그녀의 글은 일이 힘들고 사는게 힘들때
한없이 위로가 되어줄 수 있고 마음의 여유와 기쁨을 준다.

연필은 종이와 마찰을 일으키는 영혼에 불을 지피는 도구가 된다고 그녀는 연필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극칭하고 있다.
또한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기도 한다.


'가난'의 진정한 의미를 연필 한 자루의 기준으로 잡으면 제가 누리고 있는 것에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늘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모자란것을 체워나가길 원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것에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해 한다면 아무리 미천한 존재나 하찮은 물건에서 조차도 나는
기뻐할 것이고 행복할 것이다.
우린 늘 알고 있지만 잊어버리기 쉬운 마음의 행복을 그녀는 이렇게 충족시켜주고 있다.  

불교 경전 《법화경 》에 나오는 '보물을 간직하고도 알지 못하는 거지' 이야기를 통해
이미 지니고 있는데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을 수 있다.
늘 기운없고 힘들고 피곤하고 짜증날때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면서 작은 연필 한자루
속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필의 가장 극적인 쓰임새에 대한 이야기 중에 성룡의 영화 <폴리스 스토리>에서 젓가락이 없어
연필 두 자루로 라면을 먹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로빈슨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펜으로
그 당시의 상황과 심정을 적어 내려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상황에 빠진다고 해도,
반대로 감사해야 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확실한 증거로 삼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망망대해에 사나운 맹수와 한 배에 남겨진 상황속에서
주인공에게 주어진것은 먹을거리 몇개와 연필과 종이뿐.
그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 내려간다.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을 뿐더러 할 수 있는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오직 일기를 써서 기록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연필이 닳고 닳아 몽당 연필이 되는 순간에도 그는 연필을 놓지 않고
쓰는 행위를 계속 하였지만 결국 거친 파도에 그가 가진 전부를 내어주고 만다.
손으로 직접 쓰는 행위가 좌절한 인간에서 행동하는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운을 얻게 만드는 하나의 예가 아닌가 싶다.
쓰고 나서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적어도 무언가를 했다는 최소한의 후련함과 안도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종류의 연필들이 많이 나온다.
연필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흥미롭고 신기할 따름이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 인냥 들뜨고 기분이 좋다.

'별 것' 아닐지라도 마음을 담으면 '별의 것'이 된다. 

남들에게는 연필 깎는일이 별겻도 아닐지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연필을 깎는일은 어색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하나의 방법으로도 좋다.
확실히 연필을 깎을때는 칼의 위험성을 알기에 온몸의 신경을 칼끝에 집중해 조심조심 깎아 내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잡생각을 할 수가 없고 머릿속에는 온통 하나의 생각만이 자리잡게 된다.
마치 명상을 할때 집중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에게는 연필깎기보다는 칼로 연필을 깎는 일 자체가 힐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을 피부로 감각으로 접촉하며 자란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이제 우리에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세월이 더 길게 남아 있을거라는 우울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늘 유쾌했다.





타인의 관심과 호의를 있는 그대로 행운과 감사의 영약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섬에서 3년 남짓 살았을때 가정형편이 변변치 못한것을 안 담임 선생님이 반 친구와 그녀를 교무실로 따로 불러
옷이든 종이가방을 주었다. 그리고 운동장으로 걸어나오며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친구에게 내밀며
현실을 부정하려 한다. 그녀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또한 누군가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밀어내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늘 받는것보다 주는것이 마음이 편하고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일 자체가 부담스럽고 어색하고
꼭 보답해야되겠다는 생각이 앞서 상대방의 호의를 그대로 행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상에 그렇게 할일 없이 선물을 챙겨주고 호의를 베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부터는 좀더 편안하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호응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



'안다'는 사실에 사로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돌아보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지고 자존심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자존심이 자만심이 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배움에 있어서 늘 겸손의 자세를 취해야하고,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사람 또한 늘 배움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위할 줄 아는 마음을 항상 지녀야 할 것이다.
내가 남들에 비해 조금 더 배웠다고 조금 더 알고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늘 유지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연필에 힘을 주듯
인생이라는 종이를 너무 꾹꾹 누르지 않도록
내게도 절제와 인내의 책받침이 필요했다.
미래의 페이지가 과거의 흔적에 고통 받지 않도록
현재의 페이지에 집중하기 위해서.
다음 페이지가 없는 것처럼
한 번의 페이지에 굉장한 것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
곧 재앙임을 알기에.






 그녀처럼 연필에 꼿힌 사람이 굉장히 많다.
존 스타인백과 헤밍웨이가 그중 한 사람이다.
헤밍웨이는 연필이 두 자루 정도는 닮아 없어져야 하루 일을 충분히 한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연필과 뗄레야 뗄수 없는 존재였다.
또한 존 스타인벡은 하루 여섯 시간씩 연필로 글을 썼다고 하니 연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따로 없을 듯 싶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많이 썼기 때문에
사용량이 월등히 많을 수 있다.
타자기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글 수정도 편하고 쓰기에도 편한
연필이 집필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였을 것이다.
엄청난 집중력과 창조력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 연필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그때 그때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연필의 느낌을 좌우함을
그녀의 일상을 통해 잘 엿볼 수 있다.


그녀가 따라 적은 우나무노의 소설 《안개 》 중 한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아 나도 따라 적어본다.

사랑은 존재의 안개를 부수고 구체화시켜주는 고마운 비와 같은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나는 내 몸의 영혼을 느끼고 어루만질 수 있다.
사랑으로 인해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사랑은 남는다.
사물의 내무 그 깊은 곳에서 이 세상의 흐름은 다른 세계의 반대되는 흐름과 부딪치고 얽힌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과 마찰에서 고통 중 가장 달콤하고도 슬픈 고통이 비롯되는데,
바로 산다는 고통이다.



사느라 흔들리고, 쓰라려하고, 좋은 순간이 와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연필을 쥐어 주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살며시 연필을 손에 쥐어 본다.
연필을 손에 쥔 것이 단순히 쓰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 보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주는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여유로움을 찾고 행복과 감사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것이 아닌가 싶다.
무언가 쓰지 않더라도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는 존재가 연필!
즉,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 소소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될 것이다.
너무나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요즘 세상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가지고 살아나가야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간들이 꼭 필요하다.



제4장 미치지 않은 사람은 깊은 정이 없다

'벽癖'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박제가, 장대의 말을 빌어 자신이 연필에 대한 집착을 합리화 시키고 있는 듯 하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이 많아서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러한 행동을 할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고운시선 보다는 안 좋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삶이 힘들어질 정도로 소유욕이 지나치는 경우는 지탄을 받을만 하지만
이색적인 취미생활로 마음의 여유를 갖는 목적으로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 진다면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 경쟁의 시대 속에서 누구와도 다를바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남이 꿈꾸는 꿈이 바로 내 꿈이요
남이 하는 행동이 바로 내가 해야할 행동이요 처럼
점점 우리의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게 된다.
누구처럼 공부하고, 누구처럼 돈을 벌어야 하고, 누구처럼 예뻐져야 하고,누구처럼 누구처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물음을 던진다.

나 또한 수집가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되면서 그들의 생각과 뜻을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의 삶을, 타인의 삶을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이들이 무심하게 대하는 일상의 소품을 비상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사랑하게 될지 모르겠다.
남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소소한 것들에 매료된 이들은 삶의 단단한 기반을 찾는 몽상가라 그녀는 그렇게 부른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내면의 확고한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의 탐험가들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면서 비교적 저렴한 수집품목인 연필을 사랑하게 된것에 감사함또한 잊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물건일지 모르지만
어떤이는 그 사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과 사랑에 빠지에 되기도 한다.
인간의 사랑 또한 그렇지 않은가.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고, 내가 너를 알아주는것.
그 사람의 숨은 가치를 알아봐 줄 때 사랑은 싹트게 되는것이다.

이미 누군가의 사랑이 된 존재이지만 
나에게도 그 사랑이 찾아 올 것만 같다.


오늘 흑심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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