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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신발 아가씨 ㅣ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7
버나드 로지 지음, 캐더린 로지 그림, 김서정 옮김 / 한솔수북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김서정씨 같은 경우는 그림책 작가, 어린이책 평론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번역가로 유명한데, 그림책 읽어주다보면 너무나 자주 눈에 띄는 김서정씨의 두드러진 활약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우리 나라 어린이책분야에서 나름대로 혁혁한 공을 세운 분이지만, 이상하게 개인적으로 김서정씨의 글은 자주 접하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한달에 한번 받아보는 열린어린이 잡지에 실린 조각 글 정도. 그녀의 평론집을 사서 한번 읽어봐야지 한게 벌써 몇 년전의 일이다. 최윤정씨의 어린이책 평론집은 거진 다 사서 읽은 것에 비하면, 김서정씨의 글에 대한 관심은 좀 저조했다고 해야하나. 애정이 가는 번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구입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차라리 함량미달의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같은 일본소설 사서 읽는 것보다 김서정씨의 글을 읽은 게 나았을텐데....하는 가슴 치는 후회가..)
그녀의 조각 글만 읽고 전체적인 글을 읽지 않아, 그녀가 생각하는 어린이 문학, 좀 더 그림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그녀에게 확신하는 거 하나는, 그녀가 번역가로서 아이들 그림책에서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과히 최고라는 할 만 하다는 것이다. 아이들 그림책 번역, 뭐 그게 그렇게 어렵냐고 뜨악하게 반문하겠지만, 그림책 번역이라는 게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한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책의 분위기가 무거우면 진중하거나 차분하게, 가벼우면 활발하게 또는 경쾌하게, 책의 분위기에 맞춰 번역도 상응해야 한다. 그림책의 글이 쉽다는 이유만으로 대강대강 번역해, 말의 묘미를 망치는 경우을 종종 보았다. 김서정씨의 경우는 책이 풍기는 글의 분위기를 나름 최대한 잘 살리고, 특히나 그녀의 강점이라면 구어체의 느낌을 우리나라 말로 잘 옮겼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구어체의 유연성이라고 해야하나. 그림책을 읽어 줄때,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저절로 언어(말)의 리듬을 타게 하게 한다. 경쾌하고 흥이 날 정도로. 예를 들어, 에릭 칼의 <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 같은 영어를 읽을 때의 강약의 리듬감 같은 거 말이다. 우리 나라 말이 악센트가 없어 자칫 리듬감 있는 언어도 번역을 하면 무미하거나 딱딱한데, 그녀는 오히려 원서보다도 더 리듬감을 타는 번역을 할 때도 있다.
<신발 신발 아가씨>나 한솔수북의 북스북스에 나오는 <웃기는 내고양이>가 그런 경우인데, 특히나, <웃기는 내고양이>같은 경우는, 원문보다 더 번역을 잘 된 케이스. <웃기는 내고양이> 원서 사서 읽어 봤는데, 원어는 번역서만큼 뛰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녀식으로 마음대로 원문으로 고쳐 놓은 것이냐구? 아니,그런 것은 아니다. 원어를 읽었는 때는 소년과 고양이의 모험이 딱딱하는 느낌을 받지만 김서정씨의 번역은 소년과 고양이의 모험이 신나는 거대한 모험을 기다리는 설레임같은 것이 느껴진다. 발화자가 그 그림책 읽을 때 장난스럽게 읽게 할 정도로. <신발신발 아가씨>도 우리나라 말로 읽어 줄 때의 어감이, 말의 리듬을 타 아이들이 재밌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예들아, 안녕! 난 신발신발 아가씨야"라고 시작되는 이 그림책은 정말이지 요일마다의 분위기에 맞춰 읽어줄 수 밖에 없는 작품. 함 읽어보시길. 진짜 맛깔스럽게 여러 맛으로 풍부하게 조리되어 한 상에 차려진 그림책이다.
그림책이란 것이 속으로 읽을 때의 언어와 발화할 때의 언어는 사뭇 다르고 그 미묘한 차이를 아는 사람이 번역했을 때, 외국어를 한국어로 바꿀 때의 언어의 취사선택이 원작품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번역그림책을 보면서 매번 느끼는 것 중 하나이다. 일반 독자가 그녀가 얼마나 그림책의 한단어 한단어의 언어에 신경을 쓰는지,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효율적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지 고심한 흔적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니 정말 뛰어난 어린이 책 번역가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