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페북에 쓴 이종필 교수의 2015년을 되돌아 본 글을 읽고 울컥했다. 담담하게 쓴 짦은 글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과학 전문지식인이 어떻게 홀대 받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읽혔다. 마음 한 켠이 착잡해지면서, 며칠 전에 갔던 용산의 전자 랜드가 왜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졌는지, 그리고 이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미래 전자산업이 저 용산 전자랜드의 빈점포마냥 텅 비어버릴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산업이 한창 뜰때, 나는 용산 근처의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땐 정말이지 용산만큼 활발한 곳이 없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뭔가 바쁘고 활기 찬 공기가 그 주변을 떠 돌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컴퓨터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용산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 해 한해 갈수록 빈 점포가 줄고 이제는 전자 랜드 건물은 그나마 대기업의 전자 제품이나 as 센터로 전락하지 한참 되었다.

 

이건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실리콘 밸리가 우리처럼 되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미국이야 흔히 말하는 천재비자가 있어, 전세계 천재들을 끌어모은다고 하지만, 미국내의 기초과학자나 전문과학자들 그리고 공학자들에 대한 대우나 미국내 출판되는 과학서적의 양이나 질을 보면 그렇게 미국을 우습게 볼 만한 나라는 아니다.

 

미국의 과학 기술은 공학 기술만이 전부가 아니다. 애시당초 큰 돈 벌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조차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오픈화 하였고, 국가나 돈 많은 후원자들의 든든한 돈줄이 컴퓨터 이외의 다른 부가적인 과학 기술을 만들어 낸 것이 때문이다. 용산의 몰락은 컴퓨터 공학만 있고 그 공학을 떠받드는 컴퓨터 이외의 부가적으로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튼튼한 기초과학의 뼈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히틀러 시대에 수많은 천재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보낼 때, (적어도 내가 읽은 과학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그들을 홀대했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 미국 교육이 형편 없다고는 해도, 기초 과학이나 전문과학자들에 대해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우대했고 지원했을 정도였으니깐. 이게 수십년 전 미국에서 과학자들을 대했던 그들의 방식이었다.

 

우리 나라의 과학지식인들은 21세기에 어떤 대우를 받을까? 내가 보기엔 홀대와 수모라는 두 단어가 제일 적절하다.

 

기초과학과 전문과학지식을  홀대하는 나라에서, 오버 퀄리티라는 이유로 교수 면접에서 탈락되는 나라에서, 무슨 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까? 아침 기사에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이 있고 반으로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올 하반기에는 판매한다는데, 이것이야 말로 기술적인 혁신인데, 무슨 기초과학 타령을 하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말 할 지도 모르겠다.

 

아닌게 아니라,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어 만들어지는 시대에 맞춰 기판이나 내부회로도 휘어질 수 있는 소재를 만들고 밧데리도 더 작고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화면이 휘어지면서 그 휠 수 있는 내부 material들을 부가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혁신이 맞고 그 부가적인 material 소재로 인해 다른 전자산업들도 덩달아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저게 가능할까? 기초 과학과 전문과학 지식인들이 홀대 받는 나라에서? 과연 삼성이나 엘쥐같은 대기업이 돈을 쏟아 부으면 신소재들이 뚝딱하고 만들어 질 수 있을까? 공학 기술이 그렇게 쉽게 도깨비 방망이처럼 한번 두들긴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었던가? (음, 혹 고무를 사용하려나?)

 

수년 간 과학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현대 테크놀로지의 바탕에는 이론이 있었다라는 것이다. led를 발명한 나카무라 슈지는 이론은 필요없다,고 오로지 실험을 끈기있게 해내는 힘이야말로 신소재를 발명할 수 있다고 본인의 저서에서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사실 이 양반도 어느 정도는 기초과학은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었다. 물론 양자역학에 대해 잘 몰랐고 그 분야를 알아야 led를 발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변 조언이 있었지만, led 소재에 몰두해 있었던 만큼 논문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 이론 대신 실험을 택한 것이 운 좋게도 led 발명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론은 필요없다고 주장한 나카무라 슈지도  led를 발명하자 마자 논문을 써서 외국학계에 보냈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여있는 기초과학과 전문과학 지식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maker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지식전달자이기 때문이다. 빌 브라이슨이 미국의 1927년 여름을 기록한, 한 대목에서 티비 발명에 관한 글은 이론의 중요성과 지식 전달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나는 티비와 아인슈타인은 전혀 관련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고 티비 또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티비 발명자(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발명자 이름을 까 먹음)는 아인슈타인이 1905년 발표한 논문중 하나인 복사와 빛의 에너지적 속성을 다룬 광자 이론인 첫 번째 논문을 어렵게 구해, 읽고 되풀이해서 읽고 만든 텔레비젼이 바로 20세기 초 최초의 텔레비젼이라고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하나의 이론이 정립되고, 그 이론이 기술적인 공학으로 발전되기까지는 수 많은 아이디어와 연결되어야 하고 그 연결이 성공할 수도 혹은 실패할 수도 있다고 본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10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핵분열이나 핵융합으로, 인공위성으로, 우리가 쓰는 가전제품의 로렌츠공식으로, 이론이 기술로 나아가는 과정은 수많은 시간을 요구하며, 그나마 그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것이 바로 기초과학의 정립이고 전문과학 지식의 확립 아닐까.

 

그 과학 지식을 전문적으로 전달하는 giver를 홀대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기판이나 내부 material까지 휠 수 있는 기본적인 과학지식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 게이트조차 내부의 material은 외국제품이고 껍데기만 한국제인 세상에서, 우리나라에서 영업이익 최고를 자랑하는 삼성 또한 엄청난 로열티를 내고 있는 마당에 ! 

 

우리 사회 내부 심지어 그게 좁은 범위의 교육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뭔가 잘 못 되어 돌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강바닥에, 도로에, 지하고속도로 터널 만든다고 수십조의 돈을 건설업에 뿌리면서, 기초 과학이나 전문 과학 지식인들에게 이렇게 옹색해도 되는 것인가.

 

과학 이론은 당장은 이익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왔을 때 당장 써 먹지 못했지만, 이걸 지금 100년 넘게 우려먹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하고 싶다. 언제까지 우려먹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이론이나 다른 과학 이론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기초 과학의 정립이나 전문과학 지식인들의 양산은 필수여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전공하겠다고 하니, 지도교수가 밥벌어 먹기 힘들다고 적극적으로 말렸다 하고, 다른 산업체에서 일하며 느 정도 지위를 얻은 사람들 조차 일반상대성 이론으론 밥 먹기 힘들어 다른 일을 하면서, 일반상대성 이론을 공부한다고 자신을 소개한다는 글을 썼지만, 그나마 유럽은 기초과학의 볼모지는 아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기초 과학은 전무하고 전문 과학지식조차 상위권 대학에 한정되어 있는데, 그 인원만으론 기술력을 확대하기는 어렵다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초과학이나 전문과학지식이 어느 정도 바탕이 깔려 있어야 하고, 그 바탕에서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로 여러 갈래의 부가적인 이론이나 기술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강바닥이나 길가에 쏟아부을 돈으로, 기초과학자나 전문과학지식인들을 양산하는 게 차라리 직업의 범위를 더 넓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들의 홀대와 수모는 게속되어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안 팔리는 과학책을 꾸준히 내주는 출판사가 오히려 기초과학에 기여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착잡한 맘 금할 길이 없다. 왜 국가는 많은 일자리가 생기길 바라면서, 진득하게 기다리고 투자하면 수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초 과학을, 전문과학지식인들을 방치하면서 직무유기하는지 모르겠다.

 

휴....

 

인문도 어렵지만, 과학지식인조차 이 땅에서 살기 어려운 것 매한가지 인가 보다. 이 땅의 수 많은 기초과학자들과 전문과학지인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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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08 20:23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좋은 금요일 저녁 되세요.^^

기억의집 2016-01-08 20:30   좋아요 1 | URL
네, 서니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날씨가 생각보다 안 추워서 괜찮은 것 같아요!

살리미 2016-01-08 21:12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어제 이종필 교수의 페북글 보고 울컥했어요. 최고의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인데 그런 상황인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한쪽에선 끊임없이 스펙을 요구하고 또 한쪽에선 오버퀄리티라고 채용을 거부하고... 인문학자들만 어려운줄 알았더니 기초과학분야도 홀대가 너무 심하네요 ㅠㅠ

기억의집 2016-01-08 22:30   좋아요 1 | URL
식사 하셨어요? 전 설거지 끝내고 들아왔네요.
그쵸! 어제 그 글 읽는데 속상하더라구요. 그래서 차마 좋아요 버튼 누르기가 그랬어요 페북은 왜 좋아요 버튼일까요? 하긴 알라딘도 그렇긴 하네요. 전 그 어느때보다 직업의 종류는 많아진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린 나라 칠팔십대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온리 건설!! 하아~ 제가 그 글 읽고 얼마나 열 받았으면 이렇게 글도 올리겠어요.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껴야하고 많은 지원과 개방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서니데이 2016-01-20 17:43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오늘도 편안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기억의집 2016-01-20 22:19   좋아요 1 | URL
서니님도요~ 날씨가 추워서 돌아다니기 힘든 나날 같아요. 집에만 있으니갑갑하네요!

오거서 2016-02-13 10:03   좋아요 0 | URL
엊그제 뉴스 보면서 다시 분노했지요. 우주의 중력파를 발견하는 실험에 한국인 과학자가 참여했음을 알고 반가웠지만 그 소식을 전하는 기사 끝에 그 실험을 2 년 전에 국내에서도 신청하였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거에요. 창조 경제를 내세우고 과학 인재 육성을 외치고 있는 이 정권과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어찌나 화가 나던지요. ㅠ

기억의집 2016-02-13 11:40   좋아요 0 | URL
강바닥에 22조 쳐 박아두면서 저런 거 아까워하는 나라미... 며칠 전에 미국에 사는 친구랑 통화했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한국은 이명박근혜 에후 it도 더 이상 강국이 아니고 후진하고 있다고... 저는 궁금해요. 기초과학을 위해 정부가 얼마나 투자하는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나 발표하는 나라에서 뭘 기대할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