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라는 단 한사람의 범인을 찾기 위한 사건 해결 과정을 추적하는, 형식적인 기법을 창조해 소설의 한 쟝르를 만들었던 포우나 코난 도일이 없었더라면....아가사 크리스티가 그들 대신 미스터리 쟝르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봄에 나는 없었다>같은 순수 소설을 쓴 평범한 작가로 후대에 이름이 남았을까? 엉뚱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미스터리 여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버지니아 울프 같은 대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초등 육학년때인가, 80년대 초반에 티비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아가사 크리스티역을 맡아 남편의 외도에 잠시 잠적했던 일화를 영화화했던 <아가사>란 영화를 방영해 준 적이 있다(휴, 이 영화 제목을 몰라 한참을 검색해서 찾아냈다). 뭘 모르던 어린 눈에도 아가사로 분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심적인 고통으로 방황하던 연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더스틴 호프만이 나왔는지 이번에 검색하면서 알았을 정도로 여주만 기억남은 영화였는데, 그 때 방송에서 추리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가 남편의 외도로 행방이 묘연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걸 영화화했다고 선전했었는데, 이 에피소드를 아가사 크리스티가 소설로 썼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 땐 감독이 그녀의 잠적을 미스터리로 만들었는 줄 알았는데, 작가 자신의 행방불명을 소설화 했다니,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가 어느 정도 객관화 되고 추스러진 상태에서 쓴 건가. 소설 제목 자체의 아우라가 공허함과 절망감이 섞여 있는 듯 하다.
갈수록 독서의 폭이 좁아져 순수소설쪽은 잘 안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미스터리 기법을 제거한 체 씌여졌는지 궁금하다. 그녀가 순수소설은 대하는 법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