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무 이야기
이 책의 가장 만화스러운 장면은 아마 나이 천년의 삼나무를 베고 그 벤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의식일 것이다.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읽다보면 행동감이 느껴지고 익사팅한 속도감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건 작가의 글재주다. 독자인 나는 머리속으로, 지금까지 보아왔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 주인공들중 적절한 인물들을 골라 나무를 베고 잔가지를 쳐 만든 통나무를 타고 마을까지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한컷한컷 만들어낸다(사실 읽다보면 글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런 그림이 만들어질 정도다).
허나 나는 그 천년 나무를 베고 주인공들이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그리는데 즐겁고 익사팅하게 상상하기 보다 천년 나무가 베었다는 것때문에 안타까웠다. 죽은 나무도 아니고 쳔년이나 된 살아 숨쉬는 나무를 축제(의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였다는 것 때문에.
가무사리 마을사람들이 이 나무를 벤다고? 그렇다면 가무사리 신을 모시는,48년 많에 한번씩 돌아오는 대축제는 가무사리 산의 거목 한 그루 베는 행사를 말하는 모양이다(p276)
작가한테 묻고 싶다. 아무리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의 장치로 천년 나무를 선택했어야만 했는지 말이다. 백년 이백년된 나무를 쳐 내는 것도 불편한데, 무려 천년된 나무라니.
진짜 저 대목 읽으면서 읽는 그 순간 복잡했다. 이건 단순히 작가가 꾸며낸 이야길 뿐인데, 뭘 그리 신경쓰누! 라는 생각이 연거푸 들면서도 맘 한켠엔, 그 나무가 서 있던 천년 동안의 자리, 천년 동안의 기억, 천년 시간의 흐름이 한순간 사라졌다는 것 때문에. 번개나 천둥같은 자연의 순리에 의해서가 아닌 사람에 인위적인 행위때문에.
의식이나 축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천년의 자리를 없앨 정도로. 정말 아니지 싶었다.
몇년 전만 해도 나는 나무 그늘에서 쉴줄이나 알았지, 나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르고 살았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일회용 종이컵도 아까운 줄 모르고 사 들이고 마셨으니말이다. 내가 더 이상 종이컵으로 커피를 마시지 않고 원료가 나무인 것들을 잘 사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데에는 에드워드 윌슨과 관련된 장대익 교수의 글을 읽고 나서부터이다.
언젠가 장대익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집무실에 다 찌그러지고 너덜너덜한 일회용컵이 있어서 뭐냐고 물었더니 며칠전에 파티에 초대받아서 갔더니 그 곳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길래, 그 컵으로 파티 내내 마시고 집으로 가져 왔다는 것이다. 완전히 찢어지고 더 이상 사용 못할 때까지 쓴다는 거였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컵을 만들기 위해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 게 싫다고, 본인 한명이라도 환경운동을 실천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위대한 생물학자(윌슨은 정말 위대한 생물학자라 할 수 있는데, 내 생각엔 도킨스가 윌슨 같은 생물학자들의 연구자료때문에 <이기적인 유전자>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윌슨이 개미의 집단형태를 연구하면서 디엔에이가 행동을 결정한다는 논문을 썼다)가 일회용컵 하나 못 버리고 못 쓸때까지 사용한 후에 버린다는 글을 읽고 나의 생활형태을 둘러보게 되었고, 환경 문제를 되짚게 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생활 물건들(소파, 책장, 식탁, 싱크대같은 가구들), 일회용 컵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이로 만들어진 책들. 환경운동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작은 것부터 둘러보자고 말이다.내 주변에 넘쳐나는 게 나무이건만 왜 나는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낭비하면서 살았단 말인가. 게다가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베어져야한단 말인가 말이다. 수 많은 나무가 사라지고 회색빛 콘크리트 지구를 생각해 보니, 상상하기도 싫다.
여하튼, 될 수 있으면 나무가 원료가 되는 것들은 사용하지 말고 사지 말자는 쪽으로 바뀌면서 가구나 종이컵뿐만 아니라 종이책도 되도록이면 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동시에 나오면 전자책을 산다. 몇 번 실험해 보니, 나는 읽.는.다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궂이 종이책이 아니여도 상관이 없었다. 종이책의 넘김이나 손안에서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무게감을 느낄 수 없어 아쉽기는 해도 전자책도 읽을 수 있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회용컵대신 머그컵을,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바뀌면 수 백년된, 수 천년된 나무는 그 자리릴 지킬 수 있지 않으려나. 비록 아주 작은 실천이지만. 그래서 하는 말, 출판사들이여 제발 부지런히 전자책 좀 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