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독 들이다가 이번에 반값세일하길래 구입했다. 받아보니 인터넷 서점에 올라 온 표지보다 실물책 표지의 나비의 색은 정말 이뻤다. 나비의 색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형형색색의 나비 표지를 보고 있자니, 겉표지가 지저분하면 안 될 것 같아 이 책은 가지고 다니면서 읽지 않고 집에서만 읽었는데, 어느 날 하루는 어디에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었다. 한 이주일을 샅샅이 이 잡는 듯이 집안 책장을 뒤져도 안 보이길래, 포기하고 도서관에 서 빌려 읽어야지, 어제 콘솔 서랍에서 발견하였다.

 

찾아 낸 책의 표지를 살펴보면서, 문득 나는 나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서 나비는 탈피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곤충이다. 대체로 성장기에 이쁘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아도 나중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는 그림책의 흔한 주제인데, 그런 나비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작가의 의도는 참 좋은데 왠지 읽어주면서도 찜찜하고 꺼림직한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어제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왜 나비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스릴러물, 미스터리물, 형사물을 엄청 좋아하는데, 내가 초등학교 때인가 여하튼 80년대 초반에 형사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수사물 드라마를 아주 열심히 본방 사수하거나 재방송을 찾아 보았다.

 

그 때 본 형사의 한 에피소드에서 한 여자가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죽은 여자의 어깨에서 살점 한 덩어리가 사라지고 없어졌던 것. 사건 해결을 위해 형사들은 분주히 사건 용의자들을 찾아 돌아다니고 우연찮게 살인범은 그 여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나비표본수집가였다. 죽은 여자와의 관계에서 그 어떤 대척점도 없었던 그가 왜 그녀을 살해했을까? 그 이유는 그 죽은 여자가 자신의 어깨에 한 문신때문이었다. 그녀의 나비 문신은 나비를 잡기 위해 산에 온 나비표본수집가의 눈에 들어왔고 그 문신의 나비를 갖고 싶었던 수집가가 그녀를 죽이고 어깨의 나비문신를 자신의 컬렉션에 포함시키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살인의 동기였다.

 

어린 맘에도 살인의 계기가 어처구니가 없어 잡힌 범인의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여전히 활동중인데 이름을 모르겠다)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드라마에 나왔던 형사들은 단 한명도 기억을 못 하면서.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지 않나. 아무래도 트라우마 같다. 그 이후 나는 나비 수집에 대한 약간의 혐오감이 생겼고 곤충를 잡아 표본한다는 것을 꺼림직하게 여겼으니 말이다. 나비를 수집하기 위해 살인을 한 수집가만을 싫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비까지 찜찜한 대상을 확대한 것인지. 아마도 나비수집이라는 하찮은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충격아닌 충격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내가 나보코프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로 평생 그가 나비를 사랑했고 나비수집표본가였다는 것때문인 것을 보면, 우리 인간 무의식의 세계는 그 땐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더라도, 잊고 싶은 기억이나 사건을 완전히 덮을 수 만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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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12-05-15 14:30   좋아요 0 | URL
글 보기 전에 책표지 보고 나비 도감인가 했어요.(50%할인이라는 말에 또 혹하고. ^^*) 책소개글 보니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님 말씀처럼 잊고 사는 듯 싶어도 예전의 경험이나 기억은 잠재적으로 남아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 저는 대학 다닐때 (과제로) 나비 표본을 만들어야 했던지라 날아다니는 나비를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든답니다.

기억의집 2012-05-15 14:07   좋아요 0 | URL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재밌어요. 본격적인 과학이론이 아니고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에세이라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ㅋㅋ 저는 학교 다닐 때 숙제 거의 안 했던 것 같아요. 방학때 신나게 게으름 피운 기억 밖에 없어요. 그 땐 왜 그리 나비표본이나 곤충 표본을 장려했는지 모르겠어요. 학교중앙에 진열도 해 놓고 했지요^^ 요즘 없어져서 좋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5-15 14:36   좋아요 0 | URL
나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나보코프까지...오호...하긴 나보코프의 나비채집은 유명했죠.

기억의집 2012-05-15 16:20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양반의 자서전도 읽었는데, 나비에 대한 사랑보다 집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만한 사람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더라구요. 시간만 나면 나비를 찾아 다녔고 나보코프가 발견한 나비는 나보코프 학명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니깐요.

숲노래 2012-05-15 15:46   좋아요 0 | URL
까치 출판사 책이 반값 행사라니!
놀랍군요 @.@

나비는 그냥 나비인데 형사물이나 추리물에서는
으레 나비를 좀 한쪽으로만 보여주곤 해서
안 좋아할 수 있기도 하겠지요~

기억의집 2012-05-15 16:25   좋아요 0 | URL
평소 까치는 50프로 할인 행사 안 하나요?
4월에 산 책인데 아직도 50프로 할인 하던데요^^

아마 저 드라마의 원본이 어디 있을 것 같아요. 저 때가 80년대 초반일 것 같은데, 저런 소재의 드라마를 우리 나라 작가가 쓸 것 같지는 않아서..일본 원작 같기도 해요.

icaru 2012-05-16 12:52   좋아요 0 | URL
님이 말씀하신 드라마와 비슷한(비슷하다기 보다, 나비가 소재였고, 납치 살인이 있었다는 정도지만) 내용을 전, tv 문학관에서 본 것 같아요~ ㅋㅋㅋ
나보코프도 그랬군요. 헤르만 헤세의 단편 중에 나비 라는 작품도 생각나고요. 나비는 어쩐지 훔치고 싶고, 망가뜨리고 싶어하는 소재의 코드로 잘 등장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고요~

기억의집 2012-05-16 22:55   좋아요 0 | URL
헤세의 나비 있는데, 가지고만 있고 읽지는 않았어요. 아 생각해보니 저 중고등학교 시절에 헤세 엄청 좋아했어요. 88년인가 올림픽 때 여의도에서 도서박람회 같은 거 했었는데 그 때 친구랑 같이 가서 헤세의 유리알 유희 사 가지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헤세,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그쵸, 저런 비슷한 오리지널이 어디 있을 것 같아요. 그걸 약간씩 변형하고 그런 것 같은데...수십년이 지난 지금 오리지널이 궁금해지네요. 문학관에서 한 것은 뭘까요? 한때 저 티비 문학관 다 봤는데, 엠비씨에서 금요일 저녁에 했던 베스트극장하고요.

scott 2012-05-29 21: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억의 집님
나보코프에게 나비는 집착이였고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마지막 자존심이였어요.
원서표지는 핀에 고정된 나비 한마리뿐인데 한국어판 표지는 ㅎㅎ징글
저는 나비를 떠올리면 무시무시한 영화가 떠올라요.
조디 포스터가 나왔던...

기억의집 2012-05-29 21:15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저는 나비에 대한 반감 비스무리 한 게 있어서 이 책 탐탁치 않았는데,, 받아보고 표지의 나비색 보고 너무 이뻐서 놀랬어요. 정말 이쁘더라구요. 자연의 색이 이런 것이구나 싶은게.

나보코프의 나비에 대한 사랑은 집착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이유 말고 조디 포스터의 나비도 있었죠. 헐~ 진짜 싫다. 근데 양들의 침묵 재밌긴 했어요. 그땐 그게 참 센세이션널 했는데...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미드보니 이젠 그것도 별거 아닌 것 처럼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