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리뷰어들하고 달리 나는 이 책 그렇게 인상적이지도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책을 읽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부류는 사토같은 사람들. 지식의 괴물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다 웃기는 말. 이 사람의 말이나 관련 책 그리고 권하는 책들을 보고 있자면, 자신의 종교적 보수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유지하기 위한 책들만을 읽는다. 보수성의 틀을 깨기 위한 지적인 작업은 절대 하지 않으며 종교와 상반된, 다른 카테고리의 지적인 모험에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천년 왕국을 지내면서 모든 과학을 다 부정한 것처럼 사토도 자신의 종교적 보수성을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으로 이 세상의 모든 과학책을 다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 책을 쓰는 사람들중에는 자신이 믿고 있는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와 보수성을 확고하게 다지면서(시멘트처럼) 이어나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보수성을 위아래고 이어 받으며 사회적인 보수성을 더 공고하게 다져놓으려고 한다. 사토가 추천하는 책들을 보면 맨 그런 책들. 아 따분해. 클로즈드 서킷 그 자체다.
또 한 부류는 다치바나같은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부류. 이 쪽은 보수고 뭐고 기존의 지배사상의 말뚝조차 뽑아버리는 스타일, 하루키가 말하는 클로즈드 서킷의 반대 열린 서킷같은 부류이다. 지적인 모험심이 강하고 최신의 이론에 흡수가 빠른 사람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사토는 한 눈을 감고 있다면, 다치바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탐색한다는 점이 틀리다. 보통의 부지런함 갖지 않고는 다치바나같은 독서가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다치바나가 권하는 책들을 보면, 정말 지적 호기심이 장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경외감마저 든다.
다치바나는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가 권하는 것은 현대의 과학책. 이 책에서 소설을 권하긴 하지만 심드렁하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주관이 더 확고해 지는 듯. 사실 나 또한 고전을 어린 아이들에게 권하지 않는데, 솔직히 그 나이에 고전 안 읽어도 상관 없다는 주의다. 교양이 어쩌구 저쩌구 간에,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고전을 권하는 것조차 이해 못하겠다. 걔네들이 그런 책 읽고 완전 이해도 못 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감성과도 맞지 않는다. 그런 걸 뭘 그렇게 읽으라고 야단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어린 것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읽고, 4대 희곡을 읽고, 칸트 철학을 논하고, 제인 오스틴 이나 헤밍웨이 같은소설들을 읽는, 이런 것들이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간접경험을 안겨다 준다고 믿는 것일까? 겉멋만 잔뜩 들고 어깨만 으쓱해질 뿐이다. 사실 내가 그랬다. 중고등학교 시절, 고전 열심히 읽은 나는, 책의 내용을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보봐리 부인이 바람을 피었는지, 왜 그녀가 자살을 선택해야 했는지, 왜 라스코니코프는 노파를 죽여야했는지, 겉만 흝고 지나갈 뿐 좀 더 진지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더 웃긴 건 그런 책을 읽었다는 자체만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이가 들어 그 고전들의 내용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어렸을 때 읽었다는 이유로 손이 가지 않는다. 고전은 좀 더 성숙할 때, 나이가 충분히 들어 감정적 경험치가 무르 익을 때 읽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나이 들어 그런 책들이 더 다가오지 않을까나. 책에 등급제가 있다면, 난 아이들에게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맞는 등급을 매겨주고 싶다. 요즘 얼마나 많은 청소년을 위한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는가 말이다.
그리고 작가들 자신도 자신의 작품이 성인을 대상으로 쓴 것이지 청소년들에게 읽히려고 쓴 것들은 절대로 아닐 것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었으면 좋겠다.
덧: 이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수 없었던 것 하나. 일본제국주의에 관련된 우익관련책에 대한 추천은 있는데...... 그렇담 왜 그 반대편에 있는 2차대전시,정신대같은 혹은 자신들의 만행을 고발한 책에 대한 안배는 없는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