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번역자의 후기를 보았다.
언제부터인지 외국소설을 읽고 난 후에, 뒤에 게재된 번역가의 한마디를 꼭 읽는 습관이 들었다. 번역 기계가 아닌 이상에야, 다른 언어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난 뒤에는 번역자도 그 책에 대해 뒷끝감상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원서를 읽고나서 괜찮다는 생각에 책출간을 기획했을 수도 있고 출판사의 의뢰에 어쩔수 없이 떠 맡을수도 있지만, 번역자의 후기는 그 책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성을 어느정도 측정할 수 있다. 심지어 번역자의 후기뿐만 아니라 편집자의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면, 그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공은 이루말 할 수 없으리라. 지금까지 편집자의 후기가 쓰여져 있는 것은 북스피어의 김홍민편집자와 예전 출판사중에서 박중서편집자정도. 아, 북스피어는 독자교정자들도 모집하던데, 아이들이 조금만 컸더라면 독자교정에 응모라도 할 수 있겠건만(윽, 속쓰려!).
권남희씨의 후기에 주목하게 된 연유에는 같은 엄마로서의 위치때문이다. 매번 그녀는 자신의 번역책 후기에 자신의 딸 정하이름을 꼭 언급한다. 보통 번역가들의 책을 보면 개인적인 언급은 피하는데, 이번에 나온 <애도하는 사람>에서의 후기에도 사춘기 소녀 정하에게 사랑을 보내며 라고 쓰여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이제 그녀의 딸 정하가 사춘기구나. 내가 정하라는 이름을 처음 본 것이 언제였더라. 년도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였던 것 같다. 지금 주섬주섬 책장에서 꺼내와서 보니, 청춘보다 사춘기에 가까운 딸 정하야, 사랑한다 라고 적혀있다. 몇 년 사이에 그녀의 딸 정하는 사춘기에 도달한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참, 세월 빠르다. 내가 전혀 모르는,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번역가의 딸 소식을 이렇게 후기로 간간히 듣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그녀의 딸 정하가 차츰차츰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다. 그녀의 후기를 빌미로 그녀의 딸 정하의 사춘기를 응원하고 싶다. 다음엔 무사히 사춘기를 잘 보낸 딸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세지를 읽을 수 있으려나. 권남희씨의 지칠 줄 모르는 번역 에너지는 아마 딸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미래의 어느 날 그녀의 딸 정하가 두 손 가득 안을 수 있는 책은 얼마나 되려나. 정하가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가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그녀의 후기를 통해 간간히 소식을 접했으면 좋겠다. 마치 윤미네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