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듣기에는 떨떠름 한 말이지만,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격언이 떠 오른 책이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벌어 개인적으로 쓰기 바쁘지만,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2. 대를 이어 어마어마한 부를 세습한, 그리고 그 부를 가장 잘 사용한 사람들은 이탈리아 피렌체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메디치 가문일 것이다. 일단 이 가문은 그 돈으로 이탈리아의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그 영향력(예술과 문화 그리고 학문적 지원)은 유럽의 예술과 문화를 전파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유럽을 관광 대국으로 만든 위대한 가문이라는 것에 태클 걸 역사학자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3. 미국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 경감은 부유한 삶을 살았고, 어쩜 그 삶에 만족하면서 살아도 될 뻔했는데 51세에 조지 매그레스를 만났다. 그는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출세하기 보다는 범죄 현장에서 시신을 부검하는 병리학자이다. 시신 부검 할 때 쓰이는 폼알데하이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감염병에 걸린 그는 필립 하우스란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때마침 입원한 그녀와 만나면서 법의학에 대해 그녀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4. 미국은 사망사고 검사시 코로너라는 조사관 제도를
채택해 운영하는데( 이 시스템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해서 진짜 놀람), 19,20세기 초반만 해도 이 코로너 조사관들이 부패해 검시관 제도로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는데, 그때 막 활약한 인물이 바로 조지 매그레스였다. 그는 일반인의 사망시 시신를 부검함으로써 그가 자연사인지 타살인지 알아냈고 타살일 경우 법정 증언을 하기도 했다.
5. 코로너 시스템의 우세속에서 하버드에 법의학을 만들고 주도한 인물이 바로 프랜시스 리 경감이었다. 그녀는 고졸이었고 학위도 논문도 없어 전면에 나설 수 없었지만, 재정적 지원을 함으로써 법의학의 체계를 가이드한(이 책을 읽고 나면 이끈이라는 말을 놔두고 가이드라는 영어를 썼는지 알 수 있을 것) 인물인 것이다. 게다가 법의학이 사건 현장에 나가 시신을 발견한 경찰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판단, 하버드 법의학과 경찰들에게 세미나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역활을 한 인물이었다.
6. 법의학에서 법의학자들이 사용하는 검시와 경찰들이 시신을 보고 판단하는 검시는 한자가 다르다. 유성호 법의학자의 책,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서 언급했나, 기억이 안 나지만 경찰이 사건 현장에 나가 시신을 검시하는 시는 볼시를, 현장에서 타살이라고 판단되면 검사가 법의학자에게 의뢰해 법의학자가 검시할 때의 시는 주검(시체) 시자를 사용한다. 이때 경찰이 현장에서 검시하는 역활을 리경감이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일의 연결고리를 잘 알고 그 연결 고리를 잘 이어준 선구인적 인물이었다.
7. 물론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법의학이 금방 뿌리를내리지는 못했다. 법의학자가 부족하다. 이건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쥐꼬리만한 월급이 가장 큰 요인일테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미국은 검시관 제도보다 코로너 조사관이 존재한다고.
8. 2000년대 들어서 CSI 드라마 덕에 법의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알기 시작했는데 아마 프랜시스 리 경감의 노력이 반세기 지나 빛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지 싶다. 최근 넷플릭스의 범죄 다큐 보는데, 70년대 후반 존 게이시 사건때 형사들이 청바지 입고 시신 파내는 거 보고 기겁을 했는데, 90년초 제프리 다머때는 위생복 입고 처리하는 것 보고 법의학이 점차 바뀌는 게 보였다.
9.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 20세기 초반의 부가 미국의 학문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조금 알 것 같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부자들의 부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며 어떤 이는 개인적인 영역에 부를 집어 넣지만 리경감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부를 공적인 영역까지 확대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