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나는 살인자다,라는 시간 분량이 사십분 정도밖에 안 되는 시리즈를 보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가해자의 인터뷰를 보면서 맘이 아펐다.

범죄자의 진술, 특히 피해자가 살인 당한 경우 가해자의 진술밖에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범인의 진술을 거의 믿지 않는다. 수사관들은 살해 현장의 증거 위주로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죽였는지에 대한 살해 동기와 무엇으로 어떻게 살해했는가에 대한 범행 도구와 과학 증거로 사건을 퍼즐처럼 맞춘다. 대부분 범인들은 형을 줄이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 놓거나 자기 변명식 진술을 한다.

나는 살인자다, 에 나오는 범죄자는 사형수 혹은 무기 징역을 선고 받었는데, 데이비드 바넷과 조지프 머피의 인터뷰 보는 내내 맘이 아펐다. 누가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나? 범죄자는 유전적 요소보다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지난 날 생물학관련 책 몇 권 읽고 유전적 요소가 더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라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을 정도다.

두 남성 살인자 모두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학대 받었고 특히나 가슴에 미어질 듯 아팠던 것은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에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었고 심지어 조지프 머피의 경우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었다는,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가 당한 게 비정상적인 일이었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살면서 단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던 두 살인자, 신체적 학대만 있어도 힘겨울 삶일텐데 성폭행까지, 그 어린 애들을 상폭행한 남자들을 내가 다 쏴 죽이고 싶었을 정도인데… 저들에게 아무리 학대를 받어도 성인이 되면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어야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바라는 건 말도 안되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도 자기들을 보호해 주지 않었던 기관들. 학대에 대한 분노를 결국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말을 불러 들였고 무고한 피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살인자에 대한 연민을 느꼈을 정도였다. 아니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저들을 살인자로 만든 건 누구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에 나오면 과연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이중적인 마음도 들고. 조지프 머피는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 받으면서 자기는 감옥에서 평생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시리즈는 살인자의 진술과 그 진술에 반대되는 인터뷰도 있어 시청자에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누군가는 살인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라고 하겠지만, 나는 어느 정도 그들의 말에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처음으로 가해자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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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5-0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해자에 대해 연민을 느꼈던 영화가 몇 편 있었어요. 누가, 어떤 세상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전적 요소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범죄자들의 가정 환경을 보면 좋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좋은 환경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사람이라는 점을 짚게 되더군요.
피해자가 가여운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기억의집 2022-05-12 22:51   좋아요 2 | URL
인생의 가장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태어나 단 한번도 삶의 즐거움을 못 느끼고 분노로 가득찬 삶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아직도 맘이 아픕니다. 미국의 사법이나 행정이 80년대 후반부터 좋아진 것 같어요. 요즘 넷플릭스 과거의 범죄 다큐 보면서 7,80년대 인권이라는 게 없는 것 같었어요……

mini74 2022-05-0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행하고 어두운 삶이 유전자에 후천적으로 상처를 남기고, 그런 상처받은 이들의 아이들에게도 되물림된다고 하는 글을 읽었어요. 가해자들의 삶도 지옥같네요 ㅠㅠ

기억의집 2022-05-12 22:51   좋아요 1 | URL
그런가봐요 그제 본 연쇄살인마 리처드 코팅햄은 진짜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살었다는데.. 그렇게 십년 넘게 2주 마다 여자들을 죽일 정도면.. 뭔가 있는 거 겠죠. 전에는 가해자를 무조건 비난하는 마음이었는데 이번 가해자 영상 보면서 제가 갖고 있던 기존의 생각도 많이 변했고 적절한 말인 것 같어요 지옥 같은 삶…. 듣다보면 태어난 여기가 지옥인 사람이더라구요 부모도 개떡 같은 것들이어서 화 났어요!! 술 한병 사기 위해 자기 어린 자식을 술집 주인에게 성관계 하라고 부추켰고 술집 주인은 어린 아이를 범하더라구요 아 짜증납니다!!!

psyche 2022-05-1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큐봐야겠네요.

기억의집 2022-05-10 07:36   좋아요 0 | URL
저는 언제나 범죄 가해자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인데.. 진짜 처음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분노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 다큐였어요. 미국의 백인 가정에 대해 미디어에 비춰진 게 전부가 아니였네요. 그렇게 힘든 삶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