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 뇌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데이브 골드버그의 백미러속 우주의 한 챕터였다. 작가는 에미 뇌터를 가리켜, 20세기 과학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는 아마추어 과학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조차 이 위대한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뇌터의 정리는 대칭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지만, 데이브 골드버그가 그녀의 삶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수학자가 꿈이었던 그녀가 얼마나 힘겹게 수학적 불변량(대칭하고 관련이 있는)전문가가 되었는지 소개하고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묘사한 20세기 초의 대학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유명한 수학자 막스 뇌터임에도 불구하고 1898년 에를랑겐 대학 교수 협회는 여성의 대학 입장을 앞장 서 막었으며 여학생을 대학에 받아들이는 것은 학계의 모든 질서를 붕괴 시키는 행위라고 못 박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는 수학과 학부 과정을 청강한 후, 대학 졸업 시험을 통과 했다. 그나마 1904년 에를랑겐 대학은 여성의 입학을 허락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철회함으로써, 에미 뇌터는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1908년 박사 학위를 받었으나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에를랑겐 대학에서 8년간 무보수로 일하면서 부친의 강의를 대신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나마 당대 최고의 수학자인 힐베르트가 초청해 괴팅겐 대학에 있었으나 마찬가지로 무보수로 일했다. 에미 뇌터는 괴팅겐 대학에서 뇌터의 정리를 유도했고 대칭이라는 수학적 개념이 물리학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뇌터의 정리가 얼마나 중요한 수학적 물리학적으로 중요한 지는 리 스몰린이 “뇌터의 정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두발자전거가 안전하게 달리는 이유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말에서 대칭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후에 미국으로 건너 와 브린모어컬리지 교수가 되었지만, 암진단을 받고 수술 후 감염으로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를 추모하며 아인슈타인은
“에미 뇌터는 이 시대 최고의 수학자였다. 여성에게 고등교육의 문이 개방된 후 그녀만큼 뛰어난 업적을 남긴 천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론 물리학의 대칭분야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지만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과학사가들 정도이고, 지금은 과학사가들에 의해 활발하게 그녀의 삶과 뇌터의 정리하는 수학적 업적이 조명되고 있다.
아마 이런 것이 과학사가들의 역활이겠지만, 이번에 세로 출판사가 에두아르도 사엔스 데 카베손이 아기 돼지 삼형제(과학 대중화에 힘쓰는 물리학자들 트리오)와 함께 이 책을 쓴 것 같다.
내가 애정해 마지 않은 물리학 개론책인 백미러 속의 우주,에 에미 뇌터가 소개된 적이 있어서 이번 과학 신간에 에미 뇌터 그녀의 좌표가 출간 되어 그녀의 삶과 이론을 좀 더 알고 싶어 구매했다.
이번 책은 좀 더 쉽게 설명 되어 있기를 바라며, 어디든 어느 시대든 에미 뇌터의 업적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