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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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가 쓴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랬다. 어쩐지, 보이지 않는 세력(?)이 김용철 변호사를 소리 소문없이 잡아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책을 읽어보기 전에도, 대략 어떤 내용이 담겼을 것이란 추측을 하긴 했지만, 실제 읽어보니 예상 그 이상의 솔직하고 충격적 내용이 담겼다. 나는 김용철 변호사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 몰랐다. 법 공부를 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하지만 분명하고도 덤덤하게 내용을 풀어가는 솜씨가 놀랍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문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관찰하고, 고민하고, 느끼고, 정리한 사람만이 펼채낼 수 있는 것임을 알기에,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아직 우리 세상이 조금 살만 하다고, 그래도 정의라는 게 살아있다는 느낌과 고마움과 함께, 너무 많은 책임과 짐이 김용철 변호사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예전에 한겨레 특강 <배신>에서 김용철 변호사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과 비리에 대한 양심 고백을 한지 얼마 안됐던 시기였고,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던 시기였다. 얼굴에 번민이 가득한 그의 얼굴을 나는 멀리서 봤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뭐랄까,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는 게 역력했다. 책에서도 나오듯, 몸이 약하고 조용하던 소년은 커서 검사가 되었고, 삼성의 수뇌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또 삼성의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변호사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삼성을 생각한다'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느끼고, 겪은 삼성에 대한 생각을 이 책을 통해 보고, 나도, 다른 독자들도 삼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책을 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삼성의 엄청난 힘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가 됐다. 사람들은 글로벌 기업 삼성의 놀라운 성장과 경제력을 칭송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론을 펼치는 사람은 거의 매장되는 분위기다. 대학 교수든 기업인이든 정치인이든, 삼성의 경영 혁신과 성장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삼성은 브랜드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인 것일까? 불법 승계 과정, 비자금 조성, 각종 로비 등에서 드러난 삼성의 진짜 얼굴을 추하다. 원래 진짜 나쁜 사람은 나쁜 짓을 드러내놓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선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뒤에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인데, 삼성이 바로 딱 그런 모습이다. 물론 삼성에서 일하는 다수의 착하고 나쁜 사람들을 탓하는 게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국가는 아니듯, 삼성 직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분노와 절망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실을 찾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까지 김용철 변호사를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 시민단체 등 많은 이들이 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번번히 실패했고, 사법부는 계속해서 실망스러운 결정으로 우리를 절망하게 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실패한 게 아니다. 정의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정의를 찾고, 바로잡으려는 그러한 몸짓, 노력 하나가 모두 정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이 곧 힘이고 권력이자 정의가 되는 세상, 하지만 진짜 궁금하다. 경제성장, 대기업의 놀랄 만한 수치상 성장의 진짜 혜택과 이득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건지 궁금하다.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진실을 짓밟고 그 위에 세운 모래성 같은 힘은 오래갈 수 없다. 하지만 삼성은 그 모래성에 시멘트칠을 하고, 내진 설계를 하고, 호위병을 세운 단단한 철옹성이 되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어찌 대응할 수 없이 너무나 안하무인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그 단단한 성에 돌 하나 던져보기도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씁쓸하다. 삼성에 다녀보지 못했고, 그 내부는 더더욱 알 수 없지만, 사람들에겐 도덕이나 신념, 정의 같은 것보다 개인의 성공과 경제적 지위가 더 중요해진 세상이다. 이러한 잘못된 편견을 깨고, 나부터 제대로된 신념과 믿음을 갖고 살기 위해, 무엇보다 아는 게 힘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아는 것은 고통 받는 일이란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은 정말 맞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괴로웠다. 화가 나고, 답답했다. 하지만 알게 되고, 깨닫고, 분노하는 일은 모든 변화의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정말 시작인가보다. 용기있는 선택을 한 김용철 변호사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힘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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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깔=꿀색 - 한 해외 입양인의 이야기
전정식 글.그림, 박정연 엮음 / 길찾기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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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살색이란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하는 단어로 꼽히게 되었다. 사람마다 피부색은 저마다 다른데 그걸 하나로 살색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뿐더러 인종 차별주의적 단어라서 그런 거 같은데,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하느냐의 문제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뿌리 깊은 문제인 거 같다. 우리 모두 부정하고 있지만, 사실 다 안 그런 척 할뿐, 내면에 심어진 선입견들,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 것이다. 나또한 마찬가지고.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벨기에로 입양된 작가는 당시 입양 서류를 발견한다. 배설을 잘하고, 사교성이 좋으며.. 기타 등등 간단한 기록이 쓰여진 서류에서 "피부색깔 = 꿀색"이란 문구를 발견한다. 얼마나 다행이냐고 작가 스스로도 밝힐 만큼, 피부 색깔이 꿀색이란 표현은 우리 피부색은 살색이었다, 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온 우리에게 놀랄 만큼, 생소할 만큼 신선한 시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피부색이 꿀색인 어린 작가는 벨기에로 떠나 그곳에서 만난 부모님, 형제 자매들,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덤덤하지만 재치있게 자신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성장 과정은 또래의 남자아이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부분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 혼자 다르다는 생각과 근원을 찾아가는 힘겹고 외로운 여정이다. 또 자신도 모르게 '아시아적인' 것들에 자신의 감성과 관심이 향하고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가 미국인이고 골프를 잘 하는 어린 여자선수는 한국의 자랑이고, 혼혈아로 자라 한국인 어머니를 둔 뛰어난 미식축구선수는 우리의 자랑이다. 사실 한국에 와본 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한국계 누구누구는, 만약 그가 그들이 사는 나라에서 성공하고, 요직을 맡고, 능력을 인정 받게 되면, 갑자기 우리나라의 자랑이 된다. 이렇게 한국 핏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못해 집요한 사람들이, 지금껏 수없이 많이 외국으로 입양된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아니, 혹시 그중에 성공해서 이름을 날린 경우가 있다면 예외일까,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은 다 묻혀간다. 잊혀져간다. 그들은 철저히 외국인이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 

작가는 부모님과 많은 형제 자매 속에서 건강히 잘 자라서 그림을 그리고 만화를 그리면서 성장했지만, 이 책에는 자살을 하거나 마약을 하고, 교통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는 등 불행한 입양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우리는 몰랐던 가슴 아픈 진실들이다. 안타깝고 슬프다. 

예전에 육아 관련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하든지, 자신이 미운 얼굴이든 이쁜 얼굴이든, 아무 이유없이, 부모나 자신을 키워주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제대로된 자아를 형성하고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입양한 양부모가 사랑과 헌신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지만, 어쨌든 한번 버림 받았던 상처에서 어린 아이들이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다.  

한쪽에서는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지만, 미혼모를 비롯한, 저소득 계층의 육아에는 무책임하고 냉담한 정부를 가진 우리. 절대빈곤과 전쟁이 아니라도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보낼 수밖에 없는, 다른 선택이 없는 우리, 이 만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 가슴이 아플지라도, 진실이니까. 우리도 알아야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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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존잘 2012-05-27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블로그 정말 잘 봤습니다. 저도 이 책 팬이거든요. ^^ 이번에 오픈 캐스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 읽을 수 있게 링크시켜 두겠습니당.
http://opencast.naver.com/HW451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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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언제인가. 한겨레 특강 책이었는데, 주제가 자존심이었나,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으나 그 책을 읽다가 김두식 교수의 강연을 정리한 부분을 읽었다. 우리나라 법조인 중에 한겨레에서 특강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좀 산뜻했는데, 김두식 교수가 이번에는 좀더 파격적인 책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지적하고 싶은 우리나라 법조계의 현실과 함께 김두식 교수 개인이 가진 소양이랄까, 겸손하면서 깊은 교양에 놀랐다. 사실 공부를 잘 하고, 똑똑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힘든 시험을 통과한,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편협하고 옹졸하고 이기적인 생각만 하고 산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사람은 많이 알고,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목은 더 뻣뻣해지고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두식 교수가 법조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까닭은 검사를 그만두고,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사실은 잘못되었지만, 혜택을 받는 입장에 있었던 그가)에 대한 성찰 있는 반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사실 흥미로웠지만 불편했다. 마치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우주인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나는 주위에 친척, 친한 친구 다 통틀어 법조계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약 85%에 속하는 사람이란 사실이 어쩐지 불안하다고 느껴질 만큼, 신성가족의 세계는 너무나 특수하고 닫혀 있었다. 법이라는 것이 힘없고 불쌍한 사람을 위한 보호막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듣는 이야기는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평생 살면서 변호사 선임할 일 없이, 판사 앞에 나가서 죄지은 것도 없이 괜히 긴장하지 않고 사는 것이 그게 행복한 인생이자 성공한 인생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누리는 혜택의 부당함이자 부조리에 대해서는 둔한 편이니까. 얼마의 분노와 성찰이 쌓이고 쌓여야 깨끗하고 공정한 그야말로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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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하성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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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루키의 화제의 소설 <1Q84>를 읽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하성란의 이 소설집이 생각났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 <1984년>. 1984년은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두 작가에게 참으로 다른 의미가 있었던 해인 것 같다. 하성란에게 1984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리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해였고, 하루키에겐, 음. 뭐랄까. 아직 소설을 읽는 중이라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생계형, 현실적 근심은 없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취업, 생활, 돈이 아니라 존재, 고독, 자아, 세계 뭐 이런 것들이 지배한.

   
  연필 끝으로 밥상에 눌어붙은 콩나물 가닥을 긁어내는데, 세상이란 반찬 국물과 콩나물 찌꺼기가 말라붙은 포마이카 밥상이고, 취업이란 상 위에 놓은 제 숟가락을 재빨리 찾아 쥐고 놓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 중에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숟가락을 찾아 쥐기까지의 힘든 시간이 떠올랐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 동안, 그 반년 내내 나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이란 괴로움을 다 배낭에 매고서 우울한 표정으로 캠퍼스의 도서관과 취업지도실, 컴퓨터실을 오갔다. 컴퓨터실에는 나처럼 취업사이트를 기웃거리거나 자소서와 이력서를 고치는 답답한 청춘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 나와 같이 답답해하고, 불안한 앞날을 걱정하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숟가락을 찾아 쥐고서, 이젠 새로운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고3때는 수능을 치고나면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고, 대학교 4학년 땐 취업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인생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고 사는 게 근심과 걱정의 연속임을 이젠 아주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다. 또한 내 숟가락을 내가 직접 선택해서, 직접 밥을 벌어먹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나름 보람있는 일이며 이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철이 드는 건진 모르겠지만, 암튼 1984년에 소설 속의 그녀가 겪은 그 설움과 고통의 통과의례 과정을, 다른 시기에 나도 겪었기에 공감대가 깊이 느껴졌다. 

어쨌든 갑자기 이 작품이 생각난 이유는 <1Q84> 속을 사는 주인공들과 하성란의 <1984년> 속의 차이가 갑자기 엄친딸과 나 만큼이나 크단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닳아빠진 어른이 되버린 탓인지, 감수성이 씨가 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하성란의 1984년이 더 가슴에 크게 와닿는달까. 뭐 그런 얘기. 결국 가치를 어디에 더 두느냐는 문제긴 한데, 갑자기 하루키 광풍 속에서 괜히 삐딱한 생각이 들어서 이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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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웨잇...
제이슨 지음 / 새만화책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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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얇아서, 학창 시절의 필기 노트가 생각나는 이 납작한 만화책을 한 권 읽고 나서, 너무 놀라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책 뒷면에 새겨진 문구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 문구 정말 사실이다. "조심하세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줄지 모르니."
 
아, 정말 나 상처 입은 거 같다.     
 
"너의 인생엔 앞으로도 자주 어려운 순간이 닥쳐 올거야. 항상 숨기만 할 수 없단다. 그게 성장한다는 거지."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어쩔 수 없는 순간에 결정되어 버린다.  모두의 인생에는, 특히 그 인생이 떠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단 한 순간이 있단 말이 사실인가 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우린 나쁜 사람도 아닌데 자주 어려운 순간이 닥치고, 고통을 겪게 되고, 난 정말 무기력하게,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한다.  
 
"어쨌든... 내 인생은 기대와는 달랐어요... 내가 값을 치르는 건 당연하겠죠. 만약 내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 하지만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세월은 흘러 내가 그렇게 되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초라한 어른의 모습이 되버린 나를 발견하는 그 순간, 끝이 날지 모르는 인생, 기다려줄 순 없을까... 아직은 때가 아닌데,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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