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하성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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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루키의 화제의 소설 <1Q84>를 읽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하성란의 이 소설집이 생각났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 <1984년>. 1984년은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두 작가에게 참으로 다른 의미가 있었던 해인 것 같다. 하성란에게 1984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리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해였고, 하루키에겐, 음. 뭐랄까. 아직 소설을 읽는 중이라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생계형, 현실적 근심은 없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취업, 생활, 돈이 아니라 존재, 고독, 자아, 세계 뭐 이런 것들이 지배한.

   
  연필 끝으로 밥상에 눌어붙은 콩나물 가닥을 긁어내는데, 세상이란 반찬 국물과 콩나물 찌꺼기가 말라붙은 포마이카 밥상이고, 취업이란 상 위에 놓은 제 숟가락을 재빨리 찾아 쥐고 놓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 중에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숟가락을 찾아 쥐기까지의 힘든 시간이 떠올랐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 동안, 그 반년 내내 나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이란 괴로움을 다 배낭에 매고서 우울한 표정으로 캠퍼스의 도서관과 취업지도실, 컴퓨터실을 오갔다. 컴퓨터실에는 나처럼 취업사이트를 기웃거리거나 자소서와 이력서를 고치는 답답한 청춘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 나와 같이 답답해하고, 불안한 앞날을 걱정하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숟가락을 찾아 쥐고서, 이젠 새로운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고3때는 수능을 치고나면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고, 대학교 4학년 땐 취업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인생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고 사는 게 근심과 걱정의 연속임을 이젠 아주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다. 또한 내 숟가락을 내가 직접 선택해서, 직접 밥을 벌어먹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나름 보람있는 일이며 이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철이 드는 건진 모르겠지만, 암튼 1984년에 소설 속의 그녀가 겪은 그 설움과 고통의 통과의례 과정을, 다른 시기에 나도 겪었기에 공감대가 깊이 느껴졌다. 

어쨌든 갑자기 이 작품이 생각난 이유는 <1Q84> 속을 사는 주인공들과 하성란의 <1984년> 속의 차이가 갑자기 엄친딸과 나 만큼이나 크단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닳아빠진 어른이 되버린 탓인지, 감수성이 씨가 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하성란의 1984년이 더 가슴에 크게 와닿는달까. 뭐 그런 얘기. 결국 가치를 어디에 더 두느냐는 문제긴 한데, 갑자기 하루키 광풍 속에서 괜히 삐딱한 생각이 들어서 이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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