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박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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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생각인데,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낼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냉장실의 온도는 몇 도쯤 될까. 딱 연애하기 좋은 적당히 쿨~한 온도가 아닐까. 음식 유통기한을 늘려주니까 연애의 유통기한도 늘려주고,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냉장고 속 연애는 눅눅하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아서, 지나치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적절한 마음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

제법 끌리는 제목과 표지에 박아넣은 큐빅이 좀 예쁘지만, 사실 이 소설은 그닥 재미있진 않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일명 칙릭 소설의 하나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너무 읽는 재미가 없다고나 할까. 작가의 의도인 줄은 모르겠는데 주인공 나영이가 풀어나가는 이야기 솜씨가 어쩐지 영 어정쩡하다. 보통 여자, 우리 주위의 여자들이 공감하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약간은 어수룩한 여주인공을 내세운 건 같은데, 이거 전~혀 공감가지 않는다. 집에서 완벽하게 요리 해먹는 여자, 집에서 별별 재료 다 넣고 스파게티 만들어먹는 여자, 좀 통통한데 남자친구가 끊이질 않는다는 여자, 이거 도대체 공감가지 않는다. 현실감 좀 떨어진다.

사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도 여주인공 은수에게 연하남에 김영수에 친구 같은 유준까지 남자가 많은 걸 보면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한 나의 특수하고도 슬픈 상황이 더 큰 탓이겠지만, 암튼 각설하고, 나는 요즘 대중매체에서 쏟아내는 20~30대 싱글 여성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깨닫고 있다. 지금은 좀 인기가 지났지만 한때 골드미스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을 때, 나는 묻고 싶었다. 도대체 그 골드미스들은 다 어디 있나요? 그리고 그들은 과연 전체 20-30대 싱글여성 중 몇 퍼센트나 차지하나요? 스타벅스 커피와 된장녀 열풍이 보여주는 무슨무슨 미스, 무슨무슨 女를 붙여서 이야기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 여성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는다. 사실 그들의 속마음은 골드미스에 대한 견제와 질투, 그리고 '잘나봤자 너 싱글이자나'라는 속내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잘 차려입고 예쁜 젊은 여자들을 선망하면서 '낭비를 좋아하고 비싼 커피나 마시는 여자'로 무시하는 이중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자들, 다양한 직장을 다니고, 다양한 가정 환경을 가진 그녀들의 관심사는 어떤 남자를 만나고, 어떤 조건을 가진 남자를 선택하고, 암튼 뭐 그런 것들인데 그런 그녀들의 속내와 연애를 재미있는 이야기꺼리로 여기는 것 자체가 나는 우습다. 사람은 모두 복잡하다. 감자돌이 머릿속처럼, 일부분은 자신의 앞날에 대한 생각, 한쪽엔 가족, 뭐 한쪽에 재테크 등등 사람마다 다를 것인데, 젊은 싱글 여자들의 머릿속을 해부라도 해본것처럼 연애, 남자, 결혼 얘기만 과도하게 그려내서 그걸 흥미로 삼는 이런 이야기들, 재미도 없을 뿐더러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확대되고,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싱글 미혼 여성은 단체로 싸잡아(?) 정의내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건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다. 그런 편견과 색안경으로 그려지는 내 동지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대부분 달갑지 않다. 이 소설에서라면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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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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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울하거나 기운이 없을 땐, 습관적으로 '남의 살'을 먹으러 가는 편이다. 어쩐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거나, 인삼을 넣고 푹, 아주 푹 익혀낸 삼계탕을 보면서 내가 이 살코기들을 먹어야만 기운이 솟아날 것 같은 생각을 한다.

더욱 요즘처럼 맥빠지는 나날엔 의도적으로 더 남의 살에 집착하기도 한다. 옛날 가정 시간에 졸면서 들었던 단백질, 피와 살이 된다는 그 영양소, 단백질이 필요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고, 나에게 필요한 건 오직 남의 살을 뜯는다는 그 것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토록 잔인하고 독한 잡식성 동물에 불과하단 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동안 내가 자행해왔던 수많은 폭력성의 하나에 대해 놀랐을 뿐이다. 먹는다는 것, 살아있는 무언가를 잡아서 그 동물의 살을 뜯고, 뼈를 우려내고, 내장을 먹는다는 것. 갑자기 그 모든 행동들이,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그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갑자기 내가 이 목숨을 지금껏 지탱해온 힘이 결국 남의 피와 살을 뜯어먹어서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 여자는 철저히 완벽하게 육식을 거부한다. 브래지어를 던져버리고, 폭력적이지 않은 자신의 가슴이 제일 좋다는 그녀. 그녀는 일순간 이상한 여자가 되어 남편에게 버림받고, 결국 미친 여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가지만 그녀의 악몽들. 꿈속에 나타나 그녀를 괴롭혔던 것들. 그 꿈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진 그녀. 햇볕을 쬐고 물을 마시며 식물이 되려는 여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완벽하게 순수한 상태. 그녀는 정말 식물이 되려던 것이었을까.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나는 수많은 가해자 중의 한 명이 되어서 내가 가해자가 되었단 사실따위도 잊고 살았다. 먹고 산다는 일에만, 매끼 밥에만 숭고만 의미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내 치아가 무기가 되고, 내 혓바닥이 욕망의 구렁텅이임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토록 탐하고 탐하고 탐하면서도 나는 왜 계속 허기진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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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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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판매 중일 때 구입했다. 성질 급한 나로서는 오늘 주문해서 내일 당장 책이 안와도 빨리 책을 받고 싶어서 안달을 떠는 편인데, 어쩐지 나는 최규석 작가의 책에 대해선 '꼭 사야 한다'는 마음이 강한 편인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최규석 작가의 '마니아'도 아니고, 또 만화책을 꼭 사서 보는 성격도 아닌데, 어쩐지 그의 작품은 그냥 한번 슥 읽고, 잊어버리기엔 뭔가 모를 부족함과 미안함이 가슴에 남는 것 같다.

<습지생태보고서>를 읽으면서 '지지리도 찌질하고 궁색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끼면서도 하하하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선 그보다 몇 만배나 더 깊은 가난과 삶의 고난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차마 웃을 수 없었다. 단칸방에 모여사는 가난한 자취생들은 빠듯하게 생활을 해나가지만,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그들은 어엿한 대학생이며 경제적 부족함 따위는 젊고 건강한 몸과 마음만으로도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부모님과 누나들과 형이 겪었던 지난 세월들을 보면서, 물론 지금 가족 모두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해도, 그저 웃을 수가 없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 엄마와 아빠가, 우리 이모와 삼촌이,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견뎌냈을 삶들, 그 아픔과 슬픔이 내게도 조금 느껴져서,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조금 울었고 조금 웃었지만,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 엄마아빠를 원주민으로 만들어버린 주범이기에, 미안한 마음과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감각적인 거, 자극적인 거. 편하고 재밌는 거, 세상의 주류라고 일컬어지고 첨단 유행이라며 사람들이 좇아야만 하는 것들과 엄마아빠를 멀어지게 만든 것은 '먹고 살고, 자식 공부시키는 것'이였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생만 하신 엄마아빠 덕분에 밥 잘 먹고, 공부하고, 잘 놀고, 건강하게 살아왔기에. 찔린다. 정말 괜히,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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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 / 학고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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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샐러드의 손가락이 보여주는 그림의 세계, 그저 어렵게만 생각해서 유심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명화의 세계에 새롭게 눈뜬 기분이다. 거참, 하핫. 김치샐러드라는 저자의 이름을 생각해보면 도대체 남자인지 여자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정체성을 알기 어렵다. 김치로 샐러드는 만든다면, 김치를 쫑쫑 썰어서 드레싱은 어떤 걸 뿌려야 하나? 허니 머스타드는 정말 아닌 거 같은데.

그림은 누구나 다 눈으로 보는 건데, 여기 그림을 '보여주는' 손가락이 있다. 그 손가락이 짚어주는 그림의 부분부분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림 한 편을 보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그저 와 잘 그렸네, 또는 이건 뭘 그린걸까, 또는 예쁘다 정도의 감상평을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새로운 구세주를 만났다. 호호 고마워요, 김치샐러드

나는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라며 뭔가 그림에 대한 감상평을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면 좋을 책이다. 그림이든 문학작품이든 음악이든, 예술은 보고 듣고 읽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서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예술이 뿜어내는 그 아름다운 울림, 그 공기 속에 퍼지는 아름다운 파장은 우리 삶을 조금씩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세상살이, 일상에 녹아든 그 비루함과 식상함조차도 예술가의 눈에선 전혀 다른 그 무엇이 되어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서 눈여겨 본다면, 전혀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는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가슴속에선 크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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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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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김영하의 <퀴즈쇼>가 생각났다. 조선일보던가..매일 신문에 연재되던 그 소설을 초반에 꽤 열심히 찾아서 읽었는데 끝까지 챙겨 읽지 않아서 결론이 어떻게 맺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가 주어지고 답을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의 상황에 선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졌다. 상황은 딱 두 가지뿐. 정답을 아느냐, 모르느냐.

문제를 풀면 목숨을 구할 수 있고, 문제를 풀지 못 하면 목숨을 내놔야하는 운명을 건, 그런 절대절명의 퀴즈가 아니더라도, 가끔 이런 아슬아슬하고 긴장감 넘치는 순간은,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인 내가 보기에도 식은땀이 나고 목이 탄다. 이 책은 구성이 특이한데, 초반에 퀴즈쇼에서 우승을 차지한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체포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제대로 학교에 다닌 적도 없는 무식한 주인공이 퀴즈쇼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 있었는지, 그의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정을 되짚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놀랍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소설이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전업 작가도 아니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역시 다르구나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탄탄한 구성과 밀도 높은 이야기의 밀접한 연관성이 조금은 억지스러울 정도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꽤 두꺼운 이 소설책을 읽으면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 감상평을 찾아서 읽어보니까 저자는 인도 사회의 여러가지 부조리를 담았다고 하는데, 제도적인 차별과 모순이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냐만은 뿌리 깊은 부조리를 화석같이 딛고도 이상하게도, 지탱되고 있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의 상식으론 이상하기만 하고 말도 안 될지 모르지만, 그들만이 지켜온 나름의 규칙이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류시화의 <하늘 호수도 떠난 여행>만을 읽고 인도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걸 품어왔던 사람들에겐 찻물을 끼얹을 지도 모르겠다.

아는 것은 힘이다. 퀴즈쇼에 나가서 우승하면 엄청난 상금과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퀴즈쇼는 쇼다. 퀴즈는 퀴즈일 뿐, 학문이거나 지식이라고 말하기엔 무리다. 그것은 마치 뽑기 같은 거니까. 세상에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말 그대로 퀴즈로 출제된 내용만 아는 사람이 퀴즈쇼에서 우승할 수 있다. 그것을 전부 운이라고 치부할 순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운이고, 어디까지가 실력이 될 수 있을까. 힘 없고, 약한 사람들에겐 희망이란 운도 피해가기 마련인데, 과연 그런 무지개가 존재하기나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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