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우울하거나 기운이 없을 땐, 습관적으로 '남의 살'을 먹으러 가는 편이다. 어쩐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거나, 인삼을 넣고 푹, 아주 푹 익혀낸 삼계탕을 보면서 내가 이 살코기들을 먹어야만 기운이 솟아날 것 같은 생각을 한다.

더욱 요즘처럼 맥빠지는 나날엔 의도적으로 더 남의 살에 집착하기도 한다. 옛날 가정 시간에 졸면서 들었던 단백질, 피와 살이 된다는 그 영양소, 단백질이 필요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고, 나에게 필요한 건 오직 남의 살을 뜯는다는 그 것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토록 잔인하고 독한 잡식성 동물에 불과하단 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동안 내가 자행해왔던 수많은 폭력성의 하나에 대해 놀랐을 뿐이다. 먹는다는 것, 살아있는 무언가를 잡아서 그 동물의 살을 뜯고, 뼈를 우려내고, 내장을 먹는다는 것. 갑자기 그 모든 행동들이,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그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갑자기 내가 이 목숨을 지금껏 지탱해온 힘이 결국 남의 피와 살을 뜯어먹어서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 여자는 철저히 완벽하게 육식을 거부한다. 브래지어를 던져버리고, 폭력적이지 않은 자신의 가슴이 제일 좋다는 그녀. 그녀는 일순간 이상한 여자가 되어 남편에게 버림받고, 결국 미친 여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가지만 그녀의 악몽들. 꿈속에 나타나 그녀를 괴롭혔던 것들. 그 꿈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진 그녀. 햇볕을 쬐고 물을 마시며 식물이 되려는 여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완벽하게 순수한 상태. 그녀는 정말 식물이 되려던 것이었을까.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나는 수많은 가해자 중의 한 명이 되어서 내가 가해자가 되었단 사실따위도 잊고 살았다. 먹고 산다는 일에만, 매끼 밥에만 숭고만 의미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내 치아가 무기가 되고, 내 혓바닥이 욕망의 구렁텅이임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토록 탐하고 탐하고 탐하면서도 나는 왜 계속 허기진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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