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주인공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의사들은 고군분투를 다룬 책이 아니다. 의사들 간의 권력 다움이나 로맨스를 다루고 있지도 않다. 생명의 고귀함이나 의술을 행하는 자의 직업적 숭고함 대신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운영되는 병원 경영의 실페가 아주 담담하고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병원 역시 누군가는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는 삶의 터전이므로 우리의 직장 내 관계처럼 무수한 갈등과 암투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체제에 순응하는 자, 반하는 자, 기회주의자, 침묵하는 방관자 등 우리 주변을 언제나 맴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의 상황에 분노하고 공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똑같은 상황에서,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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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차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풍경들 중 유독 어떤 집에 살고 있는 여성의 삶을 지나칠 정도로 들여다보며 상상하길 좋아하는 레이첼의 이야기는 분명 신선하다. 특히나 그 여성이 갑작스럽게 실종이 되었고, 그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느껴지는 레이첼의 모호한 기억들과 집착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서로 전혀 알지 못 하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에 어떤 삶의 접점이 만들어질지,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중반으로 다가갈수록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세 여인의 독백이 제각각 전개되다 보니 어느 순간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세 연인들이 들어놓는 이야기들 사이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나를 찾아줘' 와 같은 긴장감이나 스릴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 책은 확실히 뒷심을 제대로 발휘하는 작품이다. 초반과 중반에 종잡을 수 없게 어지러이 퍼져있던 단서들의 실체가 드러나며 무심하게 깔려 있던 복선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후의 반전을 위한 장치들이 꽤나 조심스럽게, 아주 약간씩만 드러내며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전개상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레이첼의 조각조각난 기억들이 하나씩 큰 그림을 그려나갈 때의 짜릿함이란. 알코올 중독으로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그녀가 진실에 근접해나갈 때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이성은 멈추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소리치지만 결국 충동과 욕망에 지고 마는 나와 어딘가 닮아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상황 자체가 당황스럽고 찝찝한 일이지만 설상가상 다른 사람의 말들을 통해 맞춰 본 본인의 행적이 전혀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의심스럽지만 부정할 수 없다는 것, 묘한 죄책감과 함께 자기 혐오가 극에 달할 수 밖에 없다. 끝을 향해 갈수록 그녀의 아픔과 상실감, 두려움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면서 망각의 공포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살인 사건 자체보다도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본인 자신을- 심리적으로 고립된 공포가 극대화되어 다가온다.

인생이란 너무나 얄궃고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인연이 닿기도 하고 일상에서 는 가당치도 않았던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다. 아주 드라마틱하게 갑자기. 이 책 속에는 이러한 묘미가 아주 사실적으로 담겨져 있다. 우리의 지루하고 평범한 삶이 끔찍하지만 특별한(?) 사건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 책 속에 빠져있는 동안 지하철, 혹은 버스로 같은 길을 오가며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가닿을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림, 생경함 같은 것이 자라나게 된다. 이것이 매일 시계추같이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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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에 만나요
용윤선 지음 / 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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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윤선 작가님의 신작 '13월에 만나요' 를 읽다 보면 어쩐지 현실에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작가님 특유의 몽환적이고 고독하며 우울함이 짙게 배인 이약기 덕분인 것 같다. 글도 글이지만, 제목과 표지를 모든 순간 온 마음이 이끌려 한참을 더듬거렸다.

13월에 만나요.

13월, 13월. 입으로 소리내어 불러보면 어감이 좋다. 어딘가에서 살짝 비틀어진 시공간 속에서 실재할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이미 그것은 존재하는 것. 어느 새 마음 속은 애타게 바라는 간절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나의 바램 속 13월은 무척 소중하고 특별한 달이다. 누구나 그 특정한 시간을 살아갈 수는 없다. 나의 13월은 간절하게 13월을 맞이하고픈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달이다.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꼭 그 시간을 품고픈 사람들만 걸어갈 수 있다. 13월의 시간에 녹아든다는 것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평범했던 일상과 찰나의 단절을 가져올 것이다. 어쩌면 13월을 지나 보통의 매일로 돌아오면 자신과 세상 사이에는 급격한 혹은 그렇지 않은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의 13월은 아련한 동경의 대상이다. 애타게 그리워 하던 사람, 끝끝내 기다릴 수 밖에 없던 사람,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달이기 때문이다. 애절한 마음과 간절한 염원들이 모여 13월로 이끌고 마침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진 그 시간에 서로가 만나게 된다. 황홀하리만치 애달픈 달이다. 나는 그대를 간절히 소망하기에 언제나 내 모든 것은 언제 열릴지 모를 13월에 가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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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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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는 순간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맥이 풀리기도 하고, 아차 싶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결말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싱겁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녀의 대표작인 '고백' 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긴장감이나 충격적인 반전이 없다.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 나가는 과정을 다룬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사건을 경험한 뒤 남겨진 남자의 담담한 일기같다. 인간적인 유대감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온 한 남자가 유일무이한 친구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인생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나 폐쇄적이고 기묘하게 뒤틀린 감정 묘사들이나 환경 설정이 일본 특유의 색을 띠고 있어 쉽게 공감하기가 힘들다. 고독과 상실의 아픔은 어떤 인간의 삶에나 녹아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임에도 주인공에게 쉽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한계점이다.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만들어지는 작은 분노가 모여 증오로 커져 마침내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살의로 변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그녀의 매력을 충분이 되살리지 못해 안타까운 작품이다. 차라리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 이 번역되었다면 더 좋았을 걸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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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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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나 샤이닝, 미저리 같은 작품들을 떠올리면 스티븐 킹 그는 분명 '공포의 대가'이다. 인간이 지닌 광기와 집착이라던가,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특별한 능력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 동시에 두려움을 자극한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선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음습함이 느껴지는 어둠을 들여다 보는 것은 매우 오싹할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이번 작품 '리바이벌' 에서도 그런 공포와 아슬아슬한 짜릿함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총 550 페이지 중 약 460 페이지까지 읽는 동안 나는 제대로 된 공포를 느끼지 못 했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조금도 스릴이 느껴지지 않아 지루할 지경이었다. 6살 소년 제이미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는 일련의 과정을 다룬 성장 소설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이미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다양한 감정, 그리고 맞딱그리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아주 담담하게 서술되었다. 중간중간 미스테리해 보이는 일들이라던지, 섬세한 감정의 변화는 잘 묘사가 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 기대했던 공포나 스릴러와 같은 요소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마지막 부분에 엄청난 한 방이 있을거라고 내심 위로해보았지만 끝끝내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망자의 세계를 엿보려는 제이컵스의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짧을 뿐더러, 우리가 티비 드라마를 통해 보았던 각종 비밀 실험들에 비하면 꽤나 정상적으로 보이는 범주다. 기껏해야 죽은지 15분이 된 시체에 금속 머리띠를 씌우는 정도였으니까. 제이컵스의 의도나 실험의 후유증으로 사람들이 겪에 된 불행은 기묘한 부분이지만 오싹함을 느끼기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더 혹독하고 참혹한 것 같다. 우리의 일상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를 통제하고 억합하는 인간의 탈을 쓴 개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기만하고 우리를 착취하고 있으며 쉼없이 그들을 위해 움직이기를 강요한다. 결국 제이컵스와 제이미가 엿본 망자의 세계나 작금의 현실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 되려 현실이 더 지옥같은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공포를 안겨주지 못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난 지금 더 우울하고 심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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