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덮는 순간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맥이 풀리기도 하고, 아차 싶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결말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싱겁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녀의 대표작인 '고백' 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긴장감이나 충격적인 반전이 없다.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 나가는 과정을 다룬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사건을 경험한 뒤 남겨진 남자의 담담한 일기같다. 인간적인 유대감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온 한 남자가 유일무이한 친구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인생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나 폐쇄적이고 기묘하게 뒤틀린 감정 묘사들이나 환경 설정이 일본 특유의 색을 띠고 있어 쉽게 공감하기가 힘들다. 고독과 상실의 아픔은 어떤 인간의 삶에나 녹아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임에도 주인공에게 쉽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한계점이다.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만들어지는 작은 분노가 모여 증오로 커져 마침내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살의로 변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그녀의 매력을 충분이 되살리지 못해 안타까운 작품이다. 차라리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 이 번역되었다면 더 좋았을 걸이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