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주목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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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가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 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여섯 권 중 세 번째 책이 발간되었다. 이전에 발표된 '봄에 나는 없었다' 와 '딸은 딸이다' 를 정말 몰입해서 읽었기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나에게는 가독성이 좋지 않았다. 전시 상황이라는 점, 귀족의 권리와 의무와 같은 시대적 배경과 소재들이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여기에 철학, 종교, 정치, 사랑, 우정 등 우리 삶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하다보니 조금은 정신없게 느껴졌다. 정말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인 것 같다가도 너무 구시대적이고 작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도대체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뭐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앞선 두 권이 여성들의 이야기에 포거스가 맞추어져 있어 공감하기가 쉬웠던 반면, 이 책은 마지막 장에 이르기 전까지 어렵고 난해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이토록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하는 놀라움에 소름이 돋게 되는 책 -그래서 별은 네 개 반!- 이다. 정말 애거스 크리스티의 재능에 박수를!!

화자인 휴 노리스는 존 게이브리얼을 이기적이고 형편없는 망나니같은 인물로 기억했었다. 수년이 흐른 후 그가 훌륭한 클레멘트 신부가 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는 당시 이사벨라와 삼각관계에 있었는데 그녀의 죽음을 줄곧 존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해왔던 것이다. 병에 걸려 죽어가던 존은 이사벨라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휴를 부르고 그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은 분명 휴 노리스인데 그가 세인트 루에 머물면서 만난 주변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이다. 많은 부분이 게이브리얼과 이사벨라, 형수 테리사와의 대화로 이루어지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형 로버트, 이사벨라와 함께 세인트 루성을 지키는 세 레이디- 실제로 할머니들이지만-들, 밀리 바트, 카스커레이드 부부.... 등등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들려준다. 노리스가 걸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 모두가 그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으러 오기 때문이다. 그가 좋아서 오는 이들도 있지만, 그가 듣는 일 밖에 할 수 없고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에 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인간들의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에 대한 휴의 생각이 반영되긴 하지만 본질을 꿰뚫어 보는 테리사가 있어 균형감 있는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처음에는 미처 느끼지 못 했지만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소설의 묘미인 것 같다. 현대를 살고 있는 나와 무관해보이고 올드한 사람들이지만 정작 본질은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이고, 내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다. 이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다를 뿐 그 고민을 해결해 나가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들의 모습과 닿아있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똑같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아지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나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오해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존 게이브리얼과 이사벨라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놀랍도록 정직하고 용감했던 이사벨라에게서.

각자가 자신의 디자인을 가졌기 때문에 인생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각자의 디자인이 얽히고......겹치니까. 자신의 디자인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나는 이사벨라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죠. 우리가 이해하지 못 했던 건...... 그녀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단순하기 때문이었어요...... 무서울 정도로 단순했죠. 그녀는 언제나 본질만 생각했어요. -p. 316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누구인지 혼란스럽고.. 여러모로 어려운 책이었지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는 아주 심플한 것이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나니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느끼고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내 삶과 나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왜 제목이 장미와 주목인지 테리사를 통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평탄하게 오래도록 사는 주목 같은 삶, 혹은 상대적으로 짧게 산다하더라도 본인의 욕망에 충실하며 열정적으로 장미같은 삶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안정만을 추구하게 되는 요즘 꼭 생각해보고 넘어가야할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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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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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도 누군가에게 '우아한 거짓말' 을 건네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하게 됩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일 수도 있고, 선의의 거짓말일 수도 있죠.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과연 괜찮은걸까요? 이 책은 화연의 못된 거짓말로부터 시작된 천지에 대한 따돌림이 주요한 사건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밀하게 천지의 주변 인물들을 살펴 보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었죠. 가족들을 안심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짓말들 말입니다. 때로는 가족이 타인보다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 자신이 처한 현 상황을 진실되게 전달할 수가 없죠. 그래서 괜찮은 척, 슬프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행복한 척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혹은 스스로 잘 이겨내겠지 하는 알 수 없는 믿음으로부터 가족들이 보내는 미묘한 싸인을 놓치기도 하지요. 아니, 내가 바쁘고 버겁다는 이유로 눈치를 채면서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지가 딱 그러했습니다. 그녀는 도서관에 가서 우울증과 관련된 책을 빌려 증상을 공부하고 그와 딱 반대되는 행동을 하죠. 우울증이라는 그림자를 감추기 위해서요. 그 그림자가 자신을 삼켜버릴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천지는 그렇게 합니다.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수도 있지만 가족 내에서 그녀에게 씌어진 굴레 '착하고 사려 깊은 딸이자 동생' 역할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된 따돌림에 대해서도 진실되게, 직접적으로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언니는 모든 것이 너무나 간단하고, 엄마는 남편없이 딸 둘을 키워내느라 너무나 지치고 힘드니까요. 아주 넌지시 물어보기만 했죠. 어쩌면 천지에게는 다소 무성의하게 들렸을지도 모를 뻔.한. 대답들 속에서 그녀는 입을 닫아 버립니다. 그 비밀은 천지 안에서 점점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커져버려서 결국 그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게 만들죠. 결국 이 사건의 중심에는 화연과 친구들의 따돌림이 있지만 가족들 역시 천지를 방치했다는 사실로부터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제 가족이 떠오르더군요. 다행히 천지와 같은 선택을 했던 사람은 없지만 혹시 나도 어렵게 내민 손을 무심결에 내쳐버린 것은 아닌지.. 우리 가족도 혹시 우아한 거짓말로 포장된 역할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 잘 될거야, 다 괜찮아질거야, 넌 이겨낼 수 있어' 와 같은 따스함을 가장한 무심한 말보다는 진심이 담긴 평범한 안부 인사한 마디가 얼마나 더 큰 위로로 다가올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천지의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 이후 가족들과 친구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로지 짤막하게 등장하는 천지의 독백을 통해서만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돌림 안에서 발생하는 피해, 가해 학생들의 심리나 상황 묘사가 탁월합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자, 따돌림을 선동하는 자, 그 선동에 따르는 자, 모른 척 방관하는 자.. 등의 다양한 역할과 천지의 죽음 이후 그들이 나눠갖는 책임감의 정도와 행동 양식이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집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따돌림은 피해자로 하여금 씻을 수 없는 상처,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하지만 소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따돌림은 일반적인 따돌림에 비해 더 은밀하고 복잡하게 이루어집니다.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혹하고 잔인합니다. 신체를 구타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죠. 소녀들은 간.접.적.으로 힘을 행사하여 목표 학생이 독방에 감금당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죽음을 당하도록 처벌합니다. 그러한 면에서 화연과 천지의 예가 가장 정확한 상황일 것입니다. 그룹 내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을 조종하는 법, 공개적인 싸움 없이 우두머리가 되는 법, 침묵과 대화를 무기화하는 법, 영리한 전략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 섬뜩한 기술들은 모두 화연이 사용하는 기술이지요. 오랜 세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가 적대감을 느끼는 여자에게 행하는 기술들이기도 합니다. 화연은사실에 거짓을 섞어 진짜처럼 꾸며낸 이야기를 통해 천지를 이상한 아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바깥 세상 어른들이 보기에 둘은 단짝 친구이지요. 심지어 언니인 만지조차도 속아 넘어갈 정도잖아요. 바로 이렇게 소녀들의 공격성향과 경쟁은 모두 비밀리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해 학생이 감당해야하는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누구에게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겠어요. 작가는 이렇게 고립되고 궁지에 몰린 천지의 심정과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따돌림의 잔혹성과 심각성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 역시 보이지 않는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이 일의 발단인 화연만의 문제일까요? 책을 읽다보면 화연의 악랄함과 영악함에 몸서리치게 놀랍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화연의 행동 또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면서 그녀에 대한 연민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녀 역시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 한 불우한 소녀거든요. 부모님과의 관계부터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 했기때문에 그녀는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모릅니다. 돈으로 친구들의 환심을 사고 그 아이들 앞에서 천지를 모두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얕은 유대감이라도 가지려고 하는 소녀입니다. 전형적인 애정결핍인 학생이죠. 어린이집 시절부터 그녀의 이상 행동이 끊임없이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바쁘다는 핑계로, 어린 아이의 치기어린 장난쯤으로 치부하고 안일하게 무시해버리지요. 결국 아이에게 교묘함과 조심성까지 더해지면서 어른들은 눈치챌 수 없는 잔인한 게임을 벌이는 무시무시한 소녀로 자라게 됩니다. 화연의 부모님께서 좀 더 어린 시절 그녀의 외로움을 보듬어 주었다면, 올바른 관계 맺기를 알려주었다면 화연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천지가 떠나고 외로움에 몸서리 치는 것도, 죽음의 모든 책임을 떠앉고 왕따가 된 것도 어린 화연이 짊어지기엔 무거운 짐이 아닐까요. 작가는 따돌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바람직한 가족 간 소통의 부재를 더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알아서 잘 해내겠지' 와 같은 안일한 믿음 대신 '잘 지내니' 라고 진심으로 물어봐 주어야 합니다. 이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형식적인 안부만 확인하기 보다는 마음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작게나마 열어 놓는 것.. 그러한 여유와 배려가 가족 간의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진심을 담아 묻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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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 영화심리학자 심영섭의 마음 에세이
심영섭 글.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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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 이 이름은 영화 평론상 수상 당시 그녀가 스스로 지은 이름으로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했다' 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이름에 걸맞게 2003년 국내에 처음으로 힐링 시네마 개념과 영화 치료, 사진 치료를 소개하여 이 기법이 다양한 상담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녀의 이런 경험과 지식이 오롯이 담겨 있다. 20년간 그녀를 찾아온 내담자들의 고민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27가지를 골라 따듯한 위로와 함께 그녀 나름의 해답을 들려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글로만 읽는다면 추상적이고 막연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를 감정적인 문제들을 영화 속 주인공들을 통해 더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도 듣도 못한 예술 영화라던가, 모호한 메시지를 담은 어려운 영화들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 받았던 영화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더 쉽고 명료하게 각각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갈등과 내면의 문제점들을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이 품었던 감정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이 영화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삶의 문제들, 부정적인 감정들 또한 나 혼자만경험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외도를 상상해 본다. 타인에게 죽이고 싶을 만큼의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나보다 잘난 누군가를 보면서 질투와 열등감 때문에 깊은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혹은 갑작스레 퍼지는 고독감이 몸서리 치게 끔직해서 쉽게 사랑을 허락하고 때로는 그 사랑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은 존재이기에 타인의 시선과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미쳐버릴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일들이 너와 내가 직면하고 고민하는 문제들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고 남들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은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녀는 꼭꼭 가슴 깊이 숨기고 있었지만 분명히 나를 옥죄고 있는 고민들과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하게끔 해준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것들임을 일깨워주면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정적인 감정들 때문에 위축되고, 스스로 펌하했던 내 자신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건강한 자의식이 조금씩 자라나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그녀가 인간과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따스한 시선과 관대함이 느껴지는 이해심때문일 것이다. 책 속에 담겨진 그녀의 해법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옳.은.답이 아니라 그녀의 경험을 통해 제시하는 진.솔.한.답이기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많은 부분에서 그러한 진솔함을 느꼈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놀랐다. 금지된 사랑에 빠져들고,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조언. 

"전부를 걸겠는가? 당신의 인생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이 대답에 '그렇다' 라고 결단코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심장이 시키는대로 하라.

피상적인 자기 계발서나 심리 서적과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이다. 세상의 여느 사람들이 말하듯 그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고 다른 이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으니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녀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랑이란 욕망의 승화' 라는 라깡의 말을 들어 사랑의 욕망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사랑이 정말 내 인생과 나를 저버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할만큼 간절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 사랑하는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누군가의 연인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면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보다는 '나느 지금 여기서 무엇을 더 원하는가' 를 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도망쳐 또 다른 경험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그 열망때문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그 열망이야 말로 인간인 우리가 알 수 없는 경험에 자신을 내어놓는 유일한 이유가 아니겠냐는 그녀의 말이 참 고맙다. 비난 보다는 공감과 이해를, 쓰디 쓴 조언보다는 따스한 권유를 하고 있는 그녀가 든든한 버팀목처럼 느껴진다. 많은 내담자들이 그녀를 찾아가 무수한 고민을 털어놓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생의 무수한 고통들, 감정의 극한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위와 같은 조언은 해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제시하는 사진과 글들과 영화가 더욱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꽤 명쾌하고 상냥한 답변과 든든한 지지를 내어주는 그녀의 따스한 글이 내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지금, 여기, 하나뿐인 나이기에.. 다시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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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
임자헌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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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유쾌하고 발랄하다. 그 안에 진중한 삶에 대한 철학과 가르침이 있다. 구구절절 옳은 말, 바른 말, 어려운 말을 늘어 놓으며 머리 아픈 이야기를 쓴 책이 아니다. 작가가 몸소 체험한 일화들, 작가의 생각과 함께 그에 걸맞는 고문이 아주 적절하게 버무러져 있다. 상큼하고 웃음 나는 작가의 이야기와 촌철살인과 같은 옛 성인들의 한 마디!!

 

책은 전체 6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논어'에서는 인생에 서툴렀던 그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다룬이야기이다. 그녀가 우정과 사랑과 삶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으며,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맹자'에선 솔직하게 털어놓은 저자와 지인의 연애담이 주를 이룬다. 짝사랑 전문가였던 그녀의 실패담을 통해 연애를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 사랑을 하면서 지켜야 할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공자와 더불어 유학의 큰 성인인 맹자의 말씀을 담은 책을 통해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도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선한지!!

'대학, 중용'은 좀 더 진지하고 세밀하게 그녀가 어린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며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를 책망하기에 바쁜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준다. 왜 1등이 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자신을 이리저리 맞춰가며 자신이 재능이나 소질이 없음만을 탓하며 나를 깎아내리고 한계를 규정짓고 있지 않은지 다시금 생각해게 해준다. 우리가 별 것 아니라고만 여겼기 때문에 멜로디언, 실로폰, 리코더와 같은 평범한 악기가 지닌 매혹적인 소리를 간과한 것이 아닌지.. 그녀가 묻는다. 우리가 다룰 줄을 모를 뿐 그것 역시 버젓한 악기임을 잊지 않았느냐고.

 

"나는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까? 화려함 말고, 내가 지니고 있으나 나조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래서 내게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내 진짜 멋들어진 소리는 무엇일까?" -p. 135

 

나도 들어본 적 없는 나의 깊은 소리를 위해, 나의 진짜 소리를 위해 한 번 더 독하게 흔들려도 좋지 않겠느냐는 그녀의 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보다는 안정을 택하고, 꿈을 쫓는 사람을 철이 덜 들고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한 번 뿐인데 나답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지도 않고 나는 재능이 없으니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저 유명인처럼 대단하지 않으니까 라는 이유를 들어가며 스스로를 세상과 타협시키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삶에는 1등이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한데 우리는 줄서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스스로가 몇 등쯤 되니까 라며 더 달릴까 말까를 고민한다. 사실 늘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1등 보다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가고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고, 1등 보다 더 넓고 깊게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데 말이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혹은 흥미를 잃고 그만둬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끈기있게 버티며 자신을 갈고 닦은 누군가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법이다. 사람은 시간 안에서 성장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그녀가 참 강직하게 느껴진다.

 

"떠나지만 않으면 된다. 흐르는 시간에 내 걸음을 두기만 하면 된다. 힘이 될 땐 애도 좀 써 보고 힘이 부칠 땐 졸고 쉬기도 하면서. 그러나 떠나지만 않으면, 버리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무얼 하겠단 욕망에만 걸려들지 않으면 공부는 참 즐거운 일이다." -p.144

 

'시경'에선 아름다운 옛 노래에서 건져 올린 감성과 울림을 만날 수 있다. 공자 시대 이전에 쓰여진 시임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메시지들이 담겨져 있다. 위트가 넘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시들이 그녀의 재미난 일화들과 어우러져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린다. 그 와중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마주하게 되는 열등감과 질투와 같은 감정들을 마주했을 때 대처하는 자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보다 재능 있는 사람, 유능한 사람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우리의 결여는 더욱 크게 다가오게 마련이고 이것은 스스로를 좀 먹는 일이다. 결여는 결여일뿐, 그것을 욕심내는 것은 본인을 지치게 하고 조바심을 내다 결국엔 위축되게 만든다.

 

"인간은 어차피 한 사람이 모든 걸 가질 수도 없고, 다 가진 사람이 있다 해도 그 한 명이 인류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p. 184

 

"결여의 이면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재능을 발견하는 일,실력을 쌓는 일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p. 187

 

뒤집어 보면 유능한 누군가의 그 실력은 나에게 결여 대신에 채워진 다른 능력에 대한, 또 다른 것의 결여이기도 한 것이다. 빛과 그늘은 함께인 것처럼 내 안에 결여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그녀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겨둘 일이다. 자신감을 잃고 자꾸만 남과 비교하게 될 때, 결여만을 쫓다가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정작 잃어버리게 될 때, 항상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경계해야겠다.


'서경'은 '나답게 사는 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공자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정치서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하고 개성 넘치는 존재로 나를 인정하는 방법, 내적 성숙을 위한 노력들, 삶의 중요한 가치 탐색에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어 마지막 장은 사서삼경 외에 장자, 사기, 소학 등 인생에서 흔들릴 때마다 유용하게 느껴질 한 마디를 소개한다.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유쾌한 저자의 일화들, 질풍노도20대의 우울함과 방황을 이겨낸 이야기를 따라가며 고전의 재미에 더욱 푹 빠져들게 해준다.

 

이 책은 두고두고 읽기에 참 좋은 책이다. 적당히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책이라 집어들기 쉽고 현세에 까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귀한 말씀들을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다. 우울할 때 꺼내 읽으면 저자의 경험담이 너무 재밌어서 좋고, 사람 사이에서 마음이 아프고 사는게 힘들어질 때 그 과정을 꿋꿋하게 버텨 온 그녀가 건내는 위로가 따스해서 좋고. 특히나 그녀의 유쾌 상쾌한 삶의 방식이 나에게 전염되는 것 같아서 책을 읽는 내내 즐겁다. 그녀가 삶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4차원처럼 엉뚱하지만 또 응당 그것이 더 타당해 보여서 세상살이에 꽉 막힌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 같다.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끔 그녀의 이야기는 매력적이고 현.실.적이다. 그저 좋은 말을 주욱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녀가 직접 부딪히며 배워온 것들을 일기처럼 담담하게,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이니까.

 

덧. 아직도 솔로이신지 모르겠으나 주변의 남성분들은 뭐하나!! 이렇게 매력적인 처자를 옆에 두고 홀로 있게 하다니.. 참 보는 눈이 없는건지, 아님 그녀의 당참에 용기를 못 내는건지.. 아 정말 매력적인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강의가 진심, 꼭 듣고 싶다. 대체 어디서 하고 있는지..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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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저수지 근처에서 파란 천막에 꽁꽁 쌓인 남자 변사체가 발견된다. 잔혹한 살해 방법때문에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초점이 맞추어지지만 이 책의 주인공 여형사 히메카와 레이코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사건임을 감지한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9구의 시체가 추가적으로 발생하게 되고 이들의 연결고리가 '스트로베리 나이트' 라는 웹사이트임이 밝혀진다. 매월 둘째 일요일에 열리는 라이브 살인쇼.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운명의 갈림길이 된다. 납치를 당해 무대 위로 올라가 살인 쇼의 제물이 될지, 아래로 가 관객으로 남게 될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인 사람들은 자신이 제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은 한 달간 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우월함, 그 쾌감을 잊지 못해 반복적으로 그 쇼를 찾게 된다. 자기 삶이 잔혹한 죽음과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실감하는 그런 충족감을 느끼며 남은 한 달은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마약같은 쇼. 실제로 존재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느낌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세상살이가 험악해지고 각박해지면서 일탈을 즐기고, 삶의 극한을 체험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에 더 극단적이고 괴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인다. 심지어 죽음을 동반한 사건 사고 뉴스들을 매일 접하면서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 저렇게 되지 않아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책 속의 쇼에 참가한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클릭 한 번으로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길로 들어섰을 뿐.

 

이러한 사실적이지만 혐오스러운 살인 쇼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넘어 다른 추리소설들과 구별되게 해주는 이 책만의 매력은 바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이다. 천성적인 프로파일링 능력을 타고난 감이 좋은 여형사 레이코. 그녀는 젊은 나이에 경위 직책을 달 정도로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나고 여느 남자 형사들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끈기를 보여준다. 범죄자와 비슷한 사고회로를 가졌기 때문에 직관과 형사의 감에 따라 수사를 급속도로 진척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여기에 그녀가 고등학교 때 겪었던 범죄와 사타 형사를 통한 극복 과정이 버무러져 그녀의 현재 심리상태와 행동 양식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이에 반하는 캐릭터가 칸테스 -칸코잇테스의 줄임말. 끈질기고 완고함.- 카쓰마타 주임이다. 레이코와 달리 정확한 정보와 증거에 의거하여 수사를 진행한다. 경찰의 내부 정보를 팔아 뒷돈을 만들어 다시 수사상의 뇌몰, 매수로 이용하는 형사다. 사사건건 레이코를 괴롭히고 속물근성을 보일 때마다 밉상이지만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다만 표현이 서투른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감이 간다. 이 두 사람을 주축으로 한 수사 경쟁 이외에도 레이코 형사와 키쿠타, 이오카 사이의 삼각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과묵하고 쑥맥인 키쿠타와 적극적이고 능글맞은 이오카 형사 두 사람이 레이코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극의 재미를 더하며 다음 소설들에서 러브라인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처럼 캐릭터들 사이에서 그려지는 형사들의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성격이 이야기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한층 더 높여준다. 

 

이 책은 경찰 소설이라고 불릴 만큼 한 마리 늑대와 같은 살인범 수사계 형사들의 독자적인 수사 진행 방식과 실제 초동수사, 탐문수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것이 극의 사실성을 높여 주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특히 일본 경찰 조직과 수사 본부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함께 경찰 조직 내의 인간관계, 실적 경쟁, 끈끈한 동료애 등이 잘 표현되어 있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일본에서 드라마가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고 하는데 탄탄한 사건의 구성,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생각해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연작 시리즈 소울케이지, 시머트리, 인비저블 레인, 감염유희, 블루머더 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로 나를 흥분시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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