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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ㅣ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저수지 근처에서 파란 천막에 꽁꽁 쌓인 남자 변사체가 발견된다. 잔혹한 살해 방법때문에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초점이 맞추어지지만 이 책의 주인공 여형사 히메카와 레이코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사건임을 감지한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9구의 시체가 추가적으로 발생하게 되고 이들의 연결고리가 '스트로베리 나이트' 라는 웹사이트임이 밝혀진다. 매월 둘째 일요일에 열리는 라이브 살인쇼.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운명의 갈림길이 된다. 납치를 당해 무대 위로 올라가 살인 쇼의 제물이 될지, 아래로 가 관객으로 남게 될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인 사람들은 자신이 제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은 한 달간 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우월함, 그 쾌감을 잊지 못해 반복적으로 그 쇼를 찾게 된다. 자기 삶이 잔혹한 죽음과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실감하는 그런 충족감을 느끼며 남은 한 달은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마약같은 쇼. 실제로 존재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느낌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세상살이가 험악해지고 각박해지면서 일탈을 즐기고, 삶의 극한을 체험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에 더 극단적이고 괴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인다. 심지어 죽음을 동반한 사건 사고 뉴스들을 매일 접하면서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 저렇게 되지 않아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책 속의 쇼에 참가한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클릭 한 번으로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길로 들어섰을 뿐.
이러한 사실적이지만 혐오스러운 살인 쇼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넘어 다른 추리소설들과 구별되게 해주는 이 책만의 매력은 바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이다. 천성적인 프로파일링 능력을 타고난 감이 좋은 여형사 레이코. 그녀는 젊은 나이에 경위 직책을 달 정도로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나고 여느 남자 형사들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끈기를 보여준다. 범죄자와 비슷한 사고회로를 가졌기 때문에 직관과 형사의 감에 따라 수사를 급속도로 진척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여기에 그녀가 고등학교 때 겪었던 범죄와 사타 형사를 통한 극복 과정이 버무러져 그녀의 현재 심리상태와 행동 양식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이에 반하는 캐릭터가 칸테스 -칸코잇테스의 줄임말. 끈질기고 완고함.- 카쓰마타 주임이다. 레이코와 달리 정확한 정보와 증거에 의거하여 수사를 진행한다. 경찰의 내부 정보를 팔아 뒷돈을 만들어 다시 수사상의 뇌몰, 매수로 이용하는 형사다. 사사건건 레이코를 괴롭히고 속물근성을 보일 때마다 밉상이지만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다만 표현이 서투른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감이 간다. 이 두 사람을 주축으로 한 수사 경쟁 이외에도 레이코 형사와 키쿠타, 이오카 사이의 삼각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과묵하고 쑥맥인 키쿠타와 적극적이고 능글맞은 이오카 형사 두 사람이 레이코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극의 재미를 더하며 다음 소설들에서 러브라인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처럼 캐릭터들 사이에서 그려지는 형사들의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성격이 이야기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한층 더 높여준다.
이 책은 경찰 소설이라고 불릴 만큼 한 마리 늑대와 같은 살인범 수사계 형사들의 독자적인 수사 진행 방식과 실제 초동수사, 탐문수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것이 극의 사실성을 높여 주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특히 일본 경찰 조직과 수사 본부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함께 경찰 조직 내의 인간관계, 실적 경쟁, 끈끈한 동료애 등이 잘 표현되어 있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일본에서 드라마가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고 하는데 탄탄한 사건의 구성,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생각해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연작 시리즈 소울케이지, 시머트리, 인비저블 레인, 감염유희, 블루머더 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로 나를 흥분시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