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 영화심리학자 심영섭의 마음 에세이
심영섭 글.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 평론가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 이 이름은 영화 평론상 수상 당시 그녀가 스스로 지은 이름으로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했다' 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이름에 걸맞게 2003년 국내에 처음으로 힐링 시네마 개념과 영화 치료, 사진 치료를 소개하여 이 기법이 다양한 상담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녀의 이런 경험과 지식이 오롯이 담겨 있다. 20년간 그녀를 찾아온 내담자들의 고민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27가지를 골라 따듯한 위로와 함께 그녀 나름의 해답을 들려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글로만 읽는다면 추상적이고 막연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를 감정적인 문제들을 영화 속 주인공들을 통해 더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도 듣도 못한 예술 영화라던가, 모호한 메시지를 담은 어려운 영화들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 받았던 영화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더 쉽고 명료하게 각각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갈등과 내면의 문제점들을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이 품었던 감정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이 영화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삶의 문제들, 부정적인 감정들 또한 나 혼자만경험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외도를 상상해 본다. 타인에게 죽이고 싶을 만큼의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나보다 잘난 누군가를 보면서 질투와 열등감 때문에 깊은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혹은 갑작스레 퍼지는 고독감이 몸서리 치게 끔직해서 쉽게 사랑을 허락하고 때로는 그 사랑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은 존재이기에 타인의 시선과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미쳐버릴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일들이 너와 내가 직면하고 고민하는 문제들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고 남들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은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녀는 꼭꼭 가슴 깊이 숨기고 있었지만 분명히 나를 옥죄고 있는 고민들과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하게끔 해준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것들임을 일깨워주면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정적인 감정들 때문에 위축되고, 스스로 펌하했던 내 자신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건강한 자의식이 조금씩 자라나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그녀가 인간과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따스한 시선과 관대함이 느껴지는 이해심때문일 것이다. 책 속에 담겨진 그녀의 해법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옳.은.답이 아니라 그녀의 경험을 통해 제시하는 진.솔.한.답이기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많은 부분에서 그러한 진솔함을 느꼈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놀랐다. 금지된 사랑에 빠져들고,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조언.
"전부를 걸겠는가? 당신의 인생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이 대답에 '그렇다' 라고 결단코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심장이 시키는대로 하라.
피상적인 자기 계발서나 심리 서적과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이다. 세상의 여느 사람들이 말하듯 그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고 다른 이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으니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녀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랑이란 욕망의 승화' 라는 라깡의 말을 들어 사랑의 욕망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사랑이 정말 내 인생과 나를 저버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할만큼 간절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 사랑하는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누군가의 연인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면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보다는 '나느 지금 여기서 무엇을 더 원하는가' 를 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도망쳐 또 다른 경험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그 열망때문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그 열망이야 말로 인간인 우리가 알 수 없는 경험에 자신을 내어놓는 유일한 이유가 아니겠냐는 그녀의 말이 참 고맙다. 비난 보다는 공감과 이해를, 쓰디 쓴 조언보다는 따스한 권유를 하고 있는 그녀가 든든한 버팀목처럼 느껴진다. 많은 내담자들이 그녀를 찾아가 무수한 고민을 털어놓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생의 무수한 고통들, 감정의 극한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위와 같은 조언은 해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제시하는 사진과 글들과 영화가 더욱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꽤 명쾌하고 상냥한 답변과 든든한 지지를 내어주는 그녀의 따스한 글이 내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지금, 여기, 하나뿐인 나이기에.. 다시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