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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주목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아가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 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여섯 권 중 세 번째 책이 발간되었다. 이전에 발표된 '봄에 나는 없었다' 와 '딸은 딸이다' 를 정말 몰입해서 읽었기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나에게는 가독성이 좋지 않았다. 전시 상황이라는 점, 귀족의 권리와 의무와 같은 시대적 배경과 소재들이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여기에 철학, 종교, 정치, 사랑, 우정 등 우리 삶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하다보니 조금은 정신없게 느껴졌다. 정말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인 것 같다가도 너무 구시대적이고 작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도대체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뭐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앞선 두 권이 여성들의 이야기에 포거스가 맞추어져 있어 공감하기가 쉬웠던 반면, 이 책은 마지막 장에 이르기 전까지 어렵고 난해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이토록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하는 놀라움에 소름이 돋게 되는 책 -그래서 별은 네 개 반!- 이다. 정말 애거스 크리스티의 재능에 박수를!!
화자인 휴 노리스는 존 게이브리얼을 이기적이고 형편없는 망나니같은 인물로 기억했었다. 수년이 흐른 후 그가 훌륭한 클레멘트 신부가 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는 당시 이사벨라와 삼각관계에 있었는데 그녀의 죽음을 줄곧 존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해왔던 것이다. 병에 걸려 죽어가던 존은 이사벨라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휴를 부르고 그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은 분명 휴 노리스인데 그가 세인트 루에 머물면서 만난 주변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이다. 많은 부분이 게이브리얼과 이사벨라, 형수 테리사와의 대화로 이루어지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형 로버트, 이사벨라와 함께 세인트 루성을 지키는 세 레이디- 실제로 할머니들이지만-들, 밀리 바트, 카스커레이드 부부.... 등등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들려준다. 노리스가 걸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 모두가 그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으러 오기 때문이다. 그가 좋아서 오는 이들도 있지만, 그가 듣는 일 밖에 할 수 없고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에 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인간들의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에 대한 휴의 생각이 반영되긴 하지만 본질을 꿰뚫어 보는 테리사가 있어 균형감 있는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처음에는 미처 느끼지 못 했지만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소설의 묘미인 것 같다. 현대를 살고 있는 나와 무관해보이고 올드한 사람들이지만 정작 본질은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이고, 내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다. 이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다를 뿐 그 고민을 해결해 나가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들의 모습과 닿아있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똑같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아지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나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오해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존 게이브리얼과 이사벨라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놀랍도록 정직하고 용감했던 이사벨라에게서.
각자가 자신의 디자인을 가졌기 때문에 인생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각자의 디자인이 얽히고......겹치니까. 자신의 디자인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나는 이사벨라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죠. 우리가 이해하지 못 했던 건...... 그녀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단순하기 때문이었어요...... 무서울 정도로 단순했죠. 그녀는 언제나 본질만 생각했어요. -p. 316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누구인지 혼란스럽고.. 여러모로 어려운 책이었지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는 아주 심플한 것이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나니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느끼고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내 삶과 나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왜 제목이 장미와 주목인지 테리사를 통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평탄하게 오래도록 사는 주목 같은 삶, 혹은 상대적으로 짧게 산다하더라도 본인의 욕망에 충실하며 열정적으로 장미같은 삶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안정만을 추구하게 되는 요즘 꼭 생각해보고 넘어가야할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