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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나는 공지영 작가님의 소설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 자체를 거의 읽질 않았다. 작가의 의해 창조된 세계와 주인공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는가.. 하는 의문이 컸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 거짓말 혹은 상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읽지 않았다니 지금으로선 믿기질 않는다. 어떠한 이유로 자리잡게 된 고정관념인지 모르지만 참 편협하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공지영 작가님의 책은 에세이로만 접해봤다. 특히 지리산 학교 이야기와 딸에게 전하는 편지글이 인상적이었다. 풍파를 많이 겪은 그녀가 담담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와 행복해지기 위한 조언들을 전해주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소개해주는 것이 정말 멋지게 느껴졌다. 엄마와 딸이 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여느 모녀 사이와는 달라 보였달까.
이번 책 역시 딸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이 쓰여있는데 전작과 다른 점이라면 책 대신 그녀만의 간단한 요리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이런 날에는 이런 음식을 해먹는 것이 어떨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더이상 어린 딸이 아닌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은 딸에게 해주는 조언이라 지금의 나에게는 더 와닿는 것 같다. 역시 여자는 먹으면서 위로를 받고, 기쁨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푼다는 점에서 공감이 가기도 하고. 단정하게 느껴지는 간결한 그녀의 문장들 속에서 딸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가끔은 단호하게 세상 살이에 대한 우리의 착각에 대해 쓴소리를 들려주지만 우리의 서투름 마저 하나의 과정임을 끊임없이 인지시켜 준다. 어쩜 이렇게 듣고 싶었던 말들만 쏙쏙쏙 골라서 위로를 해주시는지. 위녕이 궁금해하는 질문들도 결국 내가 성인이 되면서 끊임없이 상처받고 고민해 오면서도 답을 찾지 못 했던 -혹은 스스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정말 사려 깊고 인내심 강한 새엄마가 생긴 느낌이다!!! 작가님의 결혼 생활을 생각해 보면, 분명 자식들에게는 충격적이고 힘겨운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이런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위녕이 정말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나도 우리 엄마를 떠올려 본다. 20살 때부터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얼굴만 마주치면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 같긴 하다. 나는 애교 많은 딸도 아니거니와 우리는 생각보다 닮은 구석이 너무 없어서 엄마가 별로 내 고민들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질 않았다. 설령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해도 엄마 역시 걱정이 앞선 나머지 늘 따스한 조언보다는 잔소리가 먼저였던 것 같다. 혹은 너무나 긍정적이고 소녀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시거나. 어느 쪽이건 간에 결국 자연스럽게 싸움으로 이어지고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는 종료되기 일쑤였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가 너무 잘못했었다. 사실 엄마가 해주는 말이나 공지영 작가님의 글이나 똑같은 내용인데, 왜 그렇게 무시하고 흘려 듣고 말았는지. 되려 소녀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엄마가 나보다 훨씬 강한 정신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엄마가 좋은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일 자체를 막아 놓고 위녕을 부러워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그래도 확실히 말보다는 글이 나은 것 같다. 엄마가 그 순간을 참지 못 하고 화가 나서 감정적으로 쏘아대는 일 없이 좋은 내용을 추려서 차분히 들려줄 수 있을테니까. 요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담아 편지를 보내볼까, 아니면 엄마의 소녀 감성을 충족시켜줄 좋은 곳에 가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워볼까?! 책 속에 담긴 레시피를 가지고 요리를 해서 엄마를 대접해 봐도 좋을 것 같다. 평생을 살면서 필연적인 모녀지간의 싸움을 피할 순 없겠지만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의지하는 다정한 친구 사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내가 먼저 노력한다면! 당장 오늘부터, 엄마가 좋아하는 와인과 함께 우아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어떤 삶의 지혜들을 들려주실지 귀를 기울여야지.
오늘부터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과 내가 희망하는 모습 사이의 괴리에 대해 성찰해 보는 것은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긴 인생동안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무의미한 삶, 무언가 결핍된 느낌 속에 빠져 고독한 삶을 살게 될테니까. 이런 상황에 기적이라던가, 행운같은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겠지. 더불어 침묵하고 감사하는 법를 익히리라. 내면의 침묵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온갖 감정의 휘둘림을 막아주고 결국 우리를 자유로 이끌어 준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함으로써 얻어지는 자부심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바로 이 순간을, 내가 있는 이 곳을!" 소중히 여겨야 겠다. 나의 실패와 시련들 때문에 슬픔에 잠셔 삶을 비관하는 날은 이제 그만!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며 훗날의 성숙한 나를 위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해 보련다. 그래, 삶이 공평하지 않음을, 평화롭고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다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 했던 삶의 이면에 존재하는 신비를 맞아하게 될 것이라 믿자. 잊지 말자.
지금, 여기, 나 자신 그리고 사랑하며 감사하기
우리가 회피하고, 무시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바로 그것이 실은 우리가 진정 풀어야 할 숙제이고 넘어야 할 언덕이며 결국은 우리를 진정으로 성장시켜주는 열쇠임을 말이야. -p. 18-19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평생을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성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는 없어. 그러나 10분은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다. 그래, 그 10분들이 바로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첫 번째 걸음이고 그것이 수억 개 모인 게 인생이야. 그러니 그냥 그렇게 지금을 살면 되는 것. -p. 27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은 음식이든. -p. 30
우리가 성장했다는 표시 중 하나가 바로 그거야. `그래서` 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p. 47
신비하게도 늘 베풀어주던 모든 A는 늘 받기만 하던 모든 B에게 배신당한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무엇이라고 하는지 모르나 나는 그것을 `굴욕으로부터의 비뚤어진 탈출` 이라고 불러. 늘 받던 B들은 늘 주는 A에게 그토록 원하는 것을 받으면서 마음 속의 분노를 더 키워간다는 거야. 왜냐하면 B가 A에게 그토록 필요한 것들을 받을 때마다 B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자신을 직시하게 되니까. 횟수가 거듭되면 감사보다 굴욕을 느끼기가 훨씬 쉬우니까. -p. 107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개한 우리의 표상이다. @안젤름 그륀 신부님 -p. 117
네가 어떤 것에 대해 가지는 느낌이 참이라면 그것은 일제히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해. 그러나 가난을, 그런 학벌을 그리 불행해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p. 117
역시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질리지 않는 것 같아. 엌저면 사람도, 어쩌면 관계도, 마지막으로 삶조차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좋다든가, 그냥 아껴주고 싶다든가 하는 그런....... -p. 121
남자는 변하지 않으며 변할 생각도 없다. 더더군다나 여자에 의해 변하고 싶은 마음을 먹느니 고릴라들과 동거하는 것을 배우러 정글로 들어갈 거라는 거다. 만일 여자에 의해 변할 생각이 있었다면 이미 자신의 엄마에게 잘 변해 네게로 왔겠지. -p. 128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사실과 사실 아닌 것, 사실과 망상, 사실과 집착, 사실과 환영 사이를 구분하게 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모든 현상 속에서 사실을 골라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p. 180
"나빠 보이기도 하는 일이 일어나는데요, 그건 좋은 일로 가는 모퉁이일 뿐이니까요." -p. 186
사람은 절대 가지고 있을 때, 편안할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않아. 그래서 고통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길의 모퉁이를 돌게 해주는지도 모르겠다. -p. 203
"밤새 생각해보았는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열쇠가 있었다면 그건 감사였어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내게 남은 것, 내게 아직도 주어지고 있는 것,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자각한 순간 고통은 힘을 잃었어요. 왜냐하면 남은 것이 잃어버린 것보다 훨씬, 아주 훨씬 더 많았거든요." -p. 207
덜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채워내지 못한다. (......) 삶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려고 손을 내미는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손이 없는지도 몰라. -p. 231
네가 우울해하는 데는 수만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딱 한 가지야. 우선 몸을 움직이고 맛있는 것을 먹고(네 몸에 좋은 것, 살도 안 찌는 것 말야) 따뜻하게 너를 감싸는 것. 그리고 좋은 말씀을 읽거나 듣고 밝은 생각을 하는 것. -p. 239-240
우리는 모두 외롭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늘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고 복잡하고 어리석은 길을 돌아 돌아 원래 있어야할 그 쉬운 지점으로 온다. 그리고 어떤 유혹이 있어도 우리가 올바르고 선하게 살면 끝이 좋을 거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단다. 이게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운명의 전부이다, 위녕.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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