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뉴스에도 가슴 아프고 화나는 소식이 들렸다. 여전히다단계 사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몇 천명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화장품 방문판매 업체였는데 사장이 60억원 가량을 챙겨 이미 해외로 도주했다는 소식이었다. 주로 노인들이나 가정 주부들이 피해자들이라고 하던데, 절망적인 심정이 오죽할까?! 아무래도 남아도는 여유돈을 굴리려고 투자한 사람보다 한 푼, 두 푼 아끼고 아껴서 모아뒀던 쌈지돈을 맡겨버린 사람이 더 많을텐데. 하루 아침에 그 돈이 다 사기꾼의 뱃속으로 꿀꺽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게다가 순진하게 좋은 것을 소개시켜 준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지인들을 끌여들인 분들도 많을터.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오랜 세월 지인들과 쌓아온 정만큼, 혹은 그 이상의 원망과 증오로 바뀔 것이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단계 수법은 다양한 방송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지만 끊임없이 이런 류의 사건은 계속 된다. 당한 사람이 바보라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뉴스로 막상 접할 때는 저게 뻔히 다단계인데 왜 속을까 싶지만 몇 다리 건너지 않아도 주변에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언제, 어떻게 내가 혹은 나의 가까운 지인이 빠져들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대체 무엇이 이렇게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악은 과연 전염되는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범인들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악한 그리고 빠른 -두뇌 회전과 악의를 가진 사람부터 순박하고 착한 보통의 소시민들까지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다단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람들을 속여 나가는지, 혹은 어떻게 이러한 그물에 걸려드는 것인지 그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이와 같은 범죄의 심각성과 폐해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좀 더 본질적인 질문 마저 던진다. 과연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의 문제다. 피라미드 아랫쪽에 위치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두 입장에 모두 놓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피해자의 입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법의 심판을 받는 우두머리와 간부 밑에는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에 더 가까운 층이 분명 존재한다.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바닥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착취를 하고 개인적인 이득을 챙긴, 그럼에도 처벌에서 교모하게 피해간 괘씸한 사람들 말이다. 어느 범주까지 죄를 물을 것인지,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의 문제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래도 초반엔 책의 전개가 느린감이 없지 않지만 확실히 미미여사답게 뒷심을 발휘한다. 형사도 탐정도 아닌 스기무라가 사건에 조금씩 접근해 가는 방법도 흥미롭다. 그것이 더디고 답답하게 느껴지기 보단 되려 현실감을 주는 요소인 것 같다. 엄청난 관찰력과 통찰력도 없고, 기가 막힌 우연의 도움없이 정말 개미 근성으로 하나씩 하나씩 정보를 모은다. 마구잡이로 모아진 정보들이 조금씩 얼킨 실타래를 풀듯이 정리되어 하나의 목표점을 팍 찍어낼 때의 쾌감이란! 사실 나의 경우 이번 편은 사건 자체의 반전보다 스기무라 삶의 개인적인 반전이 더 놀라웠다. 전편까지 지나치게 안정되고 행복한 스기무라가 좀 삐딱하게 보여질 때도 있었는데, 전혀 이번 편에서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일어나자 괜히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꼭 행복에 겨운 사람의 불행을 바란 것처럼. 그래도 이번 편의 사건을 계기로 그가 진정한 탐정의 길을 걷게 된다니 기대가 되고 설렌다. 다음 작품에선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얼른 만나고 싶다.


악은 전염된다. 아니, 모든 인간이 마음속에 깊이 숨겨 가지고 있는 악, 말하자면 잠복하고 있는 악을 표면화시키고 악행으로 나타낙 하는 `마이너스의 힘` 은 전염된다고 할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절대 반지` 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대체물이라면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잘못된 신념이고, 욕망이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말이다. -p. 454

어떤 베드로에게나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는 예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에겐 예수 따위 없다, 예수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무서운 것이 전혀 없으리라. (......) 진실은 결코 아름답지는 않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진실이 아니다. 끝나지 않는 거짓 쪽이다. -p. 513


둘 중 하나일 고라고 생각하오, 라고 했다.
"중간이 없는 거요. 텅 비었거나, 꽉 찼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사람을 속일 수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바꾸어 말한다면 그것은 `내가 없다`거나 `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닐까. -p. 6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