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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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한국 사회는 잘못 되었다. 80년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여전히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돈, 학벌, 외모 등으로 계급과 가치가 정해진다. 어쩌면 그 때가 좀 더 신분 상승의 기회가 더 많았던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언감생심 공부 잘 한다고 해서 신분이 상승하는 시기도 지났다. 재력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난 애들이 좋은 대학이나 외국 유학도 가고, 사회의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잡게 된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이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분명 이전 세대만큼 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현 세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투명해진 유리 피라미드 속에서 불가능한 신분상승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현 세대는 이런 계급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한국인의 삶이 답답하고 끔찍해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 계나의 말처럼 본인 계급에 맞는 사람과 결혼해서, 남들처럼 뻔한 삶을 살다가 종국에는 폐지나 줍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할까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꽤 빈번하게 한국에서는 빛나는 미래도 없고 행복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이 책을 주저없이 집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사이다를 마신 듯 속이 좀 뻥 뚫리지 않을까, 통쾌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오늘 소중한 오후 시간에 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덮어버리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주인공 계나의 시니컬한 독백들에 격한 공감을 보내며 읽어내려 갔지만 끝으로 갈수록 어쩐지 그녀의 말들이 비겁하게 들리며 씁쓸해졌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났다는 그녀의 말은 진심일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행복할 수 없지만, 호주에서는 행복해질거라는 그녀의 근거없는 믿음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마치 행복과 꿈을 찾아서, 오로지 그녀의 능력 자체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신세계를 찾아 떠난 것처럼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 우습게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따위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한국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 이국적인 환경에서 자극적인 변화를 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결말을 읽고 나면 이러나 저러나 그녀가 원하던 행복 지수가 높은 삶이란 것은 자아 실현 같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상태를 의미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힘든 호주 생활을 통해 알아낸 것이라고는 본인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하다는 사실 하나다. 쉽게 말하자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노동 대비 여유롭고 유복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한국에 사나, 호주에 사나 대개의 사람들이 누리길 원하는 삶의 모습이다. 그녀가 내심 비웃던 친구나 동생들이 바라는 삶과 도무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고, 안정적인 일을 하면 좋겠고, 돈 잘버는 남편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더 솔직한 것 같다. 그냥 호주 시민권을 따기 위해 회계 공부를 시작했고, 뭔가 대단한 것을 할 것처럼 굴더니만 종국에는 안정적이고 수익이 보장되는 회계사가 되지 않았나. 날라리 같고 무식하다고 은근 깔보던 재인이 요리에 재능을 보이고, 고급 레스토랑에 셰프로 자리잡을 것 같고... 뭐 이래저래 장래성도 보이고 그녀한테 충실하니까 만난 것 같다. (내가 계나를 너무 삐딱하게 보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녀가 친구들과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시어머니나 화사 욕만 늘어놓는 행위를 뛰어 넘어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곳을 향해 과감하게 떠났고, 결국 성취해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다. 그녀도 내심 속으로 비웃던 친구들이나 동생처럼 뻔하디 뻔한 속물이라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 했지만. 계나가 속물이 아니었다면 자유로운 프리라이터 같은 삶을 지향한다거나 본인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길을 찾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적절한 임대업으로 짭짤한 이득을 취하거고, 관심도 흥미도 없던 회계사가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막말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살아도 한국 스타벅스에서 알바나 하는 것보다는 괜찮다고 했으면서, 본인은 왜 그 자유롭고 수입 좋은 웨이트리스 때려치우고 회계사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9시 출근 4시 퇴근에 사무직이고, 안정적이고, 이직 쉽고, 돈 잘 벌어서 그런거 아닌가. 사실 호주에서 영주권 따려고 그렇게 영어 공부하고, 얼렁뚱땅 회계사 석사 학위 받았으면 한국에서도 똑같이 공부해서 회계사가 됐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나고 괘씸하게 느껴진다. 그저 잘 먹고 잘 살고 싶었던 속물적인 그녀의 마음을 '한국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어서' 라며 뭔가 꿈을 꾸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괴로워 하는 젊은이들의 절박한 마음처럼 곱게(?) 포장한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 '이게 현실적인 결말이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국을 떠나 낯선 타향 땅에서 피워보지 못한 꿈과 열정, 그리고 신념 같은 것을 추구하거나 가식적이고 더러운 한국적인(?) 굴레들을 벗어 던지며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이야기를 기대했나 보다. 역시 나는 체제에 순응하기 힘든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가. 이 책을 다 읽고 본 다큐 3일에 나온 서울예전 학생들이 떠오른다. 돌고 돌아서 결국 제자리라고, 다른 곳에 있어보니 더욱 예술을 하고 싶다는 걸 깨알았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이 학생들의 촉촉한 눈망울들을 보며 탁해질대로 탁해진, 어쩌면 탐욕스러워졌을지도 모를 계나의 눈빛을 상상했다. 계나야, 한국에서 못 살겠어서,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국에서는 도무지 행복해질 수 없었다는 너의 비겁한 말은 듣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는 더 가진 것이 없고, 더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 했고, 더 좋은 외모를 가지지 못 했어도 여전히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이야말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란다. 아마도 계나 넌,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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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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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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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오리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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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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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주저하지 않고 집었던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제 사라마구였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카인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자 현세에 존재하는 무수한 카인과 아벨의 뢀모델이다. 그래서 그가 왜 동생을 죽여야 했으며, 삶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여호와로부터 이마에 죄인의 표식을 받았고, 한 곳에 정착하지 못 하고 떠돌아다니는 벌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카인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었을까,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성경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제 사라마구는 구약성서를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발칙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카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특히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것이 여호와의 힘이나 의지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카인은 시간 여행을 다닌다. 이삭과 아브라함을 만나기도 하고 무너진 바벨탑에 가보기도 한다.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 현장도 목격했으며, 사탄으로부터 믿음을 지켜낸 욥을 만났고, 노아와 함께 대방주를 만들기도 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주요한 사건의 목격자이자 중요한 타이밍에 사건에 개입하여 변화를 만들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선한 인물이다. 동생을 죽인 살인자임에도 아이러니하게 그는 보편적인 도덕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고, 본디 악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그려진다. 또한 가장 인간적이기에 여호와에 대한 신뢰와 신앙을 품을 수 없는 사람이자 유일하게 여호화에게 신학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그의 뜻에 반하는 사람이다.
 
그는 여호와의 의지와 행동에 강한 의문과 불만을 품는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임에도 그들의 믿음을시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호와를 믿음에도 가난하고 고통받고 아픈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탄으로 하여금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족 간의 전쟁을 방관하거나 혹은 선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태어난 죄없는 아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 한 죄없는 인간들의 죽음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혹자는 이러한 질문으로 가득한 이 책 자체가 신성모독이이며 불경한 책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아우를 죽이고 죄를 지은 카인이라는 한 인간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모자라 여호와의 불합리함, 부조리함, 불완전함에 대해 꼬집고 있다. 카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호와는 절대적인 선이 아니거니와 자신의 피조물 또한 온전히 품지 못 하는, 어쩌면 양면적인 모습을 지닌 인간과 지나치게 닮은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이다.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 성경책을 읽으며 나도 한 번 이상은 품었던 질문들인지라, 나는 카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간의 관점, 특히 논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구약성서 속에 비쳐지는 여호와의 행동에는 결함이 있다. 결국 구약성서를 만들고, 종교를 체계화시킨 자들이 저지른 비약이자 오류인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믿음없는 자, 그리고 사탄의 놀음에 놀아나는 자들의 허황된 질문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저러한 질문에 대해 누군가 한 번쯤은 설명해주었으면 싶다.  

실제로 이 책은 주제 사라마구의 마지막 저서이다. 죽기 1년여 전에 쓰여진 책이다 보니 종교와 인간과 신, 삶과 죽음, 죄와 벌...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사유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결과는 몹시 염세적이고, 비관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는지 작가의 말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짧지만 강렬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쩐지 신을 지나치게 완전무결한 절대적인 선의 형상으로 만드려고 한 인간들이 잘못한게 아닐까, 인간이 신의 뜻과 의지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삼 종교와 인간에 대해 깊은 의구심이 자라난다. 과연 나는 답을 구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그렇게 올라가는 동안, 여호와가 신뢰할 존재가 아니라는 추가의 증거로,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p. 94




아브라함은 여호와만큼이나 대단한 개자식일뿐 아니라 갈라진 혀로 누구라도 속일 준비가 되어 있는 유능한 거짓말쟁이였는데, 이 경우 이것른 이 이야기의 서술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사전에 따르면 불충하다, 불성실하가, 거짓되다, 의리 없다 등등과 기타 비슷하게 훌륭하기 짝이 없는 자질을 의미한다. -p. 95







여호와의 큰 결함은 질투예요, 자기 자식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질투에 굴복하죠, 누가 행복해지는 걸 못보는 게 분명해요. -p. 140







이것은 바벨의 탑이었으며, 여호와가 자존심때문에 완성을 허락하지 않은 탑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히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 106



전쟁은 정말이지 아주 훌륭한 사업인 게 분명하구나. 어쩌면 가장 좋은 사업인지도 모른다. (...) 이 여호와은 언젠가는 전쟁의 신으로 알려지겠구나, 사실 나는 여호와의 다른 용도를 모르겠다, 카인은 그렇게 생각했고,그의 생각은 옳았다. -p. 129

꼭 사탄이 여호와의 또 다른 도구에 불과한 것처럼 보여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어 하지 않은 더러운 일을 하는 도구 말이예요. -p. 169

카인은 아우를 죽인 자, 카인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목격하려고 태어난 자, 카인은 하나님을 증오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p.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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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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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주인공들, 자칭 라플라스의 악마와 마녀인 겐토와 마토카의 눈에는 단순히 물리 현상뿐만 아니라 인류는 어디로 나아갈지, 이 사회는 어떻게 될지 희미하게나마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측만 할뿐 무엇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 역시 마도카처럼 수술에 자진할 것 같다. 치기어린 과학도의 욕심이겠지만 그들의 눈에는 세계가 어떻게 보일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실 화학자에게도 물리화학이란 영역이 있지만 그 어떤 화학 과목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가장 심플한 가정을 하고 기초적인 방정식을 풀어도 그 과정에 꽤나 길고 복잡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해한 계산을 하며 끙끙 앓지 않더라도 세상의 물리 법칙이 자연스레 읽힌다는 것, 그것은 분명 많은 과학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p. 497


그럼에도 책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겐토와 마도카가 불쌍하단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여전히 그 능력이 탐이 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되고 일반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리고 가능성 많은 아이들에게 빼앗아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법칙들을 슈퍼 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되려 그러한 능력 때문에 그들은 꿈을 잃고 세상에 대한 기대없이 살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마냥 축복이라고 부를 수만은 없다. 말그대로 라플라스의 악마, 혹은 마녀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을테다.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삶이라는 것, 그것은 분명 과학이 부른 참사다. 과학이 가진 어마무시한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과학에게 인문학적인 소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사실 이런 수학이나 물리 천재가 무시무시한 계산 능력을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소재들은 만화책에서도 한 두 번쯤은 다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 뇌과학과 풀리지 않는 미지의 방정식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문 지식이 뒷받침되니 소재의 퀄리티가 다르게 느껴진다. 막연한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거 진짜 실현 가능성이 충분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우리가 미쳐 알고 있지 못 했던 영역들일뿐,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연구기 진행되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오싹함.  이것이 30년 필력의 히가시노의 내공이 아닐런지. 

 

인간의 양육 행동, 남성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부성 행동이라는 것을 봐도 결국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것이예요.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편의상, 사랑 혹은 애정이라고 부르는 것뿐입니다. -p. 452

개개인은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집합체로서 바라볼 경우에는 그 행동을 물리 법칙에 적용해 예측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p. 456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p.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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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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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동영 작가님의 대표작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와 '나만 위로할 것' 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들을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시도- 단순히 친구와 이름이 똑같다는 친근한 이유로- 해 보았지만 도무지 나에겐 와닿지가 않았다. 뭐랄까, 매 문장들이 지나치게 탐미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담백하고 건조한 문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좀 더 솔직해지자면 허세 가득한 글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 땐 포기했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다시 집어들게 만든건 "누구나 살고 싶어서 아프다" 라는 띠지의 문구때문이었다. 아파서 살기 싫단 말은 들어봤어도 살고 싶어서 아프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31세에 불안장애와 우울증 판정을 받은 뒤 36세에 이르러 공황장애, 양극성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김동영 작가. 그는 아산병원에 있는 정신과 의사 김병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지난 7년간 진료실에서 꾸준히 만나왔다. 어쩌면 누구보다 더 김동영 작가에 대해 속속들히 알고 있을 것 같은 김병수님의 처방은 어떠했을까? 사실 누군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지가 되기 마련인데, 나에게 약을 처방해주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존재가 나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다면, 아주 큰 힘이 되어준 존재였을 것이다. 되려 가족, 연인, 절친한 친구보다 더 많이 주고받았을 내밀한 이야기가 엿보고 싶어졌다. 과연... 늘 불안하고 고독하며 긴장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도 그는 안정제가 되어줄 수 있을까.

 

책은 김동영 작가님이 자신의 삶과 병에 대해 느끼는 고통이나 감정들에 대해 적어내려간 글과 그에 대한 김병수님의 답변이나 이야기를 교차식으로 보여준다. 환자와 의사간의 대화보다는 방황하고 아픈 동생과 좀 더 성숙하고 듬직한 형의 대화같이 느껴져 편안하게 읽힌다. 여전히 김동영 작가님의 글은 나에게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겪고 있는 병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담담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심각한 병이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독과 불안, 긴장과 공포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김병수님은 이러한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모든 것이 유별나거나 혹은 병적인 감정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만 저마다 다른 이유나 증상들로 나타나기에 그것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의사인 자신의 몫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와 동시에 김동영 작가님의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인지를 조언해 준다.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쓰디쓴 직언을 하기도 하며, 당신을 이해 못 하겠다고 솔직하게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 솔직함이 환자와 의사의 만남을 7년이나 길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진단이 내려지면 약을 처방해주기 위한 만남일 뿐, 그 10분 동안 누구나 할 수있는 뻔한 말만 늘어놓는 의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와 반대로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그의 자세가 자못 감동적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김동영 작가님을 응원하게 된다. 올 가을, 혹은 어느 겨울쯤엔 약의 도움 없이도 온전히 평안한 상태를 누릴 수 있게 되길 기도하게 된다. 신경정신과적 질병 뿐만 아니라 그는 너무 빈번히 아픔과 싸워왔기에 이제는 건강한 몸에 깃든 그 상쾌함을 좀 느껴봤으면 싶다. 그럼 자칫 허세로 느껴질 수 있는 우울한 그의 글들도 좀 더 덤덤하게, 혹은 병을 이겨낸 사람 특유의 희망적인 에너지가 담기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으로부터 기인하는 감성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 특유의 그 허무하고 섬세한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까 의문이기도 하다. 김병수님의 이 한 마디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신이 깨어 있을수록 긴장의 칼은 날카로워질테고요. 불안이 커지면 감정의 깊이도 커질테니, 불안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는 불행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불안의 축복으로 감성의 깊이를 얻었으니까요. -p. 279

 

불안의 축복으로 얻은 감성의 깊이로 그는 남과 다른 책들을 써냈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물론 김동영 작가님의 약은 좀 줄어들고 건강해지길 바란다 여전히!!) 지금 나에게 주어진 불행과 불안과 긴장과 고독과 분노가 어떤 감정의 깊이를 갖게할런지. 부디 그러한 감정의 깊이로 더 많은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길,그리고 음울할지라도 나만의 감성으로 이어지길 욕심 내본다.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삶에 유의미한 것이며 불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겠다. 내가 느기는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나의 한 부분을 이룬다. 무엇이든 배척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그 또한 지나간 자리에 경험과 성숙이라는 흔적을 남기므로.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신이 깨어 있을수록 긴장의 칼은 날카로워질테고요. 불안이 커지면 감정의 깊이도 커질테니, 불안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는 불행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불안의 축복으로 감성의 깊이를 얻었으니까요. -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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